지난해 국내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다양한 사업투자 전략을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여파로 부진한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신사업과 신약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하거나 수익성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 유한양행‧셀트리온, 신사업에 투자
유한양행과 셀트리온은 부진한 사업을 털어내고 신사업 투자에 나섰다. 유한양행은 바이오벤처기업 바이오니아 주식 23만주 전량을 16억 원에 처분했다. 유한양행은 지난 2015년 바이오니아에 100억 원을 투자해 'SAMiRNA(유전정보를 전달하는 RNA를 억제하는(RNAi) 신약 플랫폼 기술)'을 적용한 섬유증 및 고형암 표적저해제 3종을 라이선스-인*한 바 있다. 하지만 좀처럼 연구개발이 진척되지 않자, 유한양행은 2017년부터 바이오니아 주식을 지속적으로 처분해왔다.
*라이선스 인(In-Licensing): 타사가 보유한 경쟁력 있는 기술·물질·제품·특허 등의 권리를 자사로 들여오는 것.
대신 건강기능식품과 신사업을 위한 투자를 대거 진행했다. 유한양행은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 메디오젠(399억) ▲ 지아이바이옴(100억) ▲ 휴이노(80억) ▲ 아밀로이드솔루션(50억) ▲ 에이프릴바이오(30억) ▲ 셀비온(20억) ▲ 지놈오피니언(50억) 등에 투자했다.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진 메디오젠은 건강기능식품과 신약 개발, 프로바이오틱스 OEM(주문자상표 부착 생산)·ODM(제조자 개발생산)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를 개발하는 지아이바이옴은 메디오젠과 지아이이노베이션이 합작해 설립한 바이오벤처다. 휴이노는 인공지능(AI) 관련 디지털 헬스케어, 아밀로이드솔루션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신약 개발, 지놈오피니언 바이오‧의료 진단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셀트리온도 부진한 자회사를 정리하고 대신 케미컬 사업과 바이오벤처 투자에 눈을 돌렸다. 셀트리온은 2009년 러시아에 해외농업개발사업을 목적으로 설립했던 ‘셀트리온 예브라지아’를 정리했다. 당초 셀트리온 예브라지아는 사업 다각화와 바이오의약품 원료 발굴 등을 목적으로 설립한 자회사다. 하지만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누적 손실액만 180억 원에 달했다. 결국 수백억 원대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12년 만에 사업에서 손을 뗐다.
그 빈자리는 케미컬의약품 사업으로 채웠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11월 3189억 원을 투입해 싱가포르에 케미컬의약품 판매 및 연구개발 자회사 '셀트리온 아시아퍼시픽'을 설립했다. 셀트리온은 이를 통해 지난해 다케다제약의 아태지역 제품군 18개에 대한 특허·상표·판매 권리를 인수했다.
◇ 한미약품‧대웅제약, 기존 신약 연구개발 투자 확대
한미약품과 대웅제약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신약 파이프라인의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했다. 대웅제약은 지난해 31억 원을 투자해 신약개발 전문 자회사 아이엔테라퓨틱스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14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아이엔테라퓨틱스는 이온채널(세포 내부와 외부의 이온이 순환하기 위해 필요한 막 단백질) 플랫폼을 기반으로 비마약성 진통제, 난청치료제, 뇌질환 치료제 등 대웅제약의 8개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또 20억 원을 출자해 영국의 아박타사와 기능강화 줄기세포 치료제 연구개발을 위해 합작법인 아피셀테라퓨틱스를 설립했다. 아피셀테라퓨틱스도 지난 2월 80억 원 규모의 시리즈A 펀딩을 성사시켰다.
한미약품은 신약 파이프라인 개발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4분기에 아테넥스 주식 114만 6552주 전량을 192억 원에 처분했다. 한미약품은 2011년 미국 제약사 아테넥스와 오라스커버리(주사용 항암제를 경구용으로 바꾸는 기술)를 적용한 항암신약 ‘오락솔’에 대한 라이선스 아웃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당시 계약 규모는 총 3400만 달러(한화 약 403억 원)였다.
한미약품은 수년에 걸쳐 아테넥스 주식을 처분하면서 비알코올성지방간(NASH) 바이오신약 등 기존 신약 개발 투자비용을 확대해왔다. 한미약품의 지난해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는 21%로 전년 대비 2.2%포인트 증가했다.
◇ 녹십자‧동화약품, 수익성 확보 위한 투자 집중
GC녹십자와 동화약품은 수익성 확보를 위한 포석의 일환으로 투자를 진행했다. 녹십자는 백신전문기업 유바이오로직스 주식 145만 6000주를 115억 원에 매도했다. GC녹십자의 유로바이오로직스 지분율은 0.6%로 낮아졌다. 녹십자가 그동안 유바이오로직스 주식을 처분해 거둔 차익은 약 470억 원에 달한다.
10월에는 미국 혈액원 사업부문을 위해 설립한 GCAM의 지분 60만 주를 스페인 혈액제제 회사인 그리폴스(Grifols)에 매각했다. 매각 규모는 61억 원이었다. 녹십자는 투자수익 실현에 이어 바이오‧의료 항암제 스타트업인 카나프테라퓨틱스에 50억 원을 신규 투자하기도 했다.
동화약품은 지난해 ▲ 환인제약(50억 원) ▲ 고릴라언택트사모투자 합자회사(36억 원) ▲ 인공지능 의료기기 전문기업 뷰노(30억 원) ▲ 아든씨티케이핀테크 투자조합(10억 원) ▲ 부탄가스‧에어졸 제조 및 판매기업 태양(8억 원) 등 다수 기업에 신규 투자했다. 이밖에 사업 다각화를 위해 의료기기업체 메디쎄이를 221억 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다수 제약바이오기업들이 기존 파이프라인에 대한 연구개발을 지속하고 있지만 장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새로운 먹거리를 찾거나 수익창출을 위한 투자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며 "지난해 코로나 여파로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강기능식품 사업을 강화하거나 차익실현을 위해 유망 바이오벤처에 투자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