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식품 기업들이 올해 '남는 장사'를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잇따른 가격 인상과 엔데믹에 따른 수요 확대로 매출은 크게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감소했다. 국제 원재료 가격 인상에 따른 원가 부담과 물류비 인상 등의 비용 부담으로 수익성이 악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엄살인 줄 알았더니…
27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주요 5개 식품 기업(CJ제일제당·대상·풀무원·동원F&B·농심)의 국내 부문 영업이익은 총 596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약 13.5% 늘었다. 덩치는 키웠지만 남는 게 없는 장사를 한 셈이다.
매출이 10% 넘게 늘어난 건 올해 들어 진행한 가격 인상의 영향이 컸다. 올해 식품업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원재료 가격 인상을 이유로 잇따라 가격을 올렸다. 지난해 가격을 올렸던 품목은 물론, 연초 인상했던 품목을 하반기에 또 한 차례 인상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가격 인상 효과가 온전히 반영된 3분기에도 식품사들이 부진한 실적을 내면서 업계에서는 '엄살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식품업계가 다양한 품목들의 가격을 올렸음에도 원맥과 대두, 원당 등 원재료 가격 폭등과 각종 비용 상승 부담을 충분히 덜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짜 조금 올렸어요"
식품업계는 그간 가격 인상을 단행하며 "원가 부담에 따른 최저한의 인상"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원재료 가격이 오른 것을 감안하면 인상폭이 더 커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소비자들은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결국 원가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었다.
3분기까지만 보면 기업들의 해명에 일정 부분 일리가 있었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매출이 줄면서 영업이익이 감소했다면 '장사를 잘 못 했다'고 비판할 수 있지만, 매출이 늘었는데 영업이익이 줄어든 것은 기업들의 주장대로 원가 부담이 큰 이유가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제 곡물 시세는 2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오를 정도로 급등했지만 이를 그대로 원가에 반영하면 대부분의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30% 이상 올려야 했을 것"이라면서 "정부의 요청도 있었고 오른 물가에 고생할 소비자도 생각해 기업이 상당 부분 부담을 감내하면서 최소한으로 가격을 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CJ제일제당의 경우 국내 식품 사업 매출이 4조4962억원을 기록, 전년 대비 14.2% 늘어난 데 비해 영업이익은 3288억원에서 3197억원으로 2.8% 감소했다. 다른 기업들도 비슷하다. 대상은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4% 줄었고 동원F&B는 15.4%나 감소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글로벌을 포함한 전체 식품사업은 K-푸드의 해외 인기에 힘입어 높은 성장세를 보였지만 국내의 경우 가격인상에도 불구하고 원가와 비용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며 수익성이 다소 떨어졌다"라고 말했다.
더 힘들어진다…트리플 악재는 'ing'
업계에서는 식품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연말부터 내년 초에 걸쳐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식품 기업들은 원부재료 구매 후 3~6개월의 시차를 두고 생산에 반영한다. 1분기에 매입한 밀가루 가격이 3분기에 만드는 라면에 반영되는 식이다.
2~3분기에 정점을 찍은 곡물가·환율의 영향은 4분기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에 내년에도 원부재료 가격 인상에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물류비용·인건비 증가, 고환율에 따른 달러 지출 급증 등 '트리플 악재'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업들의 소극적인 가격 인상이 리스크 대처를 어렵게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가 부담에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든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압박과 소비자 불만에 인상률을 낮게 잡으면서 하반기 원재료 가격 폭등에 대응할 방법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와 올해 많은 기업들이 가격 인상에 나서긴 했지만 인상률이 원가 상승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인상분에 맞춰 한 차례 더 가격을 올리자니 여론이 좋지 않고, 한 차례 올린 가격으로 유지를 하자니 적자 장사를 하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