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정초부터 주요 식품 가격이 심상치 않다. 가공식품에 음료까지 올해도 '도미노 인상'이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업체들은 인상 요인 다변화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이젠 국제적 인플레에 원재료 부담뿐 아니라 에너지 등 기타 제반 비용 부담도 커졌다. 업계는 '매출은 늘었지만 수익성은 감소하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다시 가격 '꿈틀'
10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해태제과식품은 이달 1일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고향만두' 415g 4800원의 가격을 5300원으로 10% 인상했다. CJ제일제당도 '바지락 순두부 찌개양념', '우렁강된자 비빔양념' 140g의 가격을 2400원에서 2900원으로 21%씩 올렸다. 동원F&B 역시 지난 1일 슬라이스 치즈 31종 등 47개 품목에 대한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SPC삼립도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치킨버터갈릭오븐구이', '치킨히말라야소금구이'의 가격을 7900원에서 8900원으로 13% 인상했다. GS리테일 자회사 쿠캣도 찹쌀떡, 볶음요리 등의 가격을 7~11%대로 상향 조정했다. 순수본의 '본죽 쇠고기죽'은 3600원에서 4700원으로 31%, 사조대림의 '한입피자' 80g은 1900원에서 2500원으로 32% 각각 가격이 뛴다.
오뚜기도 '자른당면' 500g의 편의점 제품가를 기존 7800원에서 9400원으로 21% 올렸다. 잠잠했던 음료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코카콜라는 올해부터 편의점 판매용 코카콜라 350㎖ 캔 제품과 코카콜라제로 355㎖ 캔 제품 가격을 종전 1900원에서 2000원으로 100원(5.2%) 인상했다. 롯데칠성음료도 델몬트 상품에 대한 가격 인상을 지난 1일 실시했다.
원자재 상승했단 '그 말'
앞서 식품업계는 이미 지난해에 2~3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우크라이나 전장 장기화에 따른 원부자재 가격 인상이 주요 배경이었다. 곡물가 원유 등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현재 국내 식품 업체 대부분은 원재료의 6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가격 인상으로도 각종 비용 부담을 충분히 덜어내지 못 했다는 입장이다.
물론 소비자의 불만은 크다. 최근 원부자재 가격이 점차 하락하고 있는데 반영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월(135.9)보다 소폭 하락한 135.7로 떨어졌다. 국제 곡물가격은 지난해 3월 이후부터 8개월째 하락세다. 지난해 말 배럴당 80.47달러였던 유가도 최근 73달러대로 떨어졌다.
다만 업체들은 가격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한다. 오히려 지난해 오른 원부자재 인상 여파가 더욱 본격화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가격 변동 반영에 '시차'가 있다는 얘기다. 상품은 가공과 재가공 과정을 거쳐 물류를 통해 시장에 풀린다. 유통 과정이 복잡하다. 이미 비싸게 들여온 원재료도 소진해야 한다. 인건비와 설비 등 제반 비용 상승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해 식품 업체들의 매출은 증가세지만 수익성은 악화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주요 5개 식품 기업(CJ제일제당·대상·풀무원·동원F&B·농심)의 국내 부문 영업이익은 총 596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 줄었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물과 포장재, 공장 가동 비용, 물류 등 여러 측면에서 가격 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나아질까
식품류 가격 상승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비단 식품 원재료를 떠나 산업 제반 비용의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물가지수는 107.71(2020년=100)로 전년보다 5.1% 상승했다. 이는 외환위기 때인 1998년(7.5%) 이후 24년 만의 최고치다.
품목별로 보면 올해 공업제품이 6.9% 올랐다. 이 가운데 석유류가 22.2% 올랐다. 이는 1998년(33.4%)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압박에 전기·가스·수도 비용 역시 12.6% 상승해 별도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0년 이후 최고치였다. 특히 개인서비스 상승률은 5.4%로 1996년(7.6%) 이후 가장 높았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공업제품, 전기·수도·가스 가격이 오르면서 연간 상승 폭이 확대됐다"며 "가공식품은 국제 곡물가가 둔화세지만 여전히 전년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흰 우유 가격 인상 요인도 있어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는 올해도 어려운 한 해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원가 부담 가중에 소비침체까지 겹쳤다는 우려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가격 단속에 나서고, 소비침체까지 나타나는 상황에서도 업체들이 가격 인상에 나서는 건 그만큼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이제는 법인세 인하 등 전향적 대책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