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기업 취재를 하다 보면 잘 나가는 기업의 전성기를 함께 하기도 하고, 한 기업이 정점에서 추락하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상대가 없을 것처럼 잘 나가던 기업이 오너의 실수 하나로 무너지는가 하면 예전의 영광을 잃고 쇠락해가던 기업이 신제품 하나로 다시 영광을 누리는 경우도 있죠.
그러고보면 한 기업의 성패라는 게 꼭 사람의 인생 같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가장 잘 했던 친구가 사회에 나와 보니 아직도 취업 준비를 하는 경우도 있고 학교도 잘 나오지 않던 동창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튜버가 됐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예측이 어렵죠.
최근 K-레깅스 시장이 바로 그렇습니다. 예측불허입니다. 젝시믹스가 안다르를 따라잡고, 격차를 벌리며 1, 2위 경쟁이 끝나는가 싶더니 또 안다르의 추격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도토리 키재기도 아닙니다. 매년 쑥쑥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양사가 나란히 2023년 실적을 발표했는데요. 지난해에도 치열한 승부를 펼쳤습니다. 이번주 [주간유통]에서는 K-레깅스 시장의 양대 산맥, 젝시믹스와 안다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진땀 끝 1위 수성
지난해 젝시믹스와 안다르는 혈전을 벌였습니다. 먼저 1분기에는 수성에 나선 젝시믹스가 461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342억원의 안다르를 따돌렸습니다. 2020년 이후 줄곧 1위를 지켜왔던 만큼 1분기의 격차도 당연해 보였죠.
그런데 2분기에 '일'이 납니다. 안다르가 분기 매출 616억원을 올리며 561억원의 젝시믹스를 앞선 겁니다. 한 번 '대세'가 되면 잘 깨지지 않는 B2C 시장에서 1위를 뺏긴 사업자가 다시 올라서는 '재역전'은 보기 드문 일입니다. 업계가 안다르의 행보에 관심을 가진 것도 당연한 일이죠.
젝시믹스가 정신을 바짝 차려서일까요. 3분기와 4분기에는 젝시믹스가 다시 격차를 벌리는 데 성공합니다. 결과적으로 젝시믹스는 지난해 2214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2026억원의 안다르에 앞선 '애슬레저 1위'를 지켜내는 데 성공합니다.
아직 안 죽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역시나 안다르의 부활에 더 몰려 있습니다. 숱한 논란에 휘말리며 젝시믹스에 1위를 내주고 말았던 안다르가 다시 반등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안다르는 국내 패션업계에 레깅스 돌풍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2019년 사내 성희롱 사건을 폭로한 직원을 부당해고했다는 의혹이 알려지면서 안다르의 핵심 고객인 2030 여성이 젝시믹스로 이탈, 이듬해 1위를 내주게 됩니다.
젝시믹스는 안다르에서 이탈한 소비자들을 흡수하는 동시에 일본 등 해외 진출까지 이뤄내며 연평균 30%대 성장세를 이어갔습니다. 2010년대 치열했던 K-애슬레저 대결이 어느 정도 정리되는 것처럼 보였죠.
하지만 에코마케팅이 나서면서 안다르의 반등이 시작됩니다. 창업자인 신애련 대표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에코마케팅이 전면에서 사업을 진행하면서 안다르의 매출은 1년 만에 47.8% 급증합니다. 지난해엔 젝시믹스와의 매출 격차를 100억원대로 좁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가시권'에 들어온 겁니다.
승부는 '해외'에서
양사 모두 올해 실적의 키는 해외에 달려 있습니다. 일찌감치 일본 시장에 진출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젝시믹스는 지난해부터 중국과 대만 등 중화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엔 인천공항 면세점에도 단독 매장을 오픈했죠. 이 역시 중국 관광객이 최우선 타깃입니다.
젝시믹스는 올해 일본,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등 중화권과 호주,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에 총 100개 매장을 확보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외형 확대는 물론, 지난해 주춤했던 수익성까지 끌어올리는 '수확의 해'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 안다르는 일본을 중심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섭니다. 특히 객단가가 높은 일본 시장에서는 2분기부터 현지 물류센터 가동을 시작, 오프라인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한다는 계획입니다.
아직까지 국내 애슬레저 브랜드들은 '룰루레몬' 등 해외 유력 브랜드에 비해 가격은 저렴하지만 품질은 다소 못 미친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이 신제품·신소재 개발로 이어진다면 품질 역시 글로벌 브랜드 못지 않게 개선될 수 있겠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느 한 브랜드가 독주하는 시장보다 여러 브랜드가 경쟁하는 시장이 당연히 좋습니다. 서로 경쟁할 때 더 좋은 신제품이 쏟아져 나온다는 건 시장의 진리입니다. 젝시믹스와 안다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양 사의 치열한 경쟁이 조금 더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