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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상징…지하철역 '1000원' 빵집의 비밀

  • 2024.04.12(금) 07:10

지하철 역사 중심으로 1000원 빵집 급증
대량생산·빠른 판매로 '박리다매' 포지셔닝
기존 베이커리와 유통구조·원재료 등 차이

서울 한 지하철역의 '1000원빵' 매장 모습/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2000년대 중순 인기를 끌었다가 자취를 감추는 듯했던 '1000원 빵집'이 불황을 타고 다시 급증하고 있다. 깁밥 1줄에 3000원을 웃돌 정도로 외식 물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1000원으로 한 끼를 때울 수 있다는 장점에 매장이 우후죽순 늘고 있다. 

1000원 빵집이 인기를 끌면서 일각에서는 그간 국내 베이커리 업계가 빵값을 지나치게 높게 올려받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매장에서 직접 굽는 빵이라면 몰라도 공장에서 만들어 포장돼 나오는 양산빵의 경우에도 높은 가격을 받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1000원의 행복'

'무조건 1000원'. 다이소가 아니라 지하철 빵집에 붙은 플래카드다. 유동인구가 많은 편인 지하철 역사라면 1000원 빵집 하나쯤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단팥빵, 크림빵 등 기본적인 저가 빵은 물론 카스테라, 크로아상 등 상대적으로 고급 빵도 모두 '균일가 1000원'이다. 

언뜻 보면 유효기간이 거의 다 된, 팔기 어려운 빵을 급히 처분하는 것 같지만 막상 소비기한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당일 만든 빵을 새벽에 구매해 와 바로바로 판매한다는 설명이다. 재고 물량을 반품할 수 없어 저렴하게 많이 판매해야만 이윤이 남는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박리다매'의 정석이다. 

또다른 서울 지하철역의 1000원빵 매장/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액세서리나 핸드폰 케이스 등 잡화류를 판매하는 매장에 비해 손님도 제법 많다. 대부분은 '양산빵'에 추억이 있는 중장년층이지만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은 10대, 20대 고객도 적잖이 눈에 띈다.  단팥빵에는 웬만한 유명 베이커리 못지 않게 팥이 듬뿍 들어 있다. 실제로 1000원 빵집에서 구매한 단팥빵의 팥 함량은 50%를 웃돌았다. 가격이 2~3배 이상인 프랜차이즈 단팥빵에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 

1000원 빵집에서 자주 빵을 구매한다는 A씨(52)는 "일반 빵집에 가면 몇 개만 집어들어도 몇만원씩 나오는데 여기는 모든 빵이 1000원이라서 종종 이용한다"며 "가격을 생각하면 맛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돌고도는 유행

1000원 빵집이 다시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건 먹거리 물가 급등의 영향이 크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 김밥 1줄의 평균 가격은 3323원으로 2년 전보다 17.4% 올랐다. 짜장면 한 그릇은 5846원에서 7069원으로 20.9% 비싸졌다. 밥 한 끼의 최소 기준이 대략 이정도다. 1000~2000원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저가 빵이 인기를 얻는 이유다.

1000원 빵집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판매 방식은 아니다. 2000년대 중후반엔 '1000원에 3개'를 내세운 저가 빵집들이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후 2010년대 초엔 매장에서 직접 빵을 굽는 저가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500원 빵'을 내세워 시장 공략에 나섰다. 

다양한 종류의 1000원빵/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하지만 국내 베이커리 시장이 성장하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간식용 빵이 아닌 식사용 빵을 구매하는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저가 양산빵 시장은 쇠퇴했다. 그 자리는 베이글·치아바타·깜빠뉴 등 식사빵을 판매하는 프리미엄 베이커리가 메웠다.  

프리미엄 베이커리가 1030 젊은층의 '핫플'로 떠오르면서 단팥빵, 소금빵 하나에 3000원이 기본일 정도로 전반적인 베이커리 가격대가 상승했다. 연세우유크림빵의 히트 이후로는 양산빵의 대표 주자인 편의점조차 개당 3000원대 빵이 대세가 됐다. 그러자 다시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 공략에 나서는 저가 빵의 인기가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같은 봉지에 들어 있어도

일각에서는 편의점·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역시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양산빵(봉지빵)을 만드는데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며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에 수천개에서 1만개 이상의 매장을 갖고 있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와 편의점이라면 양산빵 가격을 '1000원 빵'처럼 낮출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양산빵이라는 구조만 비슷할 뿐 실제 판매 방식이나 품질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입장이다. 10~20여 가지 제품을 대량 생산해 공급하는 1000원 빵과 달리 수십, 수백가지 라인업을 갖추고 전국에 유통해야 하는 만큼 유통 과정에서 구조적인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 1000원빵 제품의 성분표. 버터 대신 마가린을 사용했다./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원재료 등 품질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베이커리 전문 브랜드들은 맛을 개선하기 위해 프랑스산 밀가루나 버터, 게랑드산 소금 등 고품질의 원재료를 사용한다. 하지만 1000원 빵의 경우 원가 절감을 위해 버터 대신 마가린을, 동물성 크림 대신 식물성 크림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베이커리 업계 관계자는 "베이커리 브랜드들은 차별화를 위해 밀가루, 버터, 소금, 설탕 등을 구매할 때 고품질의 원재료를 추구한다"며 "이 때문에 제조원가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운영 방식의 차이도 있다. 가맹점을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와 편의점의 경우 본사는 물론 가맹점의 수익까지 보장해야 한다. 베이커리 전문점은 양산빵은 물론 매장에서 직접 굽는 빵을 함께 판매하는 만큼 제빵사의 인건비와 매장 임대료 등 제반 비용이 추가된다. 

또 다른 베이커리 업계 관계자는 "베이커리 전문점의 경우 매장에서 당일 구운 빵을 판매하기 때문에 양산빵과 달리 가공비, 인건비, 수도광열비, 임대료 등 제반 비용이 가격에 포함된다"면서 "양산빵을 박리다매형태로 공급하는 구조가 아니라서 가격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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