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이 차기 여신금융협회장으로 내정됐다. 업계 경력이 없는 관 출신 인사가 내정된 것을 두고 업계의 시각은 엇갈린다.
금융정책 관련 요직을 두루 거쳐 당국에 힘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과 업계보다는 금융당국 입장에서 협회장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함께 나온다.
찬성과 반대 의견 모두 '새 협회장이 업계가 당면한 숙제를 업계 입장에서 풀어낼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 2차 투표 거쳐 단독후보로
여신금융협회는 7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열고 김주현 전 예보 사장을 차기 여신금융협회 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했다.
선출 과정은 치열했다. 이날 열린 회추위 1차 투표에서는 아무도 과반을 득표하지 못했다. 결국 2차 투표까지 진행해 김주현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이 임유 전 여신금융협회 상무와 정수진 전 하나카드 사장을 제치고 단독 후보로 내정됐다.
김 후보자는 오는 18일 협회 임시총회 의결을 거쳐 임기 3년의 제12대 여신금융협회 상근회장으로 최종 선임될 예정이다.
김 후보자는 1958년생으로 중앙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 25회로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동기다. 재무부 과세국에서 공직을 시작해 금융정책실 서기관을 지냈다. 이후 아시아개발은행과 재정경제원 등을 거쳐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과장을 지냈다.
당시 금융감독정책1국장이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와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를 맞아 금융위원장과 금융위 사무처장으로 근무하며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이후 저축은행 사태 해결의 공로로 예금보험공사 사장을 역임했으며 최근에는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 "경험·능력 풍부한 해결사" vs "당국 편에 설 모피아"
김 후보자의 단독 추천을 두고 업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김 후보자가 금융정책의 중심에서 요직을 두루 맡으며 쌓은 인맥과 경험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여신금융업계가 어느 때보다 위기에 처했다는 데 이견이 없는 만큼 당국과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했기 때문이다.
한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후보 중 금융당국에 가장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후보가 단독추천됐다"며 "풍부한 경험과 넓은 인맥을 통해 업계의 당면과제를 잘 해결하리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조를 중심으로 일각에서는 낙하산 인사라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업계의 위기를 당국이 자초한 만큼 업계를 대표하는 협회장의 자리를 관 출신 인사에게 맡길 수 없다는 논리다.
지난달 28일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사무금융노조)은 기자회견을 열고 김 후보자를 겨냥해 "협회를 망쳐온 관료에게 협회를 내줄 수 없다"며 "청와대 앞 1인 시위, 국민청원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투쟁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카드사 노조 관계자는 "이번 선거에서 모피아 인사들이 김 후보자의 당선을 위해 치열한 물밑작업을 펼친 정황이 있다"며 "이 때문에 김 후보자가 당국에 업계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는 당국의 지시를 그대로 전달할 적임자라는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자진사퇴를 바랐으나 회추위 문턱을 넘은 이상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며 "업계에 당면한 과제가 많은 만큼 문제해결 능력은 곧바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업계 수익성 제고·노조 설득 등 과제 산적
본인을 둘러싼 엇갈린 평가는 김 후보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반면 적대적인 눈초리를 해결하는 과정이 곧 차기 여신금융협회장에게 주어진 임무라는 분석이다.
최근 카드사는 가맹점수수료 인하로 수수료사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면서 눈물겨운 체질개선에 한창이다.
지난해 카드사를 떠난 직원수만 541명이며 직원수에 포함되지 않는 카드모집인의 경우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매 분기마다 1000명이 넘게 줄어들고 있다.
이에 차기 여신금융협회장은 감원과 구조조정 등으로 어수선해진 업계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도록 카드사의 새로운 먹을거리를 발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결책으로는 금융위가 가맹점수수료 인하의 대응방법으로 제시한 빅데이터 및 마이데이터 사업이 구체적으로 주목된다.
카드사가 가진 방대한 빅데이터를 가공해 가맹점과 이용자에게 유용한 마이데이터를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이익을 거둘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사업의 요지다.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신용정보법 등 관련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차기 여신금융협회장은 금융당국과 함께 관련법 개정을 위한 국회 설득 작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 새 협회장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카드노동자들에 대한 설득작업이다.
현재 금융노동자 공통투쟁본부(금융공투본)와 카드사노동조합 협의회(카노협)는 ▲대형가맹점에 대한 수수료 하한선 마련 ▲레버리지 배율 차별 철폐 ▲부가서비스 축소 즉각 시행 3가지 요구사항을 해결을 요구하며 파업을 결의한 상태다.
5월말로 예정됐던 파업은 유예 중이지만 6월 중에는 파업 단행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여신금융업계가 뒤숭숭하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당면한 과제들 모두 해결이 시급하다 보니 차기 협회장은 취임 이후 쉴틈 없이 문제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이라며 "모피아 출신의 낙하산 인사라는 '출신'이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일하는 것을 본 뒤에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