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하반기 첫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한 가운데, 처음으로 금리 인하 시기를 검토해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통화 정책 전환에 착수한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다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리인하에 대한 시장 기대가 너무 과도하다면서 가계대출 등 금융안정 상황을 주의깊게 살피겠다고 강조했다.
한은 금통위는 11일 하반기 첫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갖고 기준금리를 기존 3.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 2월 이후 12회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으로 역대 최장 기간 동안 금리를 동결한 것이다.
한은은 이날 통화정책방향 자료에서 "물가상승률 둔화 추세의 지속 여부를 좀 더 확인할 필요가 있고 외환시장 변동성과 가계부채 증가세가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라며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면서 대내외 정책 여건을 점검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봤다"고 밝혔다.
"금리 방향전환 준비 상황 조성"
이번 금통위에서는 지난해 2월 들어 금리 동결기가 이어진 이후 처음으로 금리 인하를 검토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지난 6월 발표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4%로 11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3개월 연속 2%대를 이어가는 등 안정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안정세를 보이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방향이고 예상했던 바와 부합하는 것"이라며 "물가상승률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던 만큼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전환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금통위원 의견도 나왔다. 이날 금통위원 6명 중 4명은 향후 3개월 내에 기준금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냈고, 나머지 2명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총재는 "(향후 3개월 내 기준금리 유지 견해를 낸)금통위원 네 분은 인플레이션 안정에 많은 진정이 있었지만 금리인하 기대가 주택가격,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확인해봐야 한다고 봤다"라며 "나머지 두 분은 물가상승률이 많이 낮아졌기 때문에 금리 인하 가능성을 좀 더 확인해봐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언제' 방향전환을 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며 섣부른 인하 가능성은 일축했다. 그는 "외환시장이나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 가계부채 움직임 등 앞으로 달려오는 위험요인이 많다"라며 "언제 방향전환을 할지는 아직 불확실하고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라고 밝혔다.
"집값 등 금융안정 중요…금리인하 기대감 과도"
이 총재는 최근 수도권 집값이 오르면서 가계부채가 증가세로 돌아선 데 대해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금융권 가계대출은 주택거래가 회복세에 들어서면서 지난 4월 4조1000억원, 5월 5조6000억원, 6월 6조1000억원 등 큰 폭의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총재는 "5월말에서 6월, 7월 집값 상승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지고 있어 유심히 보고 있고 금융안정에 대한 고려도 커졌다"라며 "수도권 주택가격이 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이 유의미하고, 가계부채 수준을 중장기적으로 낮춰가는 데 유의할 시점이 됐다고 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감이 다소 과도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총재는 "장기 국채 금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많이 하락한 건 한국은행이 금리를 곧 인하할 거라는 기대가 선반영됐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라며 "대다수 금통위원은 금융안정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시장에 형성된 금리인하 기대는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봤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같은 금리인하 기대감이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는 등의 '정책 실패'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이 인하 메시지에 들썩들썩 한다고 하는데 시장이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닌지, 그로 인해 주택가격 상승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닌지 유심히 보고 있다"라며 "주택가격을 직접적으로 조정할 수는 없더라도 한국은행이 금리인하 시점에 대한 과도한 시그널을 줘서 주택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금통위원 모두가 동의했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이날 향후 3개월 이내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금통위원 의견에 대해서는 '조건부'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포워드 가이던스(금리 방향 선제 예고)는 조건부라서 이렇게 얘기했으니 안 바꾼다고 한 게 아니다"라며 "금리 전망은 현 시점의 물가 등을 봤을 때 앞으로 3개월 이후 금리 인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또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