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기준 보험사기 적발 금액이 1조원이 넘습니다. 별도 양형기준이 없는 범죄 중 가장 많이 발생하고, 수법은 지능화, 집단화, 폭력화되고 있습니다. 보험사기만의 특성을 반영한 양형기준이 필요합니다."
하태헌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최근 열린 '보험사기 양형기준의 필요성' 세미나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다음 달 중 보험사기 범죄 양형기준 신설을 계획함에 따라 관련 업계의 의견 개진이 분주하다. ▷관련 기사: 보험사기로 수억원 편취해도 '불기소' 수두룩 왜?(7월25일)
보험사기에 별도 양형기준 필요한 이유
이날 세미나에서 김경렬 케이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가평계곡살인사건 등의 사례를 들어 일반사기와 다른 보험사기의 특수성을 설명했다.
김 대표변호사는 "처음엔 가벼운 범죄로 시작해 보험금을 타는 데 성공하면 점점 강도가 높아져 살인까지 이른 사건들이 많다"며 "가족 등 가까운 사람을 대상으로 파국을 초래하는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게 보험사기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하태헌 변호사는 이에 △고의로 사고를 발생케 하거나 허위로 사고를 가장한 경우 △보험가입 시부터 보험사기 목적으로 다수 보험에 가입한 경우 △타인의 신체나 재산에 피해를 입힌 경우 및 부수적인 범죄가 수반된 경우 △직업적 전문성을 이용하여 기망한 경우 및 피해자의 직원인 경우 등 5개 요소를 보험사기 관련 가중요소로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보험계약 체결 시 고지의무를 위반한 경우 △상대방 동의 없는 공탁 △일부 피해자만 처벌불원 의사를 밝힌 경우 등을 현행 감경요소에서 삭제할 것을 주장했다.
보험사기를 저지른 뒤 형사공탁 특례제도를 이용해 감경받는 사례가 많아서다. 공탁은 피해자의 사생활이나 신변을 보호하고자 피해자와 접촉하지 않고 보상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하 변호사는 보험사기의 경우 피해자가 보험사이기 때문에 이같은 제도가 필요 없다고 봤다.
또 보험사기는 다수의 보험사를 상대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피해액이 적은 일부 보험사에만 피해를 복구하고 처벌불원 의사를 확보해 감경을 받는 경우도 방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 변호사는 "보험사기에 별도 양형기준을 설정하든가 그것이 무리라면 보험사기의 특성을 반영한 양형 인자만이라도 포함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사기 양형기준, 다음달 결판
양형기준은 형을 정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기준으로 각 범죄의 특성을 반영한다. 현재 징역형 47개 범죄, 벌금형 3개 범죄에 대해 양형기준이 설정됐다. 사기의 경우 일반사기, 조직적 사기 2가지로만 나뉘며 개별 사기범죄에 대한 분류는 따로 없다.
예를 들어 보험사기로 5억원을 편취하면 일반사기 3유형으로 분류돼 기본 징역 3~6년이 선고된다. 압력 등에 의해 소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했거나, 처벌불원 및 피해를 복구한 경우 감경 요소가 적용돼 형량이 1년6개월~4년으로 준다. 반면 상습범, 동종누범 등의 경우는 가중요소가 반영돼 형량이 4~7년으로 증가한다.
2016년 제정된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 제 역할을 못 하는 점도 문제다. 현재 특별법상 벌금형의 경우 일반사기(2000만원)보다 높은 기준(5000만원)이 적용되고 있지만, 징역형의 법정형은 형법상 법정형과 동일하다.
백영화 보험연구원 보험법연구실장은 "보험사기는 고용보험 재정과 사회안전망인 보험 제도를 흔드는 피해를 야기하므로 가중요소를 추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과거 특별법 개정을 통해 가중처벌 조항을 신설하고자 했으나 법무부는 양형의 문제로 접근하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고 말했다.
한편 양형위는 지난 4월 제131차 전체회의에서 보험사기 양형기준 신설에 대해 언급했다. 보험사기를 사기범죄 양형기준 설정 범위에 포함하고, 보험사기방지법 상 보험사기에 대해서도 양형기준을 설정하기로 했다.
양형기준 설정 작업은 △양형기준 설정 범위 결정 △유형 분류 결정 △권고 형량 범위 설정 △양형인자 설정 △집행유예 기준 설정 순서로 이뤄진다. 양형위는 다음 달 사기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내년 1~2월 공청회 등을 거쳐 3월 최종 의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