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지주사들이 보험업 진출을 적극 타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손해보험사보다는 생명보험사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는 분위기인데요.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최근 보험사 인수를 공식화했고, 우리금융지주도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왔던 롯데손해보험 대신 생보사 인수로 방향을 바꿔 금융위원회의 자회사 편입 최종 인가 여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금융지주사들이 최근 생보사를 더욱 눈여겨보는 이유는 생보사가 자산 규모가 크고 투자 손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입니다.

보험사 없는 금융지주 '분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금융지주는 시중에 매물로 나온 보험사들의 인수를 검토 중인데요. 인수 후보로는 BNP파리바카디프생명 같은 중형 보험사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건 김남구 회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일찌감치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김남구 회장의 보험사 인수 의지가 강하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거든요.
실제로 한국금융지주는 지난 2023년 경영권 매각을 진행 중이었던 ABL생명과 KDB생명의 투자설명서(IM)도 받아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물론 IM을 받아갔다고 해서 바로 거래에 참여하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나올 보험사 매물을 공부하는 차원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IM을 수령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금융지주 측은 "보험사 인수를 검토 중이기는 하나, 생·손보를 구분해서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손보사도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죠. 그러면서도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건 없다"고 귀띔했습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한국투자금융그룹은 포트폴리오가 증권에 치우쳐 있어서 이를 다변화하려는 것이고, 보험사를 인수하면 운용 규모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여러 보험사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어요.
앞서 우리금융의 경우엔 지난해 6월 중국 다자보험그룹과 동양생명, ABL생명의 패키지 인수 협의를 위한 비구속적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요. 우리금융은 비슷한 시기에 진행됐던 롯데손보 인수전에서 예비입찰을 위한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지만, 본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롯데손보의 대주주 JKL파트너스가 제시한 매각 희망가가 2조 원대로 너무 높았던 게 결정적인 이유로 꼽힙니다. ▷관련기사: 롯데손보 M&A 하차한 우리금융…동양생명 인수전 영향은(2024년 6월28일).

생보 어려운데…살만한 손보사도 없네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보험사 M&A 시장에서 매물로 나와 있거나 잠재 매물로 거론되는 곳은 손보사 2곳(롯데손보·MG손해보험)과 생보사 2곳(KDB생명·카디프생명) 등 총 4곳인데요. 동양생명과 ABL생명은 금융위의 우리금융 자회사 편입 최종 인가 여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보험사 인수 기로에 선 우리금융…믿을 건 금융위 뿐(3월18일).
손보사 매물이 있긴 하지만, 우리금융에 이어 한국금융그룹도 생보사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생보사는 손보사보다 인구 구조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데요. 현재 우리나라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인구 증가가 멈추면서 성장이 정체된 상태입니다.
여기에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도 변화하면서 종신보험에 대한 수요가 줄었고 생보사들은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에요. 진단비나 수술비 부담을 대비한 건강보험 확대가 필수적인 시대라 생보사가 손보사보다 사업 여건이 더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금융지주들이 생보사에 집중하는 이유는 우선 손보사 매물이 마땅치 않기 때문인데요. 롯데손보의 경우 높은 매각가에 비해 최근 수익성과 건전성 지표가 하락한 게 걸림돌입니다. MG손보도 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비율이 작년 3분기 기준 43.4%로, 보험업법상 최소 기준인 100%를 넘기지 못했죠. 두 회사 모두 인수 후 상위권 손보사로 도약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금융권은 이들 금융지주가 생보사나 손보사를 구분해서 인수 타깃으로 삼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금융지주가 몸집을 불리기 위해선 기존에 갖고 있지 않은 보험사 등을 새로 설립하거나, 인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금융업은 규제 산업이니 라이선스를 새로 따는 게 굉장히 어렵죠. 그래서 시장에서 매물을 찾는 겁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매물로 나온 손보사는 롯데손보와 MG손보인데, 롯데손보는 무·저해지 상품 해지율 예외모형 사용으로 민낯이 드러났고 MG손보는 상황이 좋지 않다"며 "특히 롯데손보는 이전 딜 추진 당시 몸값을 너무 높게 불러 2배 이상을 주고 살 곳이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결국 이렇게 제외된 손보사들 외에 살만한, 괜찮은 매물이 생보사뿐이었단 얘깁니다.
'운용수익·신사업' 이점도 있어요
또 다른 이유는 자산 규모와 투자 손익 때문인데요. 생보사는 보험 계약 한 건당 납입금이 크고, 저축성 상품을 통해 자금을 모을 수 있어서 손보사보다 자산 규모가 큽니다. 게다가 금융지주사들은 계열사로 자산운용사를 보유하고 있어서, 여기서 보험사의 자산을 관리하면서 추가 수익을 올릴 수도 있는데요. 실제로 2023년 말 기준 생·손보업계 자산 규모를 보면, 동양생명(32조8957억원)과 롯데손보(14조8430억원)의 차이만 해도 18조원이 넘습니다.
생보사 인수를 '위기 속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헬스케어나 요양 사업을 전개하기에 생보사가 더 유리하기 때문인데요. 생명보험협회는 지난 12일 '2025 한-일 생명보험 세미나'에서 일본 생명보험업계 1위인 일본생명보험 자회사 니치이학관이 운영하는 재가 개호(집에서 받는 돌봄) 서비스와 시설 개호(시설에서 받는 돌봄) 서비스를 성공 사례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고령화 시대에서는 생보사가 헬스케어나 요양업 진출 등 신사업에 유리하고, 금융지주사 입장에서는 은행이나 자산운용사가 있어서 방카슈랑스나 자산운용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죠. 우리금융지주와 한국금융지주가 생보사를 품고, 업계의 '다크호스'가 될 수 있을지 한번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