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노명현 김민지 기자]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는 글로벌 기업과 금융사들이 입주한 고층 빌딩이 즐비했다. 빌딩 숲 중심에 들어서면 싱가포르와 홍콩 등 아시아 주요 금융 허브의 느낌이 들 정도다. 그곳에는 KB뱅크와 신한은행,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 국내 은행들도 자리잡고 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높은 빌딩에 붙은 국내 은행들의 BI를 볼때면 왠지 모를 뿌듯함도 느껴진다.
인도네시아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구가 3억명에 육박하는 인구 강국으로 꼽힌다. 막대한 인구를 기반으로 세계 4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골드만삭스는 2030년 인도네시아 경제 규모를 2020년대비 2배 성장하고 2050년에는 5.7배 성장한 6조3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2차전지 핵심 소재인 니켈을 포함한 성장 산업 내 핵심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다양한 미래성장 산업 밸류체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2050년 인도네시아의 GDP 순위는 중국과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 4위에 오를 것이라는 게 골드만삭스 전망이다.
반면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지표인 금융 침투율은 낮은 편이다. 경제 성장과 함께 금융업이 발전하면 그 만큼 현지에 진출한 금융사들도 빠르게 자산을 늘리고 순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국내 금융사들이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초기에는 인도네시아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에 금융 공급을 위해 동반 진출했고, 현재는 현지 기업과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성장 기대 큰 '인도네시아', 국내 은행 진출도 활발
인도네시아 금융 시장 성장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2023년 2분기 기준 인도네시아 은행업 자산 규모는 약 900조원으로 최근 6년 동안 연평균 8.3%의 자산 성장을 이뤄냈다.
실제 인도네시아에선 100여개가 넘는 은행들이 금융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그나마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에 의해 은행들의 숫자가 줄었다. 2013년 120개에 달했던 인도네시아 내 은행은 현재 105개 수준이다.
국내 은행 중에선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하나은행과 신한은행, IBK기업은행과 OK저축은행 등이 현지에 진출해 영업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카카오뱅크가 슈퍼뱅크 지분10.05%를 인수해 인터넷은행(디지털뱅크) 형태로 진출했고, 한화생명도 최근 노부은행 지분 40%를 확보해 현지 은행 경영권을 포함한 주요 주주지위를 확보했다.
시장 진출이 본격화한 2010년 중반 이후 인도네시아에서의 국내 은행 성장세가 도드라졌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은행의 인도네시아 내 은행 총자산은 144억3000만달러로 전체 해외 자산의 7.1%를 차지했다.
특히 인도네시아 내 국내은행 총자산은 2018년부터 연평균 22.8% 늘면서 베트남(25%)과 함께 투자가 집중됐다. 현지 은행 인수로 시장에 진입한 후 국내 은행들이 인도네시아를 주요 거점 시장으로 설정한 이유다.
한정호 인도네시아 KB뱅크 CSO(최고전략책임자)는 "인도네시아를 '세컨드 마더 마켓'(Second Mother Market), 즉 한국을 제외하고 두 번째로 주력으로 삼아야 하는 시장으로 선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녹록지 않은 현실의 벽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 후 자산 성장을 이뤄내긴 했지만 현실의 벽은 만만찮게 높다. 인도네시아 금융당국(OJK)이 자국 은행 성장을 지원하는 동시에 외국계 은행에 대해선 강도 높은 규제 장벽을 적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인도네시아에선 3개 국영은행(Mandiri·BRI·BNI)과 1개 민영은행(BCA) 등 총 4개 은행이 사실 상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2023년 말 기준 이들 4개 은행이 상업은행 총자산의 59.4%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은행 중에선 자산순위 기준(2022년) KB뱅크가 22위,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각각 32위와 34위, 가장 최근에 진출한 신한은행이 52권이다. 현지 4대 은행과 순위 뿐 아니라 자산규모 격차가 상당히 크다.
현지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으로 꼽히는 페이(Pay)도 현지 은행에 유리한 구조라 장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인도네시아는 빈부격차도 커 일부 자산가를 제외하면 신용카드 발급이 어렵다. 전체 국민의 7% 수준만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신 큐알코드(QR Code)로 결제하는 큐리스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결제 단말기에 가격을 입력하고 발행된 영수증에 큐알코드가 인쇄돼 나오고, 이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개인 계좌로 연결돼 결제가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이 시장을 현지 은행 4곳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지인들은 해당 은행 계좌를 통해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게 가장 편리하다. 현지 국내은행들도 큐리스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지만 인프라 자체에서 현지 은행들과 경쟁 자체가 안 된다는 게 주재원들 설명이다.
현지 국내은행 관계자는 "큐리스 라이선스는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ank of Indonesia, BI)에서 주는데 우리는 라이선스가 없어 중간에 브로커가 필요해 애초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다"라며 "무엇보다 인프라 자체에서 밀리는데, 현지 은행들은 막대한 비용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액티브형을 적용하고 있지만 우리는 스틱형이라 차이가 크다"고 토로했다.
액티브형은 작은 결제 단말기 형태로 업주(종업원)가 단말기를 들고 이동할 수 있어 고객들은 자리에 앉아서도 큐알코드를 통해 결제할 수 있다. 반면 스틱형은 결제 카운터에 고정된 형태여서 고객들이 카운터로 가야만 결제가 가능해 접근성이 떨어진다. 현지에선 대부분 액티브형 큐리스로 결제가 이뤄지고 있다.
또 연간 사업계획을 금융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고 주재원 숫자를 늘리는데도 제약이 있어 사업을 확장하기도 쉽지 않다. 현지 법인에서 근무하려면 OJK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OJK가 주재원 숫자까지 관리한다. 현지 법인장으로 취임하려면 시험을 통해 OJK로부터 전문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 관계자는 "OJK에서 현지 법인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인력에 대해서만 허가를 내준다"라며 "가령 법인 운영을 위해 필요한 재무 담당자, 우리나라가 강점이 있는 IT 분야 등의 인력에 대해서만 허가하고 숫자를 늘리지도 못해 새로운 사업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한정호 CSO는 "인도네시아에선 해마다 경영 계획을 OJK 승인을 받아야 하고,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려면 경영 계획 안에 포함돼 있어야 한다"며 "중간에 새로운 상품을 만들기 어렵고 경영계획 승인을 받을 때도 워낙 깐깐하게 질문을 한다"고 설명했다.
'K금융' 앞세워 현지 공략
기대 만큼 가파른 성장세를 실현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잠재력이 큰 만큼 포기할 수 없는 곳이 인도네시아 시장이다. 그 동안 현지 진출한 국내 기업들에 대한 금융 공급을 기반으로 했다면 이제는 현지 기업과 소매·중소기업(SME) 시장을 비롯해 현지 고객을 대상으로 영역을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인도네시아 현지 4대 은행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국내 은행들은 틈새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네트워크를 갖춘 현지 인력 채용을 통한 경쟁력 강화, 국내에서 쌓은 은행업 역량을 인도네시아 현지 맞춤형으로 적용한다는 전략이다.
실제 KB뱅크는 홀세일(Whole Sale, 대기업금융)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쿠나드리 다르마 리에(Kunardy Darma Lie) 전 DBS은행 인도네시아 법인 기업금융 부행장을 행장으로 선임하면서 이 분야 경쟁력을 강화했다.
한정호 KB뱅크 CSO는 "홀세일 전문가 영입 뿐 아니라 인력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용이 들더라도 현지 네트워크 경쟁력을 가진 인력을 채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지 인력 채용 시 한국계 은행이라는 부분이 도움이 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중국과 일본 기업 등이 현지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장악하지 못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선 한류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큰데, 이는 한국계 은행에 대한 이미지 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또 다른 현지 국내은행 관계자는 "한국계 은행이 현지 고객들에게 인지도가 높지는 않지만 채용에 있어선 수월한 면이 있다"며 "현지 영업을 위해선 좋은 인적 자원 확보가 중요한데 일본이나 대만, 중국계 등 은행보다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다는 점이 유리해 보인다"고 말했다.
신용대출과 모기지(주택담보대출) 등 현지 고객을 대상으로 한 리테일 시장 확대 과정에선 빠른 심사부터 대출 실행까지 '속도'를 장점으로 내세운다.
현지 국내은행 관계자는 "이곳에선 대출 과정이 긴 편인데 국내 은행업 경험을 바탕으로 빠른 대출 프로세스를 최대한 현지화해 대출 프로세스 속도에 차별화를 두려고 한다"며 "최근 문화적으로는 한류 영향력이 급격히 커져 이 부분도 현지 고객 영업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