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공지능(AI) 산업을 총망라하는 'AI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은행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전자금융거래법 등 관련 법을 적용받는 상황에서 대출심사 등 핵심 업무가 고영향 AI로 분류돼 관리 의무가 더욱 커졌다.
AI 기본법 컨트롤타워에 금융 관련 부처가 빠진 점도 걱정을 더한다. 금융권 AI 가이드라인·모범규준과 달리 실정법임에도 안착 과정에서 발생하는 잡음들을 곧바로 대처하기 어렵지 않겠냐는 의견이다.

국내 인공지능(AI) 규율의 포괄적 기본법인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이 지난주 시행됐다.
이 법은 인공지능을 개발·제공하는 사업자뿐 아니라 인공지능을 활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공지능 이용 사업자를 포괄 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여신·신용평가·보험 언더라이팅 등 핵심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은행·카드사·저축은행·캐피탈사 등도 적용을 받는다.
은행권이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고영향 AI' 규율이다. AI 기본법 체계에서 고영향 AI는 국민의 권리·의무, 생계, 신용도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은행이 운용하는 내부 신용평가모형, 자동 대출심사·한도 산정, 이상거래 탐지(FDS), 사기 탐지 시스템 등은 고객의 금리, 승인 여부, 거래 제한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내부 모형을 직원 참고용이라고 설명하더라도 실제로 결정을 좌우하는 비중이 크다면 고영향 AI로 분류된다.
고영향 AI로 지정된 시스템에는 별도의 의무가 부과된다. 위험 식별·평가·완화를 포함한 위험관리 방안 수립, 학습데이터 개요와 알고리즘 작동 방식에 대한 설명 가능성 확보, 이용자 보호방안 마련, 사람에 의한 관리·감독 체계 정비 등이 대표적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기존 내부통제 체계 외에 전행 차원의 AI 리스크 관리 프레임워크와 전담 조직, 책임자 지정, 로그·모델 관리 체계를 갖추는 방향으로 조직과 프로세스를 손질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금융사를 118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은행 5곳(25%), 보험사 4곳(7.5%), 증권사 1곳(2.7%)만 AI 관련 의사결정기구를 설치했다. 약 85%의 금융회사는 AI 윤리 원칙, 위험관리 기준 등을 마련하지 않았다.
규제 첩첩산중에 부담 커
은행권은 이미 포괄적인 디지털·데이터 규제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규제 피로감을 토로한다. 금융회사들은 현재 전자금융거래법과 전자금융감독규정, 정보보호와 망분리 규제, 개인정보보호법과 신용정보법, 내부통제·소비자보호 규정 등을 동시에 적용받고 있다.
여기에 AI를 도입하며 금융분야 AI 가이드라인에 더해 AI 기본법까지 부담이 늘었다. 예를 들어 대출심사 AI는 여신 건전성과 소비자보호 측면에서 금융위·금감원 기준을, 데이터 처리 측면에서 개인정보보호·신용정보 규제, 위험 기반·설명 가능성 측면에서 AI 기본법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고영향 AI 분류 기준과 세부 의무 항목이 여전히 구체화되지 않은 점도 현장 혼란 요인으로 지적된다. 포괄적인 정의는 돼 있으나 실제 적용 범위를 결정할 세부 시행령과 고시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AI기본법 적용 사안인지 가이드라인 적용 사안인지 아니면 또 다른 법령이 적용되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며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만 현업에서도 혼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 빠진 컨트롤타워…금융권 목소리 반영될까?
국가 AI 정책을 주도하는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에 금융위가 제외된 점도 금융권의 우려를 낳고 있다. 재정경제부·산업부·복지부·개인정보위 등 각 업권과 연관된 13개 부처가 참여하는 점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물론 금융위와 금감원은 금융분야 AI 가이드라인과 모범규준을 따로 마련한 상태다. 하지만 행정지침·권고 성격이라 개별 조항 위반이 곧바로 과태료나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구조는 아니다.
반면 AI 기본법은 실정법으로 과태료 부과나 시정·중지명령 등 제재 수단이 직접 동원될 수 있다. 법 시행으로 인한 영향이 상당한데 컨트롤타워에 금융당국이 빠진 탓에 금융권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위가 과기부와 협의한다지만 전략위에 포함되지 않아 낼 수 있는 목소리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안착 과정에서 발생하는 잡음을 두고 타 업권 대비 대응이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아직 시행 초기라는 점을 감안해 계도 중심으로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도 AI 기본법이 금융산업에 특화되도록 과기부와 논의를 거쳐 가이드라인을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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