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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서 배운다]대한전선 '믿는 도끼에 찍혔다'

  • 2013.11.08(금) 09:50

임종욱 前대표 실권 쥐고 부실경영…유동성 위기 자초
개인 비리로 검찰 구속…회사·임직원 피해 극심

2013년, 중견기업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업황부진, 경쟁심화 등 외부요인도 있지만 오너의 오판, 장기전략 부재, 혁신 실패 등 내부요인이 더 크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미미해진 기업들의 경영 실패사례를 통해 기업의 갈 길을 모색해 본다.[편집자]

 

50년 넘게 흑자를 내온 대한전선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알짜 사업인 전선 분야에서 꾸준히 현금을 창출하지만, 무리한 투자 과정에서 일으킨 빚 부담에 허덕이며 2009년부터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다.

 

창업자 고(故) 설경동 회장의 손자인 설윤석 사장은 지난 달 경영권까지 내놨다. 대한전선이 몰락한 이유에 대해 임직원들은 하나같이 단 한 명의 인물을 거론한다. 2002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설원량 전(前)회장의 뒤를 이어받은 전문경영인 임종욱 전(前)대한전선 대표 겸 부회장이다.

 

그의 부실경영이 대한전선을 사지로 내몰았고 탄탄하던 기업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전문경영인 한 사람이 회사를 어디까지 망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그는 개인 비리와 함께 회사에 거액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구속 수감중이다.

 

◇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

 

"한 개인이 지속가능한 위대한 기업을 만들 수는 없지만 반대의 경우 권력을 쥔 잘못된 리더 한 사람이 기업을 몰락으로 이끌 수 있다."-미국 경제학자 짐 콜린스의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 中에서-

 

임 前부회장은 설원량 前회장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그룹 재무 분야에서만 30년 이상 몸 담으며 안살림을 꿰고 있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돈 굴리는 선수'였고, 그룹 경영의 전권을 손에 쥐면서 공격적인 투자 행보가 시작됐다.

 

당시 그에겐 그룹에서 생기는 모든 일에 대해 단독으로 처리할 권한이 있었다. 무주리조트와 남부터미널 부지, 쌍방울, 대경기계, 남광토건, 온세텔레콤 등을 거침없이 사들였고, 수조원에 달하는 투자 결정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부동산과 주식 투자로 몸집을 불린 대한전선에 유동성 위기를 안겼고, 지분법 손실규모가 크게 늘었다. 결국 이듬해 적자를 기록했고, 차입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위기가 찾아왔다.

 

만약 리먼브라더스 파산과 금융위기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지 않았다면, 인수·합병 기업들의 실적이 좋았다면 대한전선은 아직도 우량기업이었을지도 모른다. 임 前부회장이 뒷주머니를 찬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다.

 

◇ 어차피 내 회사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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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상황 악화 속에서도 부동산을 팔고 유상증자로 자본도 확충하면서 버텨내던 대한전선은 2011년 말 충격적인 비보(悲報)를 접한다. 검찰이 임 前부회장의 개인 비리와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밝혀내고,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이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대한전선과 계열사의 회사자금 95억원 상당을 횡령하고, 회사에 500억원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입힌 임 前부회장을 횡령과 배임(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2007년부터 서서히 대한전선을 갉아먹던 그의 불법 행각은 2011년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될 때까지 철저히 은폐됐다. 회사의 발전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일에 몰두했고, 누구도 그의 횡령·배임을 막아내지 못했다.

 

임 前부회장이 구속된 이후 대한전선은 더욱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신용평가사는 재무부담에 경영진 구속까지 총체적 부실에 빠진 대한전선의 채무상환능력에 의구심을 가졌고, 결국 투기등급으로 강등시켰다. 자본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된 셈이다.

 

대한전선 임직원들은 가장 믿었던 전문경영인이 비리를 저질렀고, 회사 전체를 궁지로 몰아넣은 점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그룹의 전권을 쥔 임 前부회장의 비리로 인해 회사와 임직원이 피해를 봤다"며 "회사는 재무적으로 힘들어졌고, 수십년간 쌓아온 대외 이미지도 한순간에 무너졌다"고 말했다.

 

대한전선에 정통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2006년 부동산 투자 수익을 낼 당시만해도 전문경영인의 과감한 전략은 경쟁사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며 "부동산 시장 침체로 자금 융통이 어려워지면서 부실 경영과 비리가 연쇄 반응을 일으켰고, 임 前부회장에 대한 평가도 180도 바뀐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한전선은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부터 매년 적자를 내고 있으며, 채권금융기관과의 자율협약 하에 자산매각과 재무구조 개선 등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창업주 일가인 설윤석 사장은 자신이 회사 정상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지난 달 초 경영권 포기를 선언했다. 현재 대한전선은 전문 경영인인 손관호 회장과 강희전 사장 체제를 유지하며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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