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오!마이JOB]②'열정'..또 하나의 스펙일 뿐

  • 2014.03.25(화) 11:35

"스펙 쌓기도 벅찬데…" 기업들 '+α' 원해
기업요구와 현실 괴리 커..취준생 부담 가중

<글 싣는 순서>
①취준생의 하루..'高3으로 돌아왔다'
②'열정'..또 하나의 스펙일 뿐
③'스펙 안보자니'..기업들도 고민
④취업설명회 '냉탕과 열탕 사이'
⑤"놀며 배우며 취업하자"
⑥"취업 아닌 직무에 열정 보여라"
⑦이력 허위기재, 꼼짝마!
⑧사진으로 만난 취준생의 꿈

 

'당신의 열정을 응원합니다'

 

한 대기업 채용 포스터를 보던 김윤경(가명)씨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작년에 지원했다가 낙방했던 경험이 떠올라서다. 최종면접까지 갔지만 기업이 요구한 '열정' 부분에서 막혔다. 억울했다. 누구보다 열정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 열정으로 지금까지 살았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면접관은 "우리가 원하는 열정을 갖고 있지 않네요"라고 말했다. 그가 알고 있는 열정과 회사가 원하는 열정은 달랐다.

◇ 기업이 원하는 열정, 그게 뭔가요

 

채용시장에 '탈(脫) 스펙'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 같은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출신학교, 학력, 학점, 토익점수 등 스펙이 아닌 지원자의 열정과 끼를 보고 채용하겠다고 선언하는 기업들이 늘고있다. 이에 따라 취업준비생의 고민은 늘고 있다. 국어사전에 정의된 열정은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 정의는 어디까지나 사전에만 나오는 말이다. 기업들이 원하는 열정은 제각각이다. 대학가에서 만난 취업준비생들은 기업 인재상에서 거론된 열정이 뭔지 알아내는 것이 더 어렵다고 토로한다. 기업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몇줄짜리 소개 글만으로는 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 8월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준비 중인 윤경현(가명)씨는 "여러 기업의 입사 면접을 본 결과 기업들이 얘기하는 열정에도 종류가 있다는 걸 알았다"라며 "A기업에서의 열정은 시키는 일에 대해 고분고분 열심히 일하는 것을, B기업에서의 열정은 공격적으로 일하는 것을 의미하더라"고 말했다.

 

▲ 취업준비생들은 자신이 입사하고자 하는 기업의 문화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홈페이지에 나온 몇 마디 설명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 취업준비생이 학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 스펙 안본다고요? 천만에 말씀


최근 일부 기업들은 '채용시 스펙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준비생들은 왜 스펙 쌓기에 매달리고 있을까.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글로벌 교육브랜드인 EF 에듀케이션 퍼스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 취업준비생의 38.4%는 '영어공부에 1만 시간 이상 투자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조사결과를 보면 취업준비생의 38%가 '스펙부족으로 불안하다'고 답했다.

대학교 4학년생인 최병용(가명)씨는 한달에 30만원 가량을 취업준비 비용으로 쓴다. 자격증 및 영어시험 학습비용이다. 매달 치르는 토익과 토익 스피킹 비용 13만원은 별도다. 방학 때는 학원비가 더 들어간다.


▲ 취업준비생들의 스펙은 이미 하늘을 찌를 듯이 높다. 기업 입장에선 스펙만으로 변별력을 찾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또 다른 채용요소들을 발굴하고 있다. 한 대학 세미나실에서 진행된 채용설명회에 취업준비생들이 가득 찼다. [사진=이명근 기자]

최 씨는 "기업들이 스펙을 안 본다고 하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 "스펙은 기본이기 때문에 스펙 없이 열정과 패기만으로 입사하는 경우는 없다"고 전했다. 취업설명회장에서 만난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도 "사실 지원하는 학생들의 스펙은 기본적으로 매우 높다"며 "스펙이 상향 평준화 돼있어 그다지 의미가 없어서 자기소개서를 유심히 살펴본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입사 지원서를 내는 취업준비생들의 스펙이 높아 기업 입장에서는 변별력이 없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다른 부분에서 변별력을 찾으려 한다. 기업들이 '열정', '도전', '패기'를 인재상으로 내세우는 진짜 이유다.

◇ 취업 8대 스펙을 아시나요?

기업들이 '스펙+α'를 원하면서 취업준비생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더욱 많아졌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02년 당시만해도 취업준비생들은 취업을 위해 준비해야 할 스펙으로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등을 꼽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2012년 조사에서는 '봉사, 인턴, 수상경력'이 추가됐다. 이른바 '취업 8대 스펙'이다. 기업들이 스펙 이외의 것을 요구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취업준비생들은 일반적인 스펙 쌓기도 버거운 마당에 기업들이 제시한 추상적인 과제에 대한 대비도 해야한다. 문제는 기업들이 원하는 일종의 '스토리'를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 스스로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 기업들은 지원자들에게 '스펙보다 열정, 패기, 도전 등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취준생들은 기업들이 내세우는 기준은 이미 기본이 된 스펙에 또 하나의 스펙을 추가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SK텔레콤 취업설명회장 모습. [사진=이명근 기자]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한 한 취업준비생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면서 "기업설명회를 열심히 찾아다녀봐도 매번 뜬구름 잡는 이야기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도 "현실에 쫓기는 취준생들이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만족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기업들이 또 하나의 스펙을 만든 셈"이라고 밝혔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실행하고 있는 해외교류활동이나 봉사활동, 국토대장정 등에 취준생들이 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면접 과외'도 성행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관계자는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입사 희망자들을 투자 대상이 아니라 당장 뽑아먹을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스펙과 함께 부가적인 스토리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기업들의 이런 시각이 변하지 않는 한 취업 희망자들의 고통은 갈수록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