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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계家]<33>성림①2010년 효성에 무슨 일이…

  • 2014.09.16(화) 10:00

조석래 회장 두 매형…초창기 경영인맥 한 축
2세도 비슷한 궤적…한때 외삼촌과 ‘한 울타리’

2010년, 효성가(家)를 스치듯 잠깐 얼굴만 비추고 떠난 친족 집안이 있다. ‘스치듯’이란 말은 일반인에게는 매우 낯선 면면의 기업들이, 불과 몇 개월간 효성의 ‘한 지붕’ 아래 있은 뒤 ‘친족 분리’란 이름으로 느닷없이 계열 분리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기에 명색이 재벌가의 일원인데도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과 다름없는 베일에 싸인 존재로 되돌아갔다는 의미가 덧칠해진다.

당시 계열 분리를 매개로 들춰 본 관련 친족 기업의 어제와 오늘은, 그러나 결코 평가절하될 수 없다. 고(故)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1906~1984) 시절에는 효성 경영인맥의 한 축을 형성했고, 후대에도 효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핏줄 특유의 끈끈함이 효성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성림(成林)’과 ‘오원(五沅)’, 바로 조석래(79) 효성그룹 회장의 두 누나 집안 이야기다.  


경남 함안이 고향인 조홍제 창업주는 경남 진주 명문가 출신의 고 하정옥(1906~1978) 여사와 슬하에 3남2녀를 뒀다. 조 창업주는 두 딸도 고향 인근의 대지주 집안에 시집을 보냈는데, 맏딸 고 조명숙(1924~1998)씨가 경남 진양의 허정호(95)씨와 인연을 맺었고, 차녀 조명률(88)씨는 경남 산청의 권병규(89)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허정호씨는 세브란스의전(현 연세대 의대)을 나온 의학박사 출신이다. 서울 인사동에서 꽤 컸던 신한병원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조 창업주의 맏사위는 효성그룹의 효시인 효성물산(1957년 설립·1998년 11월 효성에 흡수합병)에서 조 창업주가 대표이사 사장으로 있던 1970년대에 감사로 적(籍)을 둔 다소 이례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다.

둘째사위 권병규씨도 효성그룹 초창기때 활동한데다 그간 이름이 오르내린적이 별로 없어 다소 생소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원래는 효성의 전신(前身) 동양나이론의 스타팅 멤버다. 성균관대를 졸업한 후 개인사업을 하다가 1966년 11월 동양나이론 설립 당시 상무를 맡았다. 이후 전무를 거쳐 옛 효성건설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2세들도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조 창업주의 3남2녀 중 맏아들 조석래 회장이 1981년 회장에 오르며 효성을 물려받을 무렵 전후(前後)로 외삼촌과 함께 효성이란 울타리 안에 있었던 조카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비록 독립해 지금은 독자적인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허수창(70) 오원 회장과 권인섭(67) 성림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허수창 회장은 허정호 전 원장의 2남4녀 중 장남으로 원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서울사대부고를 나온 뒤 연세대 건축학과에 입학하며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게 된다. 대학 졸업 뒤에도 미국 일리노이 테크놀로지대(Illinois Institue of Technology)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허 회장이 효성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학업을 마치고 미국 시카고와 플로리다주의 건축설계사무실에서 근무한 지 5년쯤 지난 40대를 바라보던 무렵이다. 당시 효성의 건설사업부 이사를 맡아 귀국했던 것. 1990년대초 지금의 오원물산과 오원엠앤아이(옛 오원종합개발)를 기반으로 사업가의 길로 방향을 틀 때 까지 그는 7년 여 동안을 효성에 몸담았다.

권병규 전 효성건설 회장의 3남1녀 중 장남 권인섭 회장도 적지 않은 효성 계열사를 거쳤다.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동양나이론, 효성물산 영업 및 해외 파트에서 근무했고, 효성기계공업 감사를 지내기도 했다. 10여년간 효성에서 쌓은 경험을 자산 삼아 성림의 경영일선에 나선 때가 30대 후반이던 1984년이다. 이 성림은 어느 순간 뚝 끊겨버린 듯한 조석래 회장 조카들의 기업가 스토리를 다시 잇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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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홍제빌딩 머문 효성 안방마님 송광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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