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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의 그늘]②덥석 물었다 큰코 다친 '카푸어'

  • 2015.06.11(목) 14:00

'유예 할부'로 판매 대폭 확대..업체들 배만 불려
유예금 미납시 신용불량자로..'카푸어' 양산

수입차 100만대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 소비자들의 수입차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車=사회적 지위'라는 등식이 통용된다. 그덕에 수입차 사장은 고속성장 중이다. 조만간 수입차 점유율이 20%를 넘어설 전망이다. 하지만 덩치는 커졌지만 속은 부실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국내 수입차 시장의 현 주소와 풀어야할 과제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쉽게 생각했어요. 하루에 커피 두 잔만 안마시고 모으면 차값을 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대기업 과장인 이 모씨(39세)는 최근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착잡한 마음을 달랠 길은 오직 담배 뿐이다. 이씨를 착잡하게 하는 것은 지난 3년간 탔던 애마 때문이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했던 그는 4년 전 금쪽같은 딸아이를 얻었다. 아이가 생기자 이래저래 차를 써야 할 일이 많아졌다. 기저귀며 분유며 매번 큰 가방에 아기 용품을 둘러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마침 지인을 통해 수입차 딜러를 소개 받았다. 딜러는 4490만원짜리 차량을 권했다. 평소 관심있게 봐왔던 차였다. 하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그러자 딜러는 유예할부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차 값의 30%(1347만원)를 선납하고 월 32만4276원씩 36개월을 내면 된다고 했다. 나머지 금액은 3년 뒤에 완납하면 되는 조건이었다. 소중한 딸아이를 좋은 차에 태우고 싶었다. 이 씨는 '커피 두 잔 값'이란 말에 선뜻 계약했다.

 

◇ 3년 뒤에 터지는 폭탄

 

국내 수입차 업체들은 대부분 '유예 할부'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유예 할부 프로그램은 차값의 30%를 미리 내고 이후 2~3년간 매달 저렴한 비용만 납입하면 수입차를 소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대신 나머지 차값은 2~3년의 계약이 끝나면 일시에 완납한다는 조건이다. 차값의 완납을 2~3년 뒤로 미뤄둔다고 해서 '유예 할부'다.

 

'유예 할부'의 장점은 목돈이 없어도 쉽게 수입차를 소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입차를 구입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가격이다. 수입차 업체들이 공격적인 가격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수입차는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여전히 고가(高價)다. 국산차보다 최소 1000만원은 더 비싸다. 갖고는 싶지만 비싸서 못 갖는다.

 

'유예 할부'는 이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한 금융상품이다. 수입차 구입의 문턱에서 주저하는 소비자들에게 매월 저렴한 비용을 내면 이 차를 가질 수 있다고 유혹한다. 문턱을 낮춰 소비자들로 하여금 수입차를 선택하게끔 하는 일종의 유인책이다. 이 씨가 '커피 두 잔 값'에 선뜻 계약한 것도 이 때문이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하지만 '유예 할부'에는 함정이 숨어있다. '유예 할부'의 핵심은 '유예율'이다. '유예율'은 전체 차값에서 계약기간 만료시 완납해야 하는 금액의 비율이다. '유예율'이 65%라면 계약기간 만료시 전체 차값의 65%를 일시에 완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차값의 65%를 해당 수입차 업체가 빌려준 셈이다. 매달 나눠 내는 금액에는 차값 중 원금 일부와 업체가 빌려준 65%에 대한 이자가 포함돼 있다.

이 씨의 경우도 유예율은 65%였다. 차값의 30%는 선납금으로 미리 납부했다. 남은 차값은 4490만원의 70%인 3143만원이다. 이씨가 36개월간 매달 납부한 32만4276원에는 남은 차값의 5%에 해당하는 원금과 유예한 차값 65%에 대한 이자가 포함돼 있다. 이 씨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된 것은 지난 3년간 유예됐던 차값 2918만5000원을 일시불로 내야해서다.

 

계약 기간 만료 후 유예된 금액을 완납하지 못하거나 월 납임금을 제때 내지 못하면 신용불량자 전락할 수 있다. 또 법적으로 민·형사적 책임도 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대출을 받는 등 빚을 지기도 한다. 일명 '카푸어(Car poor)'는 이렇게 양산된다.

 

◇ 업체 배만 불리는 '유예 할부'

 

'유예 할부'프로그램은 궁극적으로 수입차 업체들만이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소비자가 궁지에 몰릴수록 수입차 업체들은 더 큰 수익을 거두는 구조다. 실제로 유예금 완납이 불가능해질 경우 유예 연장 재계약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매달 내는 금액이 크게 올라간다. 높은 이자율이 적용돼서다. 이는 고스란히 수입차 업체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또 유예금을 완납하지 못하면 3년간 탔던 애마를 중고차로 처분, 유예금을 상환할 수도 있다. 하지만 3년 사용한 수입차의 중고차 가격은 처음 구입 가격의 40~50% 수준으로 떨어진다. 차를 처분해도 남은 유예금을 모두 갚지 못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중고차 가격과 갚아야 할 유예금 간의 차액도 고스란히 소비자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다.

 

'유예 할부' 프로그램은 수입차 업체들에게 더할나위 없이 좋은 프로그램이다. '유예 할부'프로그램은 200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국내 수입차 시장이 커지면서 판매 확대를 노리던 주요 수입차 업체들이 앞다퉈 들여왔다. 그 결과 수입차 업체들의 실적은 매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유예 할부'로 판매 확대와 실적 호조라는 두 토끼를 잡은 셈이다. 

 


실제로 BMW코리아의 경우 지난 2011년 467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이 작년에는 571억원으로 증가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2011년 463억원에서 작년 1221억원으로 늘어났고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도 328억원에서 작년 546억원으로 증가했다. 3월 결산법인인 한국토요타는 지난 2011년 328억원의 영업손실을 입었던 것에서 지난 2013년 영업손실 122억원을 기록하며 적자폭을 줄여가고 있다.

뿐만 아니다. 유예 할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각 수입차 업체들의 자체 파이낸스 회사들의 실적도 함께 상승했다. 특히 폭스바겐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는 지난 2011년 52억원의 영업손실을 입었지만 매년 실적이 증가해 작년에는 2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BMW코리아,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산하 파이낸스 회사들도 매년 수백억원 대의 영업이익을 거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예 할부'제도는 수입차 업체들의 수익 향상에 최적화돼 있는 프로그램"이라며 "마치 물고기를 잡는 '통발'과 같다. 소비자로 하여금 수입차 시장에 발을 들여놓기는 쉽게 해놓은 반면 빼기는 어렵게 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 '현금 할인' 유혹의 이면

수입차 업체와 해당 업체의 전속 할부 금융사 간의 '패키지 영업'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패키지 영업'은 소비자가 수입차를 구매하려 할 경우 전속 할부 금융사의 유예 할부 프로그램을 이용토록 유인하는 것을 말한다. 유인하는 방법은 차값 할인이다. 만일 우리 회사 산하의 파이낸스사 유예 할부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차값의 일정부분을 할인해주겠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유예 할부를 통해서라도 수입차를 타려는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솔깃한 제안이다. 차값 할인과 더불어 편의 장비 부착 등 소비자의 구미가 당길만한 제안들을 쏟아낸다. 최근 유예 할부로 수입차를 구매한 최 모씨(33세)는 "딜러가 제시한 상품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며 "좀 더 많은 할부 금융사의 상품과 비교해보고 싶었는데 자기네 것이 아니면 할인 등의 혜택은 없다는 말에 그냥 계약했다"고 말했다. 

결국 현재 실행되고 있는 수입차 업체들의 유예 할부는 소비자들에게 '현금 할인을 받고 싶으면 이것만 선택하라'는 강요인 셈이다. 그렇다면 자체 할부 금융사를 이용해 유예 할부를 받을 경우 생기는 차값 할인으로 수입차 업체들은 일정 부분 손해를 감수하는 것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다.
 

▲ 대부분의 수입차 업체들은 전속 할부 금융사들과 함께 이른바 '패키지 영업'을 한다. 수입차 업체는 차를 판매하고 유예할부는 전속 할부금융사 상품을 이용하도록 소비자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대신 전속 할부 금융사 상품을 이용할 경우 100만~200만원의 현금 할인 혜택을 부여한다.

 
한 수입차 업체 딜러는 "고객들은 현금 할인과 함께 각종 편의 사양 장착을 가장 원한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전속 할부 금융사를 이용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면서 "할인과 편의 사양 장착으로 줄어든 차값은 고객이 매달 내는 납입금 속 이자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결국 겉으로는 할인을 해주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소비자에게 제값을 다 받아내는 셈이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할인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수입차 가격에서 현금으로 100만~200만원 가량을 할인해주겠다는 제안은 무시할 수 없다. 수입차 업체들은 이런 점을 십분 이용한다. 소비자가 원하든 원치 않든 결론적으로 자신들의 유예 할부 프로그램으로 묶어 소비자의 지갑을 열도록 하는 구조다.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수입차 업체들이 전속 할부 금융사를 두는 것은 그만큼 할부 금융 사업이 노다지 사업이기 때문"이라며 "큰 품을 들이지 않아도 수입차 업체는 판매 확대와 수익을 누릴 수 있고 할부 금융사는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업체에게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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