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해가 온종일 계속되진 않는다. 밤을 밝힐 등불을 준비하라.”(박진수 LG화학 부회장)
“지금은 잠깐 따뜻해지고 마는 ‘알래스카의 여름’이다. 다시 도래할 ‘겨울 폭풍’에 대비해야 한다.”(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
국내 석유화학사들이 상반기 반짝 호실적을 내놓고 있다. 제품의 원료인 원유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한 뒤 안정화됐고, 일시적으로 제품 수요도 늘어나면서 스프레드(제품가-원료가)가 고공행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석유화학 업황의 전망은 밝지 않다.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 타결 등 국제정세에 의해 유가가 출렁거릴 수 있고 글로벌 경기회복도 더딘 탓이다. 특히 미국이 셰일혁명을 바탕으로 석화제품 수입을 줄이고 있으며 중국 역시 제품 생산 설비를 늘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국내 유화업계 CEO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금의 반짝 실적이 독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하며 미래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상반기 깜짝 실적
올 상반기 정유 및 화학사들의 실적은 눈부시다. 지난 17일 2분기 실적을 발표한 LG화학은 영업이익 5634억원, 당기순이익 353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대비 56.7%, 55.6% 증가한 것이다.
롯데케미칼과 금호석유화학, 대한유화 등 국내 석유화학 4사의 2분기 영업이익 총합 역시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자료: 신한금융투자(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 대한유화는 추정치) |
이 같은 실적호조는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 등 주요 제품들의 스프레드가 큰 폭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지난 2분기 PE 스프레드는 톤당 805달러 수준으로 역사적 고점이다.
정유사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제유가 급락으로 발생한 재고손실과 정제마진이 악화돼 연간 적자를 기록했지만 올 들어 정제마진이 큰 폭으로 개선되면서 1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분기 실적 역시 1분기보다 나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응주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성수기 효과와 정기보수로 인한 공급 축소로 제품의 평균 스프레드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라며 “비축된 저가 원료를 투입한 것도 실적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 일시적 호황일 뿐
하지만 업계에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특히 유화기업 CEO들은 장기적 업황 전망이 밝지 않아 현재를 경영 위기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다.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은 ‘아시아석유화학회의(APIC) 2015' 개회사에서 “미국은 셰일가스, 중국은 석탄 등을 기반으로 대규모 화학공장 증설이 진행 중이어서 경영환경은 안심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상반기 실적 호조 역시 긍정적인 외부 요인이 있었고, 일시적인 호황 때문인 것으로 판단했다. 각 사들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는데 주력하는 이유다.
정유사들은 정유사업 비중을 낮추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중심으로 배터리 사업을 지속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값싼 미국 광구에 투자해 미래 자원을 확보하고, 석유개발사업에 힘을 실을 계획이다. 정유사업은 글로벌 기업과의 합작으로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정유사업에만 몰두했던 현대오일뱅크도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데 적극적이다. 혼합자일렌(MX)과 윤활유사업에 뛰어든데 이어 카본블랙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유동층분해공정(FCC)에서 나오는 슬러리 오일 일부를 카본블랙 제조업체에 판매하던 것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카본블랙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에쓰오일은 화학사업 내 제품군을 다각화하기 위해 올레핀 다운스트림 콤플렉스(ODC)에 투자할 예정이고, GS칼텍스는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바이오부탄올을 개발해 상업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유화기업인 금호석유화학은 풍력발전 시장에 도전한다. 풍력발전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는 유니슨과 풍력발전 공동사업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이다. 이미 태양광 시장에 진출한 금호석유화학은 풍력발전 사업을 더해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남장근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과 중동 등에선 값싼 원료를 바탕으로 치고 올라오고 있으며 선진국들은 특허 장벽으로 막고 있어 국내 유화기업들이 신사업을 하는 게 쉽지는 않다”며 “그럼에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사업을 다양화하거나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력을 갖춘 해외 기업들을 인수·합병하거나 합작을 통한 진출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