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20년 남짓한 르노삼성자동차가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노동조합과의 마찰이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당장 앞으로의 생존 여부를 고심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고 있다. 내수시장에서도, 세계시장에서도 르노삼성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내부적으로 지배구조 이슈도 불거지고 있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상황. 르노삼성의 위기와 그 배경, 그리고 넘어야할 과제들을 진단해본다.[편집자]
르노삼성의 근본적인 문제는 차종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현재 르노삼성의 판매 차종은 SM3, SM5, SM6, SM7, QM3, QM6, 르노 클리오, 르노 마스터 등 8종이 전부다. 주력 차종이라 부를 건 세단 'SM'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SUV) 'QM' 시리즈가 전부인 셈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후속 대응이 느리다. 'SM5' 3세대 모델은 나온지 10년이 됐지만 여전히 세대교체 없이 팔리고 있다. 신차는 통상 5년이면 완전변경 모델이 나온다는 점에서 SM5 3세대 모델은 흔히 '사골모델'이라 불린다.
이는 모기업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르노삼성은 국내 시장서 판매할 신차부터 규모까지 바다 건너의 르노그룹이 정한다. 그러다보니 필요한 시기에 알맞는 차를 제때 개발하고 공급하기가 쉽지 않다.
실적이 저조하면 신차 지원을 요구하기도 어렵다. 르노삼성만의 자체 개발이 가능하지만 이 역시 모기업의 눈치를 봐야 한다.
◇실적 하락⇔신차 공급 '후순위' 악순환 반복
문제는 르노그룹도 한국 시장에 대해선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유럽 등 다른 지역에 비해 매출 비중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2018년 르노그룹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그룹내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상위 5개국은 대부분 유럽이나 남미쪽이다. 모로코(42.5%)가 압도적으로 높았고 그 뒤로 러시아(27.6%), 프랑스(26.2%), 터키(18.7%), 아르헨티나(14.8%) 순이다.
반면 아시아 지역은 주로 하위권이었다. 이란의 매출 비중이 10.6%로 아시아 지역 중 가장 높은 가운데 한국은 5.1%에 그쳤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도 고작 0.8%에 불과했다.
주요 매출처가 아니다보니 한국 시장에 대한 르노그룹의 관심은 서서히 멀어졌다.
일단 신차 배정에서 밀렸다. 르노삼성이 지난해 새로 출시한 차는 르노 마스터·SM3·SM5·QM6·뉴 QM3·르노 클리오 등 총 6종이다. 같은 기간 15종을 쏟아낸 한국GM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다. 이중에서도 르노 마스터를 제외하면 모두 연식 변경 모델이다.
르노그룹의 소극적 대처에 르노삼성의 내수 판매량과 점유율은 매년 뒷걸음질 쳤다. 르노그룹은 이를 이유로 다시 신차 배정을 미룬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자체 개발도 '눈치'...R&D 비중 2%대로 '뚝'
그렇다고 자체 신차 개발에 선뜻 나설 수 없었다. 흥행 여부를 장담할 수 없었고 적잖은 개발비를 들여 신차를 내놓기엔 본사의 눈치가 보였다. 때문에 드물어도 본사의 신차 배정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르노삼성이 현재 판매하는 차종은 OEM(주문자 상표부착) 방식으로 본사에서 수입한 차들이 대부분이다. 르노그룹의 수입상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자체 개발한 신차가 거의 없다보니 르노삼성의 신차 개발 능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르노삼성은 최근 연구개발 비중을 줄이고 있다. 2012년 이후 르노삼성의 매출 규모 대비 연구개발비(R&D) 비중을 살펴보면 2012년 4.3%를 기록한 이후 점점 떨어져 2016년부터 2년 연속 2%대에 머물러 있다. 사실상 연구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힘든 수치다.
모기업의 신차 배정에만 목 매는 사이 르노삼성의 자체 기술력은 뒤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한국GM과 쌍용차의 지난한 내홍에도 불구하고, 르노삼성은 반사이익은 커녕 이들과 여전히 업계 꼴찌를 두고 작년 내내 다퉜다"며 "과연 르노삼성이 내수시장에서 살아남을 만한 경쟁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르노삼성은 올해 역시 신차 출시 계획이 불투명하다. 부산공장 노동조합의 무기한 파업과 실적 감소로 르노그룹의 눈 밖에 난 탓이다. 현재는 QM6등 기존 모델을 소폭 개선한 연식 변경 수준에서의 신차 출시만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