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유사들이 수입하는 원유에서 이란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지난해 기준 전체 수입량 11억1628만배럴의 5%인 5820만배럴에 불과하다. 여차하면 다른 국가 제품으로 바꿀 수도 있을 만큼 적은 물량이다.
그럼에도 정유사들은 그간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제재 예외 연장조치가 한국에 허용될지를 두고 걱정의 눈초리를 보냈다. 왜 정유사들은 이란산 원유 수입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을까.
◇ 저렴한 나프타 원료
일반적으로 원유는 황 함유량이 적은 이른바 '가벼운 제품' 일수록 화학제품 원료인 나프타를 더 많이 생산한다. 이란산 원유는 그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축에 속했다. 정유사들이 이 제품을 정제하면 50%가량의 나프타를 채취할 수 있다. 일반 중동산 원유에서 뽑아낼 수 있는 나프타 비율(15%) 대비 3배이상 효율성이 좋다.
정유사들은 이란산 원유를 정제해 더 많은 나프타를 팔 수 있는 셈이다. 나프타는 경유와 더불어 정유사 실적 효자로 군림하고 있다. 국내 정유사 나프타 생산비중은 2010년 18%에서 지난해 25%까지 높아졌다.
더욱이 이란은 과거부터 미국과 갈등을 빚어 원유 수급 안정성이 낮다. 이 때문에 다른 지역 초경질유보다 가격이 2~6달러 가량 저렴해 정유사는 비용은 줄이면서 수익은 극대화하는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이란산 원유는 정유사의 화학기업 확장 전략에도 부합했다. 나프타는 화학구조를 일부 바꾸면 합성섬유, 페트병 원료인 파라자일렌(PX)의 원료가 된다. 최근 국내 정유사들은 중국 시장 급성장으로 인한 PX 호조로 화학사업 비중을 키우고 있다.
이란산 원유로 나프타를 더 많이 뽑아내면 저렴한 원료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어 정유사에 이득이다. 국내 정유사들의 PX 연간 생산능력은 지난해 9월 기준 SK이노베이션 260만톤, S-OIL 190만톤, GS칼텍스 135만톤, 현대오일뱅크 118만톤(관계회사 현대코스모) 등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저렴한 이란산 원유에서 뽑아낸 나프타는 자체수급, 수출 모두에 유리하다"며 "특히 나프타는 원가보다 더 비싸게 국제시세를 받고 팔 수 있었던 만큼 정유사에게 이득을 줬다"고 말했다.
◇ '아쉽지만'…수입 다변화
다만 국내 정유사들은 당분간 이란산 원유 이점을 누리지 못할 전망이다. 미국 정부가 한국, 중국, 일본 등 8개 나라에 대해 이란산 원유 수입 예외조치를 연장해주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달 2일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이 중단된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이란 외 다른 지역에서 초경질유 수급에 나설 계획이다. 정유사 설비는 산도, 점성 등에 따라 원유를 혼합해 석유제품을 뽑아낸다. 이란산 원유가 빠지더라도 빈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
당장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이란산 원유 수입 물량이 전무한 상황에도 정유사들은 공장을 가동한 바 있다. 이 기간 정유사들은 카자흐스탄, 러시아, 카타르로부터 초경질유를 수입해 이란산 원유 공백을 메꿨다.
대체 지역으로 카타르, 노르웨이, 호주, 미국 등이 거론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초경질유를 생산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며 "대체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정유사간 경쟁이 붙으면 초경질유 가격이 올라가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