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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바다 위 거대한 친환경 요새' HMM 펄호 직접 올라보니

  • 2025.05.07(수) 09:00

亞 수출 물류 잇는 최신 초대형 컨테이너선 취재
아파트 20층 높이…여의도 파크원보다 긴 길이
친환경 설비 두루 탑재…연료 절감·탄소 대응 구조

'HMM 펄'호./사진=도다솔 기자

지난달 28일 정오. 부산신항 3부두에 정박한 HMM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HMM 펄(Pearl)'호는 전장을 한눈에 담기 어려울 만큼 거대했다. 터미널 입구에서부터 타고 온 SUV는 거대한 철제 성곽 앞에 선 장난감처럼 한없이 작아 보였다.
 
펄호는 HMM이 친환경 경쟁력 강화와 선대 다변화 차원에서 2021년 국내 조선사 두 곳에서 발주한 12척의 선박 중 하나다. 지난해 7월 HD현대중공업에서 인도받은 1만3000TEU급(1TEU는 길이 6m 컨테이너 1개) 컨테이너선으로, HMM이 보유한 선박 중 가장 최신 기종이다. 선체 길이는 335미터(m). 남산 서울타워(약 240m)와 여의도 63빌딩(약 250m)을 뉘운 것보다 더 길고 여의도의 랜드마크인 파크원 높이(약 333m)를 웃돈다.

부산신항 3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이뤄지고 있다./사진=도다솔 기자

배는 선체 앞뒤 총 16개의 굵은 홋줄로 부두에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거대한 배가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선박은 항만에 머무는 동안에도 쉬지 않는다. 컨테이너 작업, 점검, 선원 업무, 보급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펄호 주변 분홍색 안벽 크레인은 알록달록한 컨테이너를 쉼 없이 실어 나르며 부두를 분주하게 누볐다. 기자가 승선한 날은 하역과 정비가 병행되는 중이었다. 다음날(4월 29일) 오후 1시에 다시 출항해 중국 칭다오로 향할 예정이라고 했다.

HMM 펄호./사진=도다솔 기자

HMM 펄호는 미주 서부와 한국·중국을 오가는 PS6(Pacific Southwest 6) 노선에 투입돼 있다. 부산을 출발해 중국 옌톈과 닝보, 상하이를 거쳐 미국 LA·롱비치항에 닿는 구조로, 한·중 수출 물류를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 연결하는 핵심 루트를 오가는 배다.

이 항로에선 전자제품, 섬유, 자동차 부품 등 다양한 소비재가 실린다. 회전율과 정시성이 중요한 노선 특성상 연료 효율과 기동성이 뛰어난 1만3000TEU급이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배에 올라 처음 방문한 곳은 브릿지(조종실)였다. 브리지는 해수면으로부터 약 70m 높이로 이 배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아파트 20층에 해당하는 고도에서 바라본 갑판 너머 바다는 육상에선 좀처럼 체감할 수 없는 탁 트인 시야를 안겼다. 

HMM 펄호 브릿지./사진=도다솔 기자
조타 핸들에 수평계가 달려있다./사진=도다솔 기자

브릿지 중심에는 자동차 스티어링휠을 닮은 조타 핸들이 있다. 1명의 운전자가 모든 기능을 다루는 자동차와 달리 선박은 조타수·항해사·선장이 역할을 나눠 조종하는 분업 구조로 움직인다. 조타 핸들은 조타수가 돌리고 엔진 출력은 항해사가 조절한다. 선장은 전체 상황을 통제하며 이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역할을 맡는다.

브릿지 한쪽에는 도선사를 위한 높다란 전용 의자가 눈에 띄었다. 도선사는 항만에 정박하거나 출항할 때 선박을 유도하는 외부 전문가다. 선원 대부분은 근무 중 서 있는 게 기본이지만 도선사의 경우 장시간 세밀한 조타를 맡는 만큼 앉아서 작업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마련된 자리다.

이정진 펄호 선장은 "부산 신항은 새로 지은 부두라 접안까지 1시간 반이면 충분하지만 벨기에의 앤트워프나 미국 사바나항처럼 오래된 항만은 길게는 10시간 넘게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브릿지를 나와 기관실로 내려가기 위해 선박 내 승강기를 이용했다. 보편적인 승강기처럼 좌우로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방식이 아니라 방문 열 듯 손잡이를 당겨 여닫는 수동식 문인 점이 특이했다. 철제 계단을 따라 기관실로 내려서자 곧이어 거센 엔진음과 발전기 소음이 온몸을 감쌌다. 후끈한 열기도 그대로 전해졌다.

HMM 펄호 메인 엔진./사진=도다솔 기자
HMM 펄호 발전기./사진=도다솔 기자

사방이 금속으로 둘러싸인 밀폐된 공간 안에서 엔진과 발전기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이어플러그(귀마개) 착용 필수'라는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고 몇마디 말조차 주고받기 어려울 만큼 소음이 굉장했다.

펄호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이곳에는 하루 평균 70~80톤의 연료를 태우는 7기통 메인엔진이 자리 잡고 있다. 기존 동급 선박이 하루 100톤 이상 연료를 썼던 것과 비교하면 약 20~30%가량 개선된 효율이다.

엔진 옆으로는 3500kW급과 4000kW급 발전기가 각각 두 대씩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날은 정박 중이라 총 4기 중 1대만 가동 중이었는데, 3500kW급 한 대만으로도 하루 동안 일반 가정 약 240여 가구가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부산 신항에 입항하는 'HMM 브레이브'호./사진=도다솔 기자

이날 취재 중엔 8600TEU급 'HMM 브레이브'호가 입항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브레이브호는 속도가 경쟁력이던 시절에 건조된 선박으로, 한때 세계 최대 엔진을 탑재한 대표적인 고속선이다. 반면 펄호는 연료 효율성과 환경 규제 대응을 핵심에 두고 설계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펄호에는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배출을 줄이기 위한 스크러버(탈황장치)와 SCR(질소산화물 저감장치) 같은 친환경 설비가 갖춰져 있다. SCR은 선박의 질소산화물(NOx) 배출을 줄이기 위한 핵심 장비로, 자동차에 요소수를 주입해 배출가스를 정화하는 원리와 같다. 여기에 향후 LNG 연료 전환이 가능한 'LNG-레디(Ready)' 설계까지 적용돼 시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

펄호 기관실 내 SCR 컨트롤러./사진=도다솔 기자

HMM 관계자는 "LNG-레디 설계는 아직 LNG 연료를 쓰지는 않지만 향후 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될 경우 LNG로 전환할 수 있도록 주요 설비와 구조를 미리 준비해 둔 개념"이라며 "선박 수명이 보통 20년 이상인 만큼 앞으로의 연료 전환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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