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2월 첫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내달 2기로 재도약을 앞뒀다. 지난달 초대 위원장인 김지형 전 대법관의 후임자로 선임된 이찬희 신임위원장은 '인권우선·공정성·ESG'를 원칙으로 삼아 삼성의 준법경영 체제 확립을 위해 힘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배구조 개선에 역량을 모으겠다고 강조했다.
26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율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신임위원장은 "준법감시위원회는 기업 내부가 아닌 외부에 설치된 독립 조직으로 지금까지 국내 기업이 가지 않은 길이었다"며 "제1기 위원회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처음 걸으며 대국민 사과·무노조 경영 폐기·경영 승계 포기 등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앞에 놓인 가장 어려운 문제는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한 걸음씩 길을 만들며 전진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1기 위원회가 올바르게 설정한 방향을 향해 길을 닦고 넓히는 일이 2기에 주어진 과제"라고 부연했다.
삼성 준법감시위는 외형상 삼성의 지시를 받지 않는 독립조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삼성 내부 준법감시제도 마련을 주문한 것을 계기로 출범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물산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7개 주요 계열사가 협약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 신임위원장은 "7개 관계사의 동의로 2기 위원회 역시 구성과 운영에 있어 완전히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고 출범하게 됐다"며 "어떠한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고 위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는 한편, 겸손한 자세로 내외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소통해 2기 위원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삼성의 준법문화 정착에 기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사람 중심 문화 형성…지배구조 개선 속도
이 신임위원장은 2기 준법감시위의 중심 추진 과제로 △인권우선경영 △공정하고 투명한 경영 △ESG 중심 경영의 확립을 꼽았다.
인권우선경영은 1기 준법감시위에서부터 꾸준히 강조해온 원칙이다. 1기 준법감시위가 '무노조 경영 폐기'를 이끌어 낸 것도 그 일환이다. 전임 김지형 위원장은 작년 12월 송년사에서 "삼성은 상품이 아니라 가치를 팔아야 하며, 이익이 아니라 사람으로 더 많은 이윤을 남겨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신임위원장은 "삼성의 성장을 위해서는 외형을 넘어선 콘텐츠 확대가 필요한데, 이러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라며 "기업의 중심은 사람이고 기업은 사람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업 내 모든 구성원이 신명 나게 일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직장이 되려면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의 인권이 평등하게 보호되고 보장돼야 한다"며 "무노조 경영 폐기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인권이 침해되는 어떠한 위법도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하고 견제하겠다"고 강조했다.
공정하고 투명한 준법경영의 정착도 추진한다. 기업의 불신을 증가시키는 부당한 대외 후원, 계열사나 특수관계인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하도급 업체에 대한 갑질과 같은 불공정 행위 등을 지양하고 모든 위법사항에 대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동일한 잣대로 원칙대로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이 골자다.
나아가 2기 준법감시위는 삼성의 준법경영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지배구조 개선'에도 힘을 쏟을 방침이다. 환경, 사회, 지배구조와 같은 비재무적 요소에 중점을 두는 ESG경영이 중요해진 만큼 그간 꾸준히 문제로 지적된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어서다.
다만 이를 성급하게 추진하지는 않겠다는 게 이 신임위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얽히고설킨 매듭은 일반적으로 묶는 것보다 푸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법"이라며 "취약한 기반 위에 계속해 쌓아 올린 구조물의 경우 밑동 하나를 잘못 건드리면 전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삼성이 국내 넘어 세계 최고 기업이 되는 것을 추구한다면 지배구조 개선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며 "외부 전문가 조언과 내부 구성원 의견을 다양하게 경청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배구조 개선이 삼성 계열사 간 지분관계 개편 작업까지 포함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지배구조 개선은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까지 모두 포함된다"며 "국민들이 바라보기에 올바르지 않다고 보는 것을 2기 준법감시위에서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고경영진 견제기구로서 유의미"
이 신임위원장은 삼성 준법감시위를 둘러싼 여러 비판에 대한 입장도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준법감시위가 다른 준법감시 제도와 중복되고 법률상에 근거가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신임위원장은 "준법감시위는 사적자치 영역에서 관계사들의 협약이라는 형식을 통해 존립의 적법성과 정당성에 대한 근거를 부여받고 있다"며 "기업 집단 내부의 계열사별 준법 감시와는 다른 차원의 최고경영진에 대한 준법감시 시스템 마련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현재처럼 지배주주가 최고경영진에 권한이 집중돼 있음에도 견제장치는 미약한 대한민국 기업 집단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신임위원장의 생각이다.
준법감시위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의문에 대해서는 "삼성 내부에서는 통제되지 않는 외부의 낯선 조직을 통한 개혁작업이 기업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의문이, 시민단체 등 외부에서도 기대에 못 미친 변화의 부족함에 대한 실망과 비판이 있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시도와 노력은 대한민국 기업 역사에 있어 준법경영 정착의 시금석이 될 기회"라며 "삼성은 소명 의식을 가지고 가장 먼저 발걸음을 내디뎌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기업의 준법경영에서도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려면 안팎의 노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줄탁동시'(啐啄同時·닭이 부화할 때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쫀다, 동시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의 개념이 적용돼야 한다고 봤다. 준법감시위는 삼성으로부터, 삼성은 정치권력을 비롯한 부당한 내외의 압박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각개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사랑하는 삼성 만들겠다"
이 신임위원장의 임기는 내달 5일부터 2년이다. 2기 준법감시위는 이 신임위원장을 포함해 총 7명으로 구성된다. 김우진 위원과 성인휘 위원은 1기 준법감시위에 이어 연임을 확정했다. 1기 준법감시위와 마찬가지로 사측 인사는 성인휘 위원 1명만 합류한다. 원숙연 위원은 1기 위원 중 보선돼 임기가 남아있어 2기에 걸쳐 활동할 예정이다.
그 외 △권익환 △윤성혜 △홍은주 위원은 2기 준법감시위에 새롭게 합류, 관계사 이사회에 추천된 상태다. 권익환 위원은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검사장 등을 역임한 법률전문가다.
윤성혜 위원은 경찰대 출신 여성 총경 1호로 경찰의 시각에서 준법경영에 대한 분석과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언론인 출신의 홍은주 위원은 여러 기업에서 준법감시를 담당하는 사외이사, 감사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 신임위원장은 "처음에는 불편하고 불만족스럽고 미울지 몰라도, 나중에는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원칙에 따라 준법감시업무를 수행하겠다"며 "국민과 내부 구성원 모두가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는 삼성으로 환골탈태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