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해 4분기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글로벌 경기 악화 탓이다. 작년 연간 매출은 사상 처음으로 300조원을 넘겼다. 하지만 2014년 3분기 이후 약 8년 만에 분기 영업이익이 5조원 이하로 떨어졌다. 전년(13조8667억원) 영업이익의 3분의 1 수준이다. 전 분기 DS(반도체) 부문 영업이익(5조1200억원)보다도 적다.
예상보다 더 안좋았다
6일 삼성전자는 작년 4분기 잠정 실적 집계 결과, 연결 기준 매출 70조원, 영업이익 4조3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대비 매출은 8.6%, 영업이익은 69% 감소했다. 전기 대비로는 각각 8.8%, 60.4% 줄었다. 영업이익률은 한 자릿수인 6.1%로 내려앉으며 수익성이 나빠졌다.
이는 증권사 컨센서스(전망치 평균)를 크게 하회하는 '어닝 쇼크(실적 충격)'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4분기 매출을 72조7226억원, 영업이익을 6조8737억원으로 예상했다. 매출은 3.7%, 영업이익은 37.4% 낮다.
삼성전자는 잠정실적 설명자료를 통해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 등 대외환경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메모리 사업이 수요 부진으로 실적이 크게 하락하고 스마트폰 판매도 둔화하며 전사 실적이 전 분기 대비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실적 책임지던 반도체 흔들려
특히 이번 어닝쇼크는 '반도체 혹한기'의 영향이 컸다. DS 부문의 실적 악화는 지난해 3분기부터 시작됐다. 작년 3분기 DS 부문 영업이익은 5조1200억원으로 전 분기(9조9800억원)나 전년 동기(10조700억원) 대비 반토막 났다. 삼성전자가 아직 4분기 사업부문별 실적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DS 부문은 1조원대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DS 부문의 4분기 영업이익을 1조9000억원대로 추정했다. 그는 "반도체 출하량과 가격 모두 기존 예상을 하회해 실적 하향 폭이 크게 나타날 것"이라며 "D램의 비트그로스(비트 단위로 환산한 메모리 공급 증가량)는 전 분기 대비 10% 내외에 그치고 가격 하락폭도 기존 25%보다 큰 29%에 달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메모리 사업은 글로벌 고금리 상황 지속 및 경기 침체 전망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우려로 고객사들이 긴축재정 기조를 강화하며 전반적인 재고조정 영향으로 4분기 구매 수요가 예상 대비 대폭 감소했다"고 밝혔다.
또 "공급사들의 재고 증가에 따른 재고 소진 압박 심화로 가격이 4분기 중 지속 하락해 가격 하락 폭도 당초 전망 대비 확대돼 실적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반도체뿐 아니라 스마트폰, 가전, 디스플레이 사업도 전부 부진했다. 소비 침체 여파로 IT 기기를 구매하는 수요가 줄어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MX(모바일) 사업부는 매출, 이익이 모두 감소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가전 사업도 시장 수요 부진과 원가 부담이 지속돼 수익성이 떨어졌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 분기 대비 8% 감소하고 디스플레이 부문도 최대 고객사의 중국 생산 차질에 따라 출하량이 당초 예상치를 크게 하회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 매출은 300조원 돌파…올해는 어쩌나
다만 연간으로 보면 선방했다. 4분기 잠정 실적을 포함한 삼성전자 작년 연간 매출은 301조7668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300조원대를 넘었다. 전년 대비 7.9% 증가한 수준이다. 하지만 3분기부터 하락한 연간 영업이익은 43조3705억원에 그쳤다. 이에 따라 영업이익률도 14.4%로 전년 18.5%보다 4.1%포인트 낮아졌다.
올해는 분위기가 더 좋지 않다.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실적 전망치는 매출 291조8824억원, 영업이익 28조2709억원이다. 매출액은 큰 변동 없지만 영업이익은 30% 이상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영업이익률은 두 자릿수를 지키지 못하고 9.7%까지 주저앉을 전망이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영업이익 감소 추세는 올 2분기까지 지속될 것"이라며 "2분기 반도체 부문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영업이익 분기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한편, 잠정 실적은 투자자 편의를 위해 공개하는 추정치다. 결산이 종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라 추정한다. 삼성전자는 오는 31일 기업설명회(IR)를 통해 확정 실적을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