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국가 간 신경전이 한창인데요. 삼성디스플레이가 중국 최대 패널 업체인 BOE를 상대로 강력한 법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업계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소송까지 가야만 했던 과정은 안타깝지만, 업계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불러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중국 업체의 기술 침해를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고 강경 대응해, 우리 기술을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드러났다는 점에서죠.
BOE에 첫 소송 맞대응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삼성디스플레이는 BOE를 상대로 미국 텍사스주 동부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스마트폰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대한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였는데요. 삼성디스플레이가 특허 침해를 주장하는 기술은 아이폰12 이후 사용된 모든 아이폰의 OLED 디스플레이 특허 4종입니다.
두 업체 간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12월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에 '다이아몬드 픽셀' 등 자사 핵심 특허를 침해한 부품·패널을 사용하지 않게 해달라며 미국 부품 도매업체 17곳을 제소했는데요. 올해 2월 BOE는 조사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자진 조사를 받겠다고 신고했습니다. 이에 ITC는 3월 특허 침해 제소 피소자로 BOE를 선정하고 조사에 돌입했죠.
하지만 BOE는 돌연 중국 충칭 제1중급인민법원에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중국법인 등 현지 주요 파트너사를 특허 침해 혐의로 제소합니다. 어떻게든 위기를 벗어나 보려는 '적반하장' 대응이라는 해석이 대부분이었죠.
삼성디스플레이가 BOE에 특허 소송을 낸 것은 이에 대응하기 위한 맞수입니다. 그간 직접적으로 BOE를 견제하지 않던 삼성디스플레이가 처음으로 직접 소송을 내며 반격에 나선 것이죠.
삼성디스플레이의 '큰 형' 격인 삼성전자도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삼성전자는 BOE로부터 TV·스마트폰·태블릿 등에 쓰이는 디스플레이 패널을 구매하는 주요 고객인데요. 하지만 최근 들어 BOE와의 거래 물량을 점차 줄이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기술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삼성디스플레이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도겠죠.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진행된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전화회의)에서 이번 소송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최권영 삼성디스플레이 부사장은 "경쟁업체(BOE)와의 특허 소송이 진행 중"이라며 "최근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자사 경쟁력의 근간인 지적 자산에 대한 도용 및 침해가 늘어나고 이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해 법적 제재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최 부사장은 "특허 침해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결국 경쟁의 룰과 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린다"며 "기술 자산 보호와 공정한 산업 생태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죠.
반격 카드, 영향력은
업계에서 삼성디스플레이의 적극적인 반격을 반기는 것은 중국 업체들의 그간 전적 때문입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의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발 빠른 투자를 통해 전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LCD(액정표시장치) 세력을 넓혔습니다. 그 결과 2004년 당시 전세계 디스플레이 물량의 50%를 생산하던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죠. 이후 국내 기업들은 LCD 패널을 중심으로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지켜왔습니다.
이 시점에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이미 성장 고도에 올라와 있던 국내 기업을 활용해 성장을 꾀하기 시작합니다. 높은 처우를 앞세워 국내 인력을 공격적으로 흡수한 것인데요. 당시 중국 업체들은 파격적인 연봉 인상과 계약 기간 보장 등을 제공해 상당한 한국인력이 중국으로 빠져나갔습니다.
특히 BOE는 한국 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으로 전해집니다. BOE는 2002년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의 LCD 사업부 '하이디스'를 인수한 뒤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습니다. 핵심 기술 약 4331건을 빼돌렸고, 이를 기반으로 2003년 6월부터 LCD(액정표시장치) 생산에 돌입했다는 것이죠. 이후 BOE는 정부의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세계 최대 LCD 제조사가 됐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하이디스의 악몽'이라고 부르죠.
이후 국내 업체들은 중국 업체에 빼앗긴 LCD 시장을 포기하고 OLED 시장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OLED 시장에서도 중국업체들의 추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추격 방식도 LCD와 유사합니다. 국내 기업들이 기술·인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는 이유죠.
다행히 삼성디스플레이의 반격은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소송의 영향이 반영됐는지 확실치 않지만, 중국 BOE는 애플 신제품인 '아이폰15' 공급사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BOE는 아이폰15에 도입되는 홀(Hole) 디스플레이 가공에 어려움을 겪으며 삼성디스플레이에 초도물량 생산을 넘겨줬다고 하고요. 하반기 남은 물량도 삼성디스플레이가 가져가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부족한 기술력에 더해 소송 이슈까지 겹친 탓이겠죠.
이에 따라 가장 수혜를 보는 것은 모바일 OLED 시장에서 앞선 기술력을 지닌 삼성디스플레이입니다. 올해 2분기 삼성디스플레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6%, 20.8% 감소한 매출 6조4800억원, 영업이익 8400억원을 기록했는데요. 하반기는 "스마트폰 주요 고객사의 신제품 출시 대응을 통해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향후 양사의 소송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켜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