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연휴 사이 김해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에어부산 기내 화재 사고를 둘러싸고 승객과 항공사가 엇갈린 입장을 내놓고 있다. 승객들은 대응이 미흡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에어부산은 매뉴얼에 따른 적절한 조치였다고 반박한다. 사고 원인으로 추정된 기내 배터리 반입 관리에 대한 규정 강화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승객 "늑장 대응" vs 에어부산 "절차대로 대처"
지난달 28일 오후 부산에서 홍콩으로 향할 예정이던 에어부산 BX391편에서 기내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일부 승객들은 "불이 났지만 안내 방송도 없었고, 승무원의 지시도 없었다"며 에어부산 측의 대처가 미흡했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승객이 직접 비상구를 열고 탈출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항공사의 얘기는 다르다. 에어부산 측은 이 같은 늑장 대피 주장에 대해 정면 반박하고 있다. 화재 상황 매뉴얼에 따라 신속히 대응했다는 입장이다. 화재 확인 즉시 승무원이 기장에게 보고했고, 기장은 유압·연료 계통을 차단한 후 비상 탈출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에어부산은 "별도의 안내방송을 시행할 시간적 여력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긴박하게 이뤄진 상황"이라며 "짧은 시간 내 관련 절차에 의거해 신속하게 조치해 탈출 업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승무원 지시없는 비상구 개방, 처벌될까
비상구를 승객이 직접 개방한 것이 적절했는지를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지하철이나 KTX 등 열차는 화재 등 위급상황 시 승객이 직접 출입문을 열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항공기의 비상구는 기장이나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개방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항공보안법 위반에 해당한다. 현행 항공보안법에 따르면 항공기 내 출입문과 비상구를 무단 개방할 경우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비상 탈출은 체계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임의 개방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엔진이 가동 중인 상태에서 비상구를 열 경우, 강한 흡입력으로 인해 승객이 빨려 들어갈 위험이 있다. 또 탈출용 슬라이드가 제대로 펴지지 않거나 손상될 경우 대피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실제로 2023년 5월 대구공항에서는 착륙 중이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의 비상구를 강제로 개방한 승객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이번 에어부산 화재 사고처럼 긴급 상황에서의 개방이 동일한 법 적용을 받을지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당시 탑승객들은 탈출 안내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에어부산 측은 절차에 따라 탈출을 안내했다고 반박 중이다. 양측의 대립된 의견으로 사고 당시 비상구 개방과 탈출 지시가 어떤 순서로 이루어졌는지도 이번 사고 조사의 핵심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사고 당시 비상구를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열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기내 배터리 반입, 실효성 있는 대책 뒷받침 돼야
이번 화재의 원인으로 기내 수화물 선반(오버헤드 빈)에 보관된 전자기기가 지목되고 있다. 초기 조사에 따르면 승객이 반입한 보조배터리 또는 전자기기에서 발화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상태다.
항공 위험물 운송기준에 따르면 리튬 함량 2g 이하, 용량 100Wh 이하의 보조배터리는 1인당 최대 5개까지 기내 반입이 가능하다.
항공사들은 선반에 올려두거나 수화물로 부치는 일반 짐과 달리 배터리 등 불이 날 수 있는 기기의 경우 사고가 발생했을 때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당사자인 승객이 직접 소지하도록 권하고 있다.
에어부산을 비롯한 대한항공, 제주항공 등 주요 항공사들은 기내 방송을 통해 보조배터리를 몸에 지니도록 안내하고 있다. 다만 강제성이 없는 권고 수준에 그쳐 기내 안전관리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업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구체적인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유사한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전문가들도 기내 배터리 관리 규정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배터리는 좌석 아래 등 승객이 직접 관리할 수 있는 공간에 보관하도록 규정을 바꿔야 한다"며 "선반에 두면 화재가 진행된 후에야 불꽃이 보이기 때문에 초기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