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과 영풍·MBK가 맞붙은 지 1년, 남은 건 승자가 아닌 상처뿐이다. 고려아연은 '무차입 경영' 금자탑이 무너졌고 영풍은 환경오염과 실적 추락으로 스스로 발목을 잡혔다. MBK는 홈플러스와 롯데카드 사태로 '거버넌스 개선'의 명분마저 잃었다. 끝없는 소송과 여론전 속 재무는 흔들렸고 조직 균열이 깊어졌다. 상처만 남은 가운데 내년 3월 주주총회는 판세를 가늠할 전초전, 내후년 주총은 실질적 경영권 향방을 가를 결전으로 꼽힌다. 1년여간 소모전이 끝내 승부를 내지 못한 만큼 다음 대결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방어도 공격도 상처뿐, 재무·실적 동반 악화
고려아연은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재무적 '철옹성'으로 평가받았다. 외부 차입 없이 자체 현금창출력으로 신사업과 배당을 이어온 무차입 경영은 업계의 교과서처럼 불렸을 정도다. 그러나 MBK·영풍 연합의 공세를 막아내는 과정에서 이 기조는 사실상 무너졌다.
지난해 상반기 1조4107억 원이던 총차입금은 올해 5조1477억 원으로 불어났고 순차입금도 -7170억 원(순현금)에서 3조4869억 원(순차입)으로 급전환했다. 현금창출력도 뒷받침되지 못했다. 잉여현금흐름이 1041억 원 흑자에서 1조383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차입 의존도가 커지면서 이자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같은 기간 249억 원에 불과하던 이자비용은 1059억 원으로 4배 넘게 뛰었다. '순현금 기업'에서 '순차입 기업'으로 돌아선 변화가 수치로 드러난 셈이다.
자사주 공개매수는 재무구조를 흔든 또 하나의 요인이었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공개매수에서 주당 89만 원에 약 1조8000억 원어치 자사주를 사들였다. 재원은 사모사채와 기업어음 발행을 포함한 차입으로 충당됐다. 여기에 신사업 투자와 방어 비용까지 겹쳤다.
이에 별도 기준 총차입금은 7329억 원에서 3조7454억 원으로 불어나며 1년 새 5배 이상 늘었고, 부채비율 역시 22.5%에서 69.2%로 급등했다. 연결 기준으로도 총차입금이 5조 원을 넘어선 가운데 부채비율은 36.5%에서 88.9%로 치솟았다. "경영권 분쟁이 단기간에 재무지표를 급변시켰다"는 신용평가사 지적도 이어졌다.
영풍 역시 상처를 피하지 못했다. 고려아연 지분을 둘러싼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정작 자기 사업은 뒷걸음쳤다. 환경 리스크가 직격탄이었다. 석포제련소가 토양오염과 대기오염 문제로 조업정지 제재를 받았다. 이에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영업손실은 1504억원으로 3.5배 확대됐다. 별도 기준으로도 1434억원 적자를 봤다. 전년 동기 대비 200배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영풍의 재무구조 자체는 아직 안정적 범주를 유지한다. 부채비율은 30% 내외로 관리되고 있고 이익잉여금이 재무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성장이 멈췄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아연에 편중된 사업 구조는 위험을 키웠고 전자부품 계열사 부진까지 겹치면서 회복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결국 영풍은 고려아연 배당에 의존하는 기형적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MBK와 손잡고 "거버넌스 개선"을 외친 것이 시장 일각의 반감을 키운 이유로 지목된다. 정작 자기 실적과 체질 개선에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내년 기선잡기, 내후년 최종심판
분쟁은 두 회사를 동시에 소송전과 여론전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었다. 고려아연은 지난 1년간 무려 24건의 소송에 휘말렸다. △주총 결의 취소 △가처분 △유상증자 시비 등이 잇따르며 경영진의 에너지는 소모됐고 기업 내부는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임직원들은 불안에 시달렸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고용불안을 호소, 이직을 고민한다는 응답도 절반을 넘었다. 경영권 다툼이 재무뿐 아니라 기업문화와 조직 결속까지 흔들어 놓은 것이다.
영풍과 MBK도 명분을 잃었다. MBK는 홈플러스 기업회생과 롯데카드 해킹 사고로 '거버넌스 개선'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투자자는 빠져나가고 직원만 고통받는다"는 비판이 정치권과 노동계에서 터져 나왔다. 영풍 역시 석포제련소의 환경오염 문제로 조업정지 제재를 받으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양측 모두 시장의 신뢰와 사회적 평판에서 상처를 입은 셈이다.
게다가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올해 3월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고려아연이 집중투표제 도입과 의결권 제한으로 일단 주도권을 지켜냈다. 하지만 영풍·MBK 연합도 빈손은 아니었다. 기존 1명이던 이사 수를 4명으로 늘리며 존재감을 키웠다. 대주주 지위에 더해 외국인·소액주주의 표심을 얻어낸 결과였다.
이에 내년 3월 주총은 전초전 성격이 짙다. 교체되는 6석 가운데 5석이 고려아연 측 인사라, 단 한두 석만 이동해도 이사회 균형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최윤범 회장이 명목상 경영권을 지켜낸다 해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진짜 분수령은 내후년이다. 이땐 무려 13명의 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한다. 상법 개정으로 3%룰이 적용돼 최소 2석은 대주주 의결권 제한 하에 분리 선출되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최 회장 측에 유리하다. 다만 앞서 열릴 내년 주총서 얼마나 많은 의석을 지켜내느냐에 따라 내후년 구도의 성패가 갈릴 수 있다. 업계 내 "내년은 탐색전, 내후년은 결전"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이에 양측 모두 법정 공방·주주 설득·이사회 장악이라는 세 가지 전선에서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사 교체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며 "의사결정 권한이 이동하는 순간 기업의 전략과 체질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어 내년 3월 그리고 내후년까지 이어질 주총 전쟁이 결국 분쟁의 승패를 가르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