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라는 비극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첨단소재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격화되자 방탄복의 핵심 재료인 아라미드와 '꿈의 소재'로 여겨지는 탄소섬유 수출이 일제히 반등하며 우리 기업들이 뜻밖의 실적 잭팟을 터뜨리고 있는 건데요. 그동안 중국의 저가 공세에 시달리며 단가 하락을 감내해야 했던 시간들을 보상받듯 전 세계적인 러브콜이 쏟아지는 모습입니다.
총탄 막는 '슈퍼 섬유'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슈퍼 섬유라 불리는 파라 아라미드(산업용 아라미드)의 활약입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를 보면 지난 3월 국산 아라미드 수출량은 1022톤으로 한 달 만에 16.7%나 급증했는데요. 이는 역대 최대치를 찍었던 지난해 5월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
수출액 역시 1551만 달러를 기록하며 15% 가까이 늘어났죠. 아라미드는 강철보다 5배 강하면서도 무게는 5분의 1에 불과해 방탄 소재나 광케이블의 핵심 재료로 쓰이는데, 전쟁으로 소진된 방탄 물자를 다시 채우려는 전 세계적 수요가 우리 기업들로 몰린 셈입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와 HS효성첨단소재, 태광산업 같은 국내 기업들이 특히 반기는 지점은 가격 회복입니다. 중국 기업들이 무섭게 증설에 나서면서 지난해 4월 톤당 1만4000달러대까지 추락했던 수출 단가는 올해 3월 기준 1만5100달러 수준까지 올라왔는데요.
원재료인 테라프탈로일 디클로라이드(TPC) 등의 가격이 올랐음에도 수요가 워낙 탄탄하다 보니 기업들이 판매가에 비용 상승분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현장에서는 전후 복구와 관련한 광케이블 재건 수요 문의까지 빗발치고 있어 한동안 아라미드의 전성시대는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원료부터 완제품까지…소재 독립의 꿈
이번 반등이 반가운 또 다른 이유는 그동안 외산에 의존하던 핵심 원료까지 우리 손으로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애경케미칼은 최근 아라미드를 만들 때 꼭 필요한 원료인 TPC(테레프탈로일 클로라이드) 국산화에 성공했는데요. 지난 3월부터 울산 공장에서 시운전에 돌입해 고객사들과 테스트를 진행 중인데, 연간 1만5000톤의 생산 능력을 갖춰 소재 공급망을 탄탄하게 받쳐줄 전망입니다. 원료 가격이 올라도 우리 기술로 대응할 수 있는 소재 자립의 발판이 마련된 것이라 볼 수 있죠.
여기에 고유가 국면 속에서 수소차와 전기차 시장이 다시 주목받자 이들의 뼈대와 발이 되어주는 소재들도 덩달아 귀한 몸이 됐습니다. 우선 철보다 10배 강하면서 무게는 4분의 1인 탄소섬유가 대표적입니다. 수소차의 핵심인 수소연료탱크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라 지난 3월 수출량이 전월보다 65%나 뛰며 1485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고성능 합성고무인 SSBR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기차나 수소차는 배터리 무게 탓에 일반 차보다 훨씬 무거운 데다 한 번 충전으로 더 멀리 가려면 타이어가 지면과 닿을 때 발생하는 마찰(구름 저항)을 최소화해야 하는데요. 이 까다로운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친환경차 전용 타이어의 핵심 재료가 바로 SSBR이기 때문입니다.
수요가 확실하니 우리 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세계 1위 합성고무 기업인 금호석유화학은 최근 연산 15만8000톤 규모로 생산 능력을 키우며 시장 선점에 나섰고 롯데케미칼도 합작법인인 롯데베르살리스 앨라스토머스에 300억원을 출자하며 힘을 보태고 있는데요.
전쟁은 끝나겠지만 지정학적 위기가 불러온 에너지 패러다임는 이제 시작으로 보입니다. 우리 소재 기업들이 체질 개선과 실적 반등 기회를 지속적으로 잡아갈지 지켜보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