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자본시장의 대표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꼽히는 모자기업 동시상장(중복상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식 시장 규율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법과 규제 중심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거래소가 투자자와 기업 사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열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의 '중복상장과 소수주주 보호 : 일본 사례를 통한 정책적 시사점'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한국 자본시장의 중복상장 구조와 소수주주 보호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설명할 때 모자기업 동시상장 문제가 반복적으로 거론된다"며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자본시장에서는 모자기업 동시상장 사례를 거의 찾기 어렵다"고 짚었다.
이어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모자기업 동시상장 사례가 있지만 최근 감소 추세"라며 "자회사 상장과정에서 일반주주 권리를 철저히 보호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있고 십여 년 이전부터 거버넌스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어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전문가들은 일본의 대표적인 구조 개편 사례로 히타치를 꼽았다. 김정남 전 네덜란드 연기금자산운용(APG) 아태 선진시장팀 헤드는 "히타치는 과거 다수의 상장 자회사를 보유했지만 히타치금속 등 주요 계열사를 순차적으로 완전 자회사화하거나 매각했다"며 "모회사가 공개매수(TOB)를 통해 자회사를 완전 자회사화한 뒤 사업을 통합하거나 전략적으로 매각하는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정비했다"고 언급했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도 "히타치는 과거 22개의 상장 자회사가 있었지만 현재는 일부 소수 지분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상장 자회사가 거의 없는 구조로 바뀌었다"며 "이후 주가가 엄청나게 올라 현재 시총 상위 회사 중 하나가 됐다"고 부연했다.
김 전 헤드는 특히 제도 접근 방식에서 일본과 한국의 차이를 강조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중복상장과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2년 9월 주요사항보고서 공시 강화와 반대주주 주식매수청구권 신설 등을 포함한 '3중 보호장치'를 도입했다. 이어 2024년 12월 합병가액 산정 자율화와 외부평가 의무화 등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을 발표했다.
한국거래소도 작년 7월 상장규정을 개정해 물적분할 등 구조 변화에 대한 주주 보호 심사를 강화했고, 12월에는 중복상장 관련 세칙 개정 논의에 착수한 바 있다. 다만 법 중심 접근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는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치적 반발도 크다"며 "법은 최소한의 규범이기 때문에 실제 시장에서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거래소가 투자자와 기업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투자 관행 변화를 유도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며 "투자자 참여와 기업 인식 변화를 통해 시장 문화를 바꾸는 것이 더 빠르고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제도 개선 방향과 관련해 거래소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일본 거래소는 상장 자회사 비율 자료를 공개하고 상장 관련 원칙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우리도 상장 자회사 비율을 주요 지표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예를 들어 거래소가 매년 상장 자회사 비율을 공개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는 식이다.
이날 토론에서는 중복상장 구조 자체가 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낳는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 대표는 "중복상장 구조에서는 지배주주가 일반주주의 자본을 활용해 최소 자본만 투입하고도 계열사 확장과 지배력 유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사회 임면권이 지배주주에게 집중된 구조에서는 이사회가 전체 주주의 이익보다 지배주주의 이해를 우선할 유인이 존재한다"며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모회사 사업부가 자회사로 분리될 때 나타나는 권리 약화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모회사 사업부로 있을 때는 모회사 주주가 해당 사업에 대해 직접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자회사로 분리되는 순간 모회사 경영진이 대신 의결권을 행사하게 된다"며 "결국 모회사 주주의 의결권 가치가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또 "자회사가 100% 자회사가 아닌 경우에는 연결납세가 어려워지고 계열사 간 거래가 늘어나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 같은 구조적 문제들이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첨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