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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①과다 트래픽 유발자 어쩌나

  • 2020.05.25(월) 17:09

[비즈니스워치 창간7주년 기획 시리즈]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 국회 통과 불구
애매모호 규정 때문에 시행령까지 나와봐야

공정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말한다.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가 원인이다. 서비스 영역의 한계가 없는 IT 업계에선 글로벌 기업이 자유롭게 국내서 사업하는데, 법과 제도가 미흡하면 국내기업 피해가 클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국내외 기업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작업이 중요하다. 비즈니스워치는 창간 7주년을 맞아, IT 산업에서 벌어진 불공정 경쟁을 살펴봤다. [편집자] 

국내 IT업계에서는 통신사(ISP, 네트워크 사업자)와 구글·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사업자(CP) 간 망 사용료 분쟁이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일명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이 포함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글로벌 CP에 국내 망 품질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지만, 국내 CP와의 역차별 문제 해소까지는 갈 길이 먼 상황이다.

끝없는 망 사용료 분쟁

망 사용료란 넷플릭스, 구글, 네이버 등 콘텐츠 제공업체(CP)가 통신사(ISP, 네트워크 사업자)가 깔아놓은 망을 쓰는 대가로 내는 비용을 말한다. 망 사용료를 둘러싼 분쟁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형태나 망 접속 방식 등이 다양한 IT 인터넷 서비스 특성상 기준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약점을 이용해 넷플릭스 등 글로벌 CP들은 한국에서 압도적인 트래픽을 사용하면서도 망 사용료는 내지 않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CP사들이 매년 통신사에 수백억원대의 망 사용료를 내는 것과는 상반된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국내 넷플릭스 결제금액은 지난 2018년 3월 기준 34억원에서 올해 3월 362억원으로 2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 이에 따라 트래픽 발생량도 지난해 말 대비 올 1분기 2.3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CP사들로부터 불평등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와이즈앱

넷플릭스도 망 품질 의무 진다

최근 관련 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으면서 분쟁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다. 지난 20일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에는 이용자수, 트래픽 등이 '대통령령(시행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부가통신사업자는 '서비스 안정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국내에 주소나 영업소가 없는 해외사업자라도 국내 대리인 지정을 통해 법 적용을 받도록 했다.

기존 전기통신사업법에도 '전기통신사업자가 전기통신역무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으나, 이는 ISP에만 해당됐을 뿐 CP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번 개정안을 통해 CP도 부가통신사업자로 적용돼 의무가 강화된 셈이다.

특히 법 적용 기준이 이용자수, 트래픽 등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많은 이용자수를 기반으로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글로벌 CP 등이 개정안의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무는 글로벌 공룡 대신 국내 공룡이?

다만 IT업계에서는 개정안 통과에 대해 분분한 의견을 내놨다. CP와 의무를 나눌 수 있게 된 ISP는 개정안 통과에 대해 긍정적이었지만,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CP 업체가 속한 한국인터넷기업협회를 비롯해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벤처기업협회 등 3단체는 공동 입장문을 내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들은 "서비스 안정성 확보라는 모호한 용어가 첨예하게 대립 중인 관련 시장과 망 중립성 원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후 전개될 논란이 걱정된다"고 제언했다. 해당 개정안이 글로벌 CP를 견제하기 위한 법안일지라도 이로 인한 실질적인 짐은 국내 CP가 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다.

이같은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서비스 안정성'이라는 용어에서 비롯된다. 당초 국회는 '서비스 품질 유지 의무'라는 용어를 제시했지만, 최종 개선안에는 '서비스 안정성'이라는 말로 대체됐다. 큰 틀에서 보면 의미하는 바는 유사하지만 범위는 다소 축소된 것이다.

일각에서 넷플릭스 등 글로벌 CP가 이같은 규제의 헛점을 이용해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걱정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안정성은 서비스 품질처럼 정확한 척도를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트래픽을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근거만으로도 의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의 경우 자사 정책인 '오픈커넥트'를 내세워 안정성 확보 의무를 충족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오픈커넥트란 망 사용료를 내는 대신 통신사에 캐시서버를 무상으로 설치하는 정책이다. 넷플릭스는 이를 통해 트래픽 사용량을 95%까지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통신업계에서는 오픈커넥트 방식이 국내 서버에서 트래픽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없다고 반박한다.

만약 넷플릭스가 오픈커넥트를 서비스 안정성 대안으로 내세우게 되면 통신사는 실질적으로 글로벌 CP에 망 사용료를 청구하기 어려워져 개정안은 실효성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은 글로벌 CP를 제재할 수 있는 법안 제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세부 기준 확보 전까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상황"이라며 "글로벌 사업자 규제를 통해 국내 사업자와의 불평등 해소가 현실화될 수 있는 시행령을 구체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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