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인하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취소소송 기간에 정부나 제약사가 입은 손실을 환수·환급하는 법안이 오는 11월20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제약업계에서는 소송의 근본적인 원인인 약가인하 제도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약가인하 소송 환수·환급'에 대한 세부 규정을 담은 건강보험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 또는 제약사는 약가인하 집행정지나 취소소송 기간 중 발생한 급여 차액을 100% 환수·환급해야 한다. 급여정지, 급여제외, 급여축소 소송의 경우는 차액의 40%로 산정됐다.
시행령은 오는 9월4일, 시행규칙은 9월6일까지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11월20일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 해당 법안은 기존에 진행 중인 소송 건은 해당되지 않고 법안 시행 이후 제기된 소송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정부가 이번 법안을 추진한 배경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제약사들의 약가인하 관련 소송 남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최근 10년간 약가인하 및 급여적정성 재평가 관련 소송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총 49건의 행정소송 중 진행 중인 사건(26건)을 빼면 원고인 제약사가 승소한 사례는 6건에 불과했고 패소한 사례는 17건으로 나타났다. 제약사들의 '묻지마'식 소송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소송 기간 동안 발생하는 건보재정 손실을 막기 위해서다.
쉽게 말해 정부가 의약품 약가인하를 했을 때 제약사들은 기존 약가 보전을 위해 이에 불복, 약가인하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하고 약가인하 취소소송에 돌입한다. 본안 소송인 약가인하 취소소송의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의약품은 기존 약가대로 판매할 수 있어 정부 입장에서는 승소했을 경우 약가인하 처분을 내린 시점부터 소송이 끝날 때까지 불필요한 건강보험 재정이 빠져나가는 손실을 입게 된다. 만약 기존 약가가 1000원인 의약품이 약가인하로 800원이 돼야 하지만 소송기간 동안에는 약가가 1000원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건보재정에서 200원의 손실이 계속 누적되는 셈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이후 약가인하 처분 집행정지가 인용된 소송 31건으로 발생한 건보재정 손실은 약 4000억원에 달한다. 이에 정부도 약가인하 취소소송에서 승소하면 소송 기간 내 발생한 건보재정 손실을 메우기 위해 약제비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해왔다. 오는 11월20일부터 약가인하 소송 환수환급이 시행되면 제약사는 약가인하 소송에 신중을 기하게 되고 정부도 재차 약제비 반환청구 소송을 걸지 않아도 해당 손실을 환수할 수 있게 된다.
제약업계도 '약가인하 소송 환수·환급법'을 수용하는 분위기지만, 법안 배경으로 제기된 잦은 약가인하 소송의 근본적인 원인은 과도한 약가사후관리제도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약가 관련 제도는 약가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인하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기업들이 왜 소송으로 약가인하에 맞서는지는 뒷전인 채 제약사가 건보재정을 낭비하는 원인인 듯 몰아가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현재 약가인하 관련 약가사후관리제도로는 △사용량-약가 연동제 △실거래가 약가인하 △급여범위 확대시 사전인하 △특허 만료시 오리지널 약가인하 등이 있다.
그는 "사용량 약가연동제의 경우 다른 약가인하 제도와 중복되는 등의 문제는 수년째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여기에 약제 상한금액 재평가, 급여적정성 재평가 등까지 약가인하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면서 불합리한 부분을 소명하기 위해 기업들도 리스크를 안고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20년 제네릭 약가제도가 개편되면서 약제 상한금액 재평가와 급여적정성 재평가가 도입됐다. 약제 상한금액 재평가는 △자체 생동시험 또는 임상시험 입증자료 △등록 원료의약품 사용 입증자료를 검토해 2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상한금액을 유지하고 1가지 요건만 충족하면 15% 인하한다. 급여적정성 재평가는 임상적 유용성을 검토해 약가를 조정하는 제도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도 "원료의약품 등 제반 비용은 계속 오르는데 약가는 매년 인하되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며 "약가인하로 제약산업을 옥죄면서 신약을 개발하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