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대 역사(役事)'라 불린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9억3000만달러), 최초 턴키 플랜트 공사인 알코바 담수화 프로젝트(1억6000만달러), 건설 당시 동양 최대·세계 3위 길이를 자랑한 말레이시아 페낭대교(3억4500만 달러), 1999년과 2002년 수주 당시 최대 규모 공사금액인 이란 사우스파 가스처리시설(26억달러).
1965년 태국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하며 국내 건설사 최초로 해외 건설시장에 진출한 현대건설은 최근 중남미지역에서 14억달러짜리 정유공장 공사를 수주해 누적 해외 수주액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수주한 공사의 총 누계액은 현재 5970억 달러로 올해 6000억달러 달성이 유력하다. 이를 감안하면 국내 건설 역사에서 해외수주의 6분의 1을 현대건설 혼자 감당한 셈이다. 현대건설이 업계에서 '맏형'이라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현대건설의 해외 사업이 늘 화려했던 것만은 아니다.
신공법을 사용하려다 20만달러짜리 불도저가 뻘 속에 빠져 사라진 경험(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 2단계 매립 공사), 가스전 플레어스택(배출가스 연소탑)에 화재가 발생해 대규모 폭발로 이어질 뻔한 기억(이란 사우스파 가스전 개발 4∼5단계) 등 아찔한 일도 많았다.
그 가운데서도 현대건설을 괴롭힌 가장 큰 난관은 16억5000만달러까지 불어난 '이라크 미수금' 문제였다. 현대건설은 1990년 미국의 이라크 경제제재 조치 이전 이라크에서 고속도로·발전소·주택·병원 등 공공시설 공사를 대거 수행했지만 걸프전(1992년)이 터지면서 이 대금을 받지 못했다.
거액의 미수금은 15년 가까이 현대건설을 괴롭혔다. 2005년 이를 받아 내겠다고 나선 이지송 당시 사장은 전체의 80%를 탕감하고 20%에 해당하는 원금과 이자 총 6억8130달러만 받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 했다. 현대건설은 이라크 정부로부터 이 미수금을 2006년부터 2019년 말까지 6개월 간격으로 나눠 받고 있다.
▲ 이란 사우스파 가스전 개발 4∼5단계(사진: 현대건설) |
이라크 미수금은 1990년대 말 현대건설의 재무상태를 악화시킨 주범이었다. 대규모 충당금을 쌓으며 적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여기에 당시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이 겹쳐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부도 위기까지 몰렸다. 현대건설은 해외 건설 역량을 바탕으로 수위에 올랐지만 역설적으로 해외사업 리스크 때문에 2001년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에 들어가는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2006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이후 해외수주 규모를 연 100억달러 선까지 끌어올리며 해외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건설 고위 관계자는 "이라크 미수금 건은 당시 최고였던 회사를 한 순간에 무너뜨릴뻔한 충격이었지만 이후 해외 행보를 더욱 신중히 하는 계기가 됐다"며 "최근 중동 플랜트 원가율 상승으로 일부 건설사들이 대규모 손실을 보고 있지만 이를 잘 이겨내면 해외 사업 역량이 한층 탄탄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