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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집살이 in 유럽]⑨-2"물리적인 소셜믹스보다 소통이 중요"

  • 2019.08.08(목) 13:00

(소셜믹스의 겉과 속)
<피어 스메스 암스테르담 자유대 사회학과 교수 인터뷰>
"물리적으로 임대-자가 잘 섞여 보여도 실질적 교류 한계"
"도시, 다양한 사람 있어야 혁신..나와 다른사람 연결 중요"

[암스테르담=원정희 노명현 배민주 기자] 암스테르담 사우드(Amstersam Zuid)역에 내려 15분쯤 걸었을까. 모퉁이를 돌았더니 자전거 행렬이 이어진다. 하나같이 백팩을 매고 한방향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니 얼마 지나지 않아 캠퍼스가 눈에 들어온다.

회의실에 앉아 인터뷰를 준비하는 사이 80년대 록가수들이 입었음직한 짧은 갈색 자켓과 유난히 튀어 보이는 커다랗고 샛노란 숄더백을 맨 사람이 등장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트럭의 폐방수포를 소재로 만든 업사이클(업그레이드+리사이클) 브랜드 가방이란다. 별난 분이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반갑게 악수를 청한다.

이렇게 피어 스메스(Peer Smets) 암스테르담 자유대 사회학과 교수를 만났다. 명함엔 도시 사회학자(Urban sociologist)라고도 쓰여 있다.

최근에 '사회주택과 도시재생(Social hosing and Urban renewal)'이란 책을 내기도 해 소셜믹스와 사회주택 관련한 전반적인 견해를 듣는 기회가 됐다.

피어 스메스 암스테르담 자유대 사회학과 교수

"물리적으로는 임대와 자가주택이 잘 섞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교류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첫마디부터 앞서 우리가 했던 기존 인터뷰나 보고서에서 봤던 네덜란드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다. 듣던대로 좌파 성향의 스메스 교수는 최근 흐름에 비판적인 시각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그는 "소셜믹스의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구역 안에 갇혀 살고 교류가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가령 아침에 보면 자전거 앞 바구니에 아이를 태워 학교에 보내는 모습을 볼수 있다"면서 "인종적으로 섞인 지역에 산다고 해도 내 아이를 이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의 학교에 보내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더 좋은 지역에 있는, 백인이 더 많은 학교, 수준 높은 학교로 보내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메스 교수는 이런 현상이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것인지를 묻자 "유별난 것이긴 하다"면서도 "그만큼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소셜믹스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답했다.

그는 "주택협회가 소셜믹스를 위해 마을회관을 만들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뭔가 (교류가) 일어날 것이란 기대는 크지 않다"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뭔가 일어날 수 있도록 가이드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브로커'라는 사회적 기능을 하는 사람을 소개하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다소 부정적인 단어로 인식되고 있어서 재차 그 의미를 물었다.

"저소득층 거주지역엔 저소득층과 중간소득층을 연결하는 브로커들이 있다. 직업은 아니고 해당 지역에 거주하면서 사회적인 기능을 하는 사람들이다. 마을 행사를 통해 두 그룹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그들을 브로커라고 부르는데 많지는 않다."

그는 "소셜믹스를 위해선 이런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고 또 편견없이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이해하는게 필요하다"고도 설명했다.

아울러 "어느 주택협회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 비스킷을 주면서 이웃에게 나눠주라는 가이드를 제공하기도 한다"면서 "이런 작은 것들이 소셜믹스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회관을 짓는 것처럼 하드웨어적인 것보다 비스켓을 나눠주는 식의 콘텐츠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차례 역설했다.

'젠트리피케이션(저소득층 원주민의 내몰림 현상)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그는 네덜란드의 사회주택 비중이 줄어들면서 젠트리피케이션도 가속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암스테르담 주택가 전경

스메스 교수는 "네덜란드는 다른 나라보다 사회주택 수가 많지만 그 수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시장중심의 접근이 계속 증가하고 있고 런던과 같은 도시처럼 집값도 엄청 올랐다"고 지적했다. 이 점이 저소득층에 영향을 줘서 이들이 거주지역을 떠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최근 주택협회들이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재정적인 이유로 주택을 팔고 있는데 이 때 우선순위는 큰 집 혹은 작은 집을 합쳐서 만든 큰 집"이라고 말했다.

그는 "큰 집이 많아진다는 것은 해당 지역의 가구 수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고 이 때문에 가난한 사람을 도시 외곽으로 밀어내는 효과가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통상 저소득층 거주 지역이 소셜믹스의 타깃이 되는데 믹스의 방법으로 자가주택을 구입해 고소득층이 입주하면 되레 저소득층을 밀어내는 경우도 생긴다"고 덧붙였다.

그는 "갈수록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찾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이런 연결을 통해 서로를 안내하고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똑같은 사람만 있으면 도시엔 변화가 없다"면서 "다양한 사람이 있어야 혁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 한마디는 내내 머리 속에 떠도는 '소셜믹스가 왜 중요한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아줬다. 소셜믹스라는 주제는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하고 쉽지 않은 과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도시의 다양성과 새로운 미래를 위해선 이제는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라는 점은 더욱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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