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상반기 [재계 3·4세]시즌1을 통해 17개 대기업 경영권 승계 과정과 자금출처, 경영능력을 분석했습니다. 같은해 하반기 시즌2에서는 우리나라 주요산업 중 가장 오랜 업력을 가진 제약업종의 승계과정을 15개 회사를 통해 들여다봤습니다.
이번 시즌3의 주제는 건설·부동산입니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7월 발표한 토목·건축 시공능력평가 50위내 건설사와 상위권 건설자재업체 가운데 2세 또는 3세 체제로 전환 중인 곳들을 살펴봅니다. 이들 회사의 창업주는 특정지역을 기반으로한 소규모 회사로 출발해 대기업계열 회사들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보란 듯 전국구로 승격했습니다. 최근엔 주택시장 침체기의 돌파구로 골프장·리조트를 공격적으로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은둔형 기업이라는 오명, 계열회사끼리 일감몰아주기로 의심받는 사례 속출 등 어두운 모습도 있습니다. 같은 그룹 안에 oo건설, oo주택, oo개발처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소규모회사도 많은데요. 단순히 문어발식 확장 형태가 아니라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싼값에 토지를 확보해 이익을 남기기 위한 것이란 의혹도 받습니다. 중견건설사 지배구조분석을 통해 화려한 외형 그 이면을 들여다봅니다.[편집자]
모든 것은 계획대로 이뤄졌다. 다만 그때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그 계획을 모른다. 대부분은 나중에야 알게 된다. '아 이래서 이 회사를 만들었구나'
2005년 만들어진 아이에스건설이라는 아파트 시행·분양회사도 그렇다. 자본금 5000만원으로 만들어진 이 회사의 존재는 2년 뒤 첫 외부감사를 받고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아이에스건설 지분 70%를 가진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는 당시 서른 살의 권민석(42) 현 아이에스동서 대표. '에일린의뜰'이란 아파트브랜드를 가진 토목·건축 시공능력평가 31위의 건설그룹 아이에스동서 권혁운(70) 회장의 아들이다. 나머지 지분 30%를 가진 사람은 당시 서른셋의 권지혜(45) 전 아이에스동서 전무. 권 회장의 딸이다.
권혁운 회장 자신도 아이에스건설 설립초기부터 등기임원을 맡았고, 회사의 감사는 권 회장 부인 배한선(66)씨가 이름을 올렸다. 주주도 임원도 회장 일가로만 이뤄진 완벽한 가족회사였다.
# 2세 지분 100%인 시행사 급성장하자 지주회사와 합병
이 회사의 아파트브랜드 이름에 빗대어 보자면 '가족의 뜰'이자 '자녀의 뜰'인 아이에스건설이 만들어지자 다음 단계는 돈을 벌고 회사를 키우는 일이었다.
아이에스건설은 시행사다. 땅을 확보해 자금을 조달하고 시공사에 공사대행을 맡겨 아파트를 짓고, 분양에 나선다. (아이에스건설은 시공도 하지만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같은 큰 공사는 대부분 시행만 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시공사에 지급하는 공사대금과 부대비용을 빼고 남는 돈이 회사 이익이다. 신용도가 낮은 신생 시행사의 자금조달을 위해 계열사가 지급보증에 나섰고, 아파트를 짓는 일(시공)도 주로 계열사가 맡았다.
아이에스건설이 만들어진 이듬해 2006년 '에일린의 뜰'이란 아파트브랜드가 탄생했다. 아이에스건설이 확보한 부지에 아이에스동서(2008년 이전 사명은 일신건설)가 지은 '에일린의뜰' 아파트는 진주가호지구, 울산우정혁신도시, 울산 드림IN시티, 창원자은지구, 남양주다산지구(아이에스건설 자회사 동서건설이 시행) 등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은 물론 수도권까지 뻗어있다.
아이에스건설은 아파트분양시장 상황에 따라 실적의 부침은 있었지만 대체로 꾸준히 성장해왔다. 2007년 첫 외부감사보고서 제출당시 매출 396억, 영업이익 155억원을 기록했다. 당시 부산 센텀 아이에스타워 아파트형 공장 개발을 진행했는데 시공은 계열사 일신이앤씨(권혁운 회장이 최대주주)가 맡았다.
2009년과 2014년에는 매출이 급감했고 영업손실을 봤지만 이 시기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특히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은 매출·이익(별도재무제표 기준) 모두 급성장한 시기다.
이 기간 매출액은 2148억원→ 3472억원→ 4320억원으로 2배 성장했고, 영업이익은 408억원→ 1029억원→ 1217억원으로 3배 늘었다.
매출과 이익이 정점을 찍자 2018년 10월 아이에스건설은 회사의 건설사업부(주택 시행·분양·부동산컨설팅 부문)를 인적분할로 떼어내 그룹 지주회사 아이에스지주와 합병했다.
합병비율은 아이에스건설사업부 1주당 아이에스지주 주식 17.3주를 배정하는 방식. 이에 따라 기존 아이에스건설 지분 70%(5만2500주), 30%(2만2500주)을 가지고 있던 권민석, 권지혜 두 사람은 아이에스지주 합병신주를 각각 30.6%(91만104주), 13.1%(39만44주)씩 받았다.
아버지 권혁운 회장은 합병신주 발행에 따른 희석으로 지분율이 100%에서 56.3%로 줄어든 대신 아들이 2대주주, 딸이 3대주주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 증여세없이 자본금 15억원으로 승계 상당부분 완성
아이에스동서그룹은 아파트 분양을 하는 비상장회사를 키워 그룹 핵심회사와 합병시키는 방식으로 자녀 승계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재계3·4세 시즌3]①편에서 분석한 호반건설과 유사하다. [관련기사 호반건설, 5억으로 8조그룹 거머쥔 김대헌]
권민석, 권지혜 두사람은 부모의 주식을 직접 물려받는 게 아니어서 상속·증여세를 낼 필요가 없었을 뿐 아니라 본인이 직접 돈을 지불하고 주식을 매입한 것이 아니어서 대규모 자금도 필요치 않았다.
두 사람이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아이에스지주 주주명부 둘째 줄과 셋째 줄에 이름을 올리는데 들인 돈은 15억원이다. 아이에스건설은 2005년 설립자본금 5000만원으로 시작해 2008년 2009년 2014년 3번에 걸쳐 유상증자(주당 1만원)를 실시해 합병직전 자본금이 15억원이었다. 이에 따라 지분 70%를 가진 권민석 대표는 10억5000만원, 30%를 보유한 권지혜 전 전무는 4억5000만원을 각각 출자했다.
이 돈으로 시공능력평가 31위, 연결자산 2조8000억원의 중견 건설회사 아이에스동서를 승계하는 상당한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물론 여전히 권 회장이 아이에스지주 최대주주이긴 하나 이미 자녀들은 수백억 원대 배당금을 받아놓아 추가 지분 확보를 위한 종자돈을 마련했다.
아이에스건설은 첫 외부감사보고서를 제출한 이후 지난해 아이에스지주와 합병하기 전까지 4번에 걸쳐 총 270억원의 주주배당을 실시해 권민석 대표가 189억원, 권지혜 전 전무는 81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이 자금은 향후 권혁운 회장이 가진 아이에스지주 지분(56.3%)을 승계하는데 부족하지 않은 자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상장회사가 쏜 거액의 배당금으로 승계의 종자돈을 마련하는 방식은 권혁운 회장의 형 권홍사(76) 회장이 경영하는 반도건설과 유사하다. [관련기사 반도건설, 절반의 승계]
# 경영권 승계는 아들 권민석 대표 중심.. 누나는 퇴사
한편 최근 아이에스동서그룹내 임원변동 현황을 보면 경영권 승계는 권민석 대표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권민석 대표와 누나 권지혜 전 전무는 2005년 1월 아이에스동서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권지혜 전 전무는 지난해 아이에스동서 등기임원에서 물러난데 이어 올해 초 미등기임원자리도 내려놓았다. 회사 관계자는 "권 전무가 개인적인 이유로 퇴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자녀의 승계기반이 된 시행사 아이에스건설은 건설사업부가 아이에스지주에 합병되고 난 뒤에도 투자사업부문이 일신홀딩스란 이름의 회사로 남아있다. 그런데 일신홀딩스의 대표이사 자리도 올해 4월 권민석으로 변경됐다. 이전까지는 누나가 일신홀딩스 대표를 맡았다.
그룹 전반적으로 권민석 1인 승계 체제로 굳혀지고 있음을 뜻한다.
권민석 대표는 아이에스지주 2대주주이자, 추가 지분확보를 위한 종자돈을 마련해놨기 때문에 지분승계에서 걸림돌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남은 것은 온전한 경영권 승계이다.
아이에스동서는 다른 비슷한 규모의 건설사와 달리 건설자재업을 병행하고 있다. 올해는 폐기물처리업체 인선이엔티를 인수하는 등 사업다각화를 시도하다가 지난달에는 돌연 한국렌탈을 매각하기도 했다. 권민석 대표가 본인의 색깔로 얼마나 경영능력을 입증하느냐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