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에 10여년 만에 '분할 분양'이 등장했다. DL이앤씨는 경기 동탄2신도시에 건설 중인 800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둘로 쪼개 순차적으로 분양한다. 입주 시기가 가까워졌지만 미분양 가능성이 커지자 일부만 우선 분양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잇단 부동산 대책에도 미분양 물량이 증가하는 등 시장침체가 계속되자 분양을 미루던 단지들도 한계에 다다랐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분할 분양하는 단지가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같은 단지인데 나눠 분양한다고?
DL이앤씨는 지난 2일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 A56블록 'e편한세상 동탄 파크아너스' 1회차 입주자 모집공고를 냈다. 총 800가구 규모의 단지를 2회차로 나눠 각각 437가구, 363가구씩 공급하는 '분할 분양'이다. 이번 공고에는 3901~3907동 등 7개 동의 입주자만 모집한다. 나머지는 오는 8월께 예정이다.
분할 분양은 200가구 이상의 단지를 최대 5회까지 나눠 분양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대단지가 한 번에 공급돼 미분양이 대거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DL이앤씨가 분할 분양을 결정한 건 그만큼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아서다. 단지가 위치한 경기 화성시는 전국에서 집값 하락세가 가장 큰 지역 중 하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화성시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 13일 기준 작년 말보다 22.1% 하락했다.
이 지역 분양시장도 심상치 않다. 작년 12월 분양한 동탄 A106 어울림 파밀리에와 동탄 A107 숨마데시앙은 전용 99㎡ 등 중대형 평형에서 미달이 발생하며 미분양 경고등이 켜졌다.
그런데 입주 시기가 가까워지며 분양을 더 미룰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 단지는 내년 12월 입주 예정으로 당첨자 발표 후 입주까지 1년8개월 남았다. 1회차 당첨자들은 당장 오는 7월부터 중도금 납부를 시작해야 하며, 2회차 분양 당첨자들은 납부 일정이 이보다 더 빠듯할 수밖에 없다.
분할 분양에도 e편한세상 동탄 파크아너스 1회차는 전용 99B·C·D가 미달된 채 1·2순위 청약을 마쳤다. 준비된 공급 물량이 모두 나왔다면 미달 물량은 더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관련 기사:청약열기 살아난 줄 알았더니…서울 밖은 위험해(3월15일)
DL이앤씨 관계자는 "현재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상황을 지켜보며 분양하는 것"이라며 "입지에 따라 1회차는 분양가를 다소 낮추고 2회차에 조금 높였다"고 말했다.
실제 전용 99㎡의 경우 1회차 분양가는 5억5382만~5억9541만원이지만, 하반기 예정인 2회차 분양가는 5억8227만~6억4310만원으로 1회차보다 비싸다.
미분양 공포에 도입 12년만에 재등장
분할 분양은 주택시장 침체가 심각했던 2011년 도입했다. 당시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면서 대단지 분양을 앞둔 건설사들의 부담이 컸다. 이에 정부는 400가구 이상의 아파트를 최대 3회까지 나눠 분양하는 제도를 신설했다.
2013년에는 제도를 확대해 200가구 이상 아파트를 최대 5회까지 나눠서 분양할 수 있도록 했다. 입주자모집 단위는 기존 300가구에서 50가구로 축소했다.
당시 정부는 "주택경기 위축에도 불구하고 사업 주체의 밀어내기식 분양으로 시장침체가 가중됐다"며 "분양시장 상황을 반영해 사업 주체가 분양 시기 및 공급 물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2014년부터 주택경기가 회복기에 접어들면서 분할 분양에 나선 단지는 많지 않았다. 입주 2~3년 전에 분양하는 '선분양'이 대부분인 국내 주택시장에선 굳이 분양 시기를 조절하지 않아도 준공 전까지 미분양 물량을 소진할 시간이 충분했다.
입주민들의 민원도 고려사항이었다. 관련 규정에 따라 분할 분양시 최초 분양 이후 공급 시차에 따라 발생하는 가산비용을 반영할 수 있다. 결국 회차를 거듭할수록 분양가가 오르는 구조다.
이 때문에 나중에 분양받은 당첨자들의 불만이 나올 수 있다. 미분양이 발생해도 준공 전까지 소화할 수 있다면 굳이 논란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게 건설사들의 판단이었다.
실제 9510가구 규모의 서울 송파 '헬리오시티'나 1만2032가구 규모의 강동 '올림픽파크 포레온'도 한 번에 분양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선분양 체제에선 초기에 분양이 안 되더라도 6개월~1년 안에만 소화하면 손해가 아니기 때문에 분할 분양은 사례가 드물다"면서 "과거 신도시 개발 때 3건가량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분할 분양이 확대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최근 미분양 물량이 폭증하는 등 주택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미분양 물량이 증가한 건설사는 신용도에 타격을 입고, PF가 막히는 등 금융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관련 기사:[집잇슈]'둔촌주공은 딴 세상이었네'…7만 가구 넘어선 미분양(2월28일)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분할 분양은 보통 1500~2000가구의 대단지를 3회차 정도로 쪼개 분양하는 방식인데 800가구에서 나왔다는 건 그만큼 미분양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라며 "서울로 청약수요가 모두 몰리는 상황에서 지역 대단지는 분할 분양을 고민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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