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1기신도시특별법이 진통 끝에 사실상 국회 문턱(법사위 통과)을 넘었습니다. 재건축 '대못' 규제가 뽑히면서 주택 시장도 서서히 온기를 되찾을거란 기대감이 나오는데요.
다만 덩그라니 남은 '실거주 의무'가 찬물을 끼얹을듯 합니다.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은 통과되지 못하면서 분양권·입주권 거래가 묶였거든요. 수분양자들의 한숨도 점점 깊어만 가는데요.
실거주 의무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 아파트를 분양받는 사람들에게 적용됩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산 사람들이 해당 주택을 투기 목적으로 전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인데요.
한창 가격이 급등하던 2020년 5월 주거종합계획에서 공식화돼 2021년 2월19일부터 시행됐고요. 이날부터 상한제를 적용받는 아파트 단지를 분양받으면 2~5년 실거주하게 됐는데요.
'실거주'는 말 그대로 분양 받은 사람이 해당 주택에 실제로 전입해 거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팔아서도 안 되고 전월세도 줄 수 없어 시장에선 이 규제를 '전월세금지법'으로 불렀는데요.▷관련기사:[집잇슈]'전월세금지법'이 있다고요?(2020년12월22일)
상한제 지역 확대와 맞물리면서 규제 대상도 점점 확대됐습니다. 분양가 등 집값이 계속 치솟자 정부는 2019년 공공택지에만 적용하던 상한제를 민간택지까지 시행했는데요.
민간택지의 경우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을 상한제로 묶었습니다. 2021년 초만 해도 서울 18개구 309개 동과 과천, 하남, 광명 13개 동이 상한제 지역으로 지정됐는데요.
이에 잔금이 부족한 예비 청약자들은 발길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보통 아파트를 분양 받으면 부족한 잔금은 전월세 등을 통해 충당하곤 하는데요. 실거주 의무 때문에 그 길이 막혔으니까요.
길을 터주겠다고 한 건 정부였습니다. 2022년부터 금리 인상, 집값 고점 인식 등으로 가격 상승세가 꺾이고 일부 지역에선 미분양이 쌓이기 시작하자 규제를 풀기 시작한건데요.
국토교통부는 올해 1·3 대책에서 수도권 분양가 상한제 주택에 부과한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2월엔 관련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도 발의했고요.
그러나 여야 의견차로 이번에도 법안 통과가 물을 먹었습니다. 야당은 실거주 의무가 사라지면 갭투자가 성행할 수 있고 실거주 의무 때문에 청약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이 생긴다며 반대했는데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집값 상승기 때는 '로또 청약'이 성행하며 시세 차익만을 노리고 청약하는 사람도 많았고요. 실거주 의무 때문에 청약의 기회가 있었지만 포기한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올 초 정부의 말만 믿고 실거주 의무 폐지를 염두에 두고 청약을 받은 사람도 다수 있습니다. 지난 4월엔 실거주 의무와 패키지 법으로 불리는 분양권 전매제한까지 완화되니 기대감은 더 커졌고요.
수도권은 최대 10년이었던 전매제한이 최대 3년으로 완화되면서, 전매제한은 풀렸는데 실거주 의무 때문에 발이 묶인 수분양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요.
현재 실거주 의무가 적용되는 단지는 국토부 추산 총 66곳, 약 4만4000가구인데요. 당장 다음달에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을 재건축한 '올림픽파크 포레온'(1만2032가구)의 분양권 전매제한이 끝나고요.
내년 입주를 앞둔 강동구 'e편한세상 고덕 어반브릿지'(593가구), 강동구 '강동헤리티지 자이'(1299가구), 은평구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시그니처'(752가구) 등도 상황이 비슷할듯 한데요.
가뜩이나 공급이 부족한 때에 분양권 거래마저 위축되면 시장이 더 얼어붙을 거란 우려도 나옵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6월 88건에 달하던 서울 아파트 분양권·입주권 전매 건수는 갈수록 줄어 11월엔 11건에 그쳤고요.
전월세 공급에도 공백이 심화할 수 있습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921가구로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0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전망됐거든요.
각종 지표와 부동산 시장의 흐름만 봐도 실거주 의무 폐지의 필요성에 공감이 가는데요. 참 이상합니다. 우선 순위로 치면 전매제한의 반쪽인 실거주 의무부터 처리해야 할텐데 말이죠.
결국 표심에 밀린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건데요. 재초환이나 1기신도시특별법은 주로 수도권 지역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만큼,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표심 잡기'용 카드를 썼다는거죠.
실거주 의무 해제의 기회는 이제 딱 한 번 남았습니다. 이달 6일 법사위에서도 통과가 안 되면 법안은 폐기되고 다음 국회에서 새로 발의해야 하는데요.
이렇게 되면 시장의 혼란만 커질듯 합니다. 수분양자 입장에서 잔금을 구하지 못하거나 전월세를 놓으면 법 위반이고요. 그렇다고 다 와서 계약을 포기하자니, 가뜩이나 청약 당첨이 어려운 때에 청약 통장이 아깝고요.
'차라리 법을 어기고 과태료를 내겠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실거주 의무 기간 내 집을 팔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 전세를 주면 3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내야 하는데요.
상대적으로 수위가 낮은 '전세형'(?)을 자처하겠다는 거죠. 이랬다 저랬다 하는 정책 때문에 수요자들만 발들에 불이 떨어진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