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시장에 붙은 불은 주택 매매시장으로 옮겨붙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급격하게 오른 분양가가 주변 매매가격을 자극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로또'처럼 높아진 청약경쟁률이 주변 집값을 다시 띄우고 있다. 분양가가 상한제로 묶여서 그렇다. 당첨이 하늘의 별따기가 되니 매매시장으로 수요가 돌아와 가격을 띄우는 것이다.
연휴 전 집값 상승세는 다소 주춤하는 모양새였다. 정부가 중장기적이긴 하지만 대대적인 공급책을 내놓은 데 이어,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출규제에까지 나서면서다. 하지만 추석 이후에는 또 달라질 수 있다. 금리 인하 기대감과 가을 성수기를 맞아 '강남 로또 청약'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어, 청약뿐 아니라 매매 전세까지 주택시장 열기는 쉽사리 식지 않을 분위기다.
서울과 지방은 또 다르다. 명절을 맞아 고향에 모인 가족들이 느끼는 주택시장 온도가 거주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온도차는 점점 더 커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에게 추석 이후 분양·매매·전월세 등 주택시장 전반에 대한 전망을 물었다.
①분양: 서울 뜨겁지만 지방에 온기 퍼지기엔…
추석 이후 분양시장은 훈풍 수준을 넘어 뜨거운 열기가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강남권에 분양가상한제(분상제)가 적용되는 '로또 청약' 단지가 대거 풀리기 때문이다. 연휴 직후인 오는 19일 '청담 르엘'을 시작으로 10월 '잠실 래미안 아이파크', 연말 '방배 래미안 원페를라'까지 출격을 대기 중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전국에서 오는 11월말까지 1000가구 이상 대단지 총 29곳, 3만4306가구가 일반분양할 예정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16개 단지, 1만7595가구가 공급되며, 지방광역시에 7개단지, 9747가구, 그외 지방권에 6개단지 6964가구가 분양을 앞두고 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의 줄임말로 신축 주택 선호현상을 뜻함)' 영향으로 청약시장 활기는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본다"면서 "청담르엘에 이어 잠실래미안아이파크 등 강남권 분양이 이어지고 수도권 분양도 많아 계속 붐을 이어가는 분위기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분상제가 적용되는 인기 단지 위주로 경쟁률이 500대 1까지도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분상제 미적용 단지라도 서울, 수도권은 10대 1, 20대 1로 무난한 경쟁률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서울과 지방 간 청약 시장 온도차는 클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가을 분양 성수기 전국에 총 6만가구 안팎의 분양물량이 공급될 예정"이라며 "신축 선호와 서울 정비사업, 수도권 택지지구나 역세권 일대 청약 대기 수요가 상당해 서울은 100대 1이 넘는 뜨거운 청약열기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다만 지방은 미분양 적체와 수요 부재, 낮은 청약 경쟁률이 이어져 분양시장의 저조한 움직임이 지속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도 "서울과 수도권 청약 시장은 로또 청약 등으로 뜨겁고 동조화 현상도 일어나는 반면 지방과는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②매매: 금리인하 vs 대출규제 '시소 게임'
연휴 직전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폭은 다소 커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연말까지 집값 상승세는 조금씩 둔화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집값이 급격히 오른 서울, 수도권은 대출규제 영향을 상당히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윤수민 위원은 "하락으로 가진 않겠지만 대출규제로 인해 상승폭은 줄어들 것으로 본다"면서 "지방도 회복하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수도권은 상승폭이 줄어들고, 지방은 하락폭이 줄어들며 각각 지금보다는 안정화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함영진 랩장은 "상환능력을 넘어서는 대출을 막는 효과, 추가 주택 구입을 막는 효과로 '똘똘한 한 채' 선호가 이어질 수 있다"면서 "강남, 한강 변 등은 20~30%가 이미 신고가를 기록했기 때문에 대출규제가 현실화하면 가을 이사철이라고 해도 거래량과 가격 움직임이 다소 소강상태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 3구,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에서는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덜 오른 지역으로 수요가 이동해 갭 메우기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며 "지방의 경우 저출산 고령화, 자산가치 상승 기대에 따른 수도권 수요 집중 외에도 5만9000가구에 이르는 미분양 적체 등으로 인해 지역 간 양극화가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승한 가격에 대한 피로감으로 거래량이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김인만 소장은 "올라간 매도 호가에 대출규제까지 있는 만큼 매수자가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면서 "금리 변수가 있긴 하지만 매수-매도자 간 간극이 커지면서 거래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한국은행이 집값 안정을 금리 인하 조건으로 내건 만큼 거래량이 줄고 집값이 조금 안정화 하면 25bp(1bp=0.01%포인트) 금리가 내려도 시장이 들썩이거나 자극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금리 인하 기대감이 매수심리를 자극할 수는 있지만 이른바 빅컷(50bp 이상 인하)이 아닌 이상 시장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 인하가 얼어붙은 지방 시장에 단비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박원갑 위원은 "금리 인하 효과는 지방이 더 클 것"이라며 "서울은 집값이 높아 대출 한도 규제 영향이 크지만, 상대적으로 지방은 집값이 싸서 대출 한도 영향을 적게 받는 만큼 금리 인하가 구매심리를 살리는 데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은 이어 "금리가 떨어지면 부동산, 주식시장에 긍정적이라는 게 일반적이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은 금리만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면서 "금리 인하 기대감이 이미 선반영 됐고, 대출 문턱 높이기라는 하락 요인이 있는 만큼 호재와 악재 간 시소게임에서 서울은 대출규제 압박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때 시장을 나눠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준금리 인하는 집값 상승이 가팔랐던 강남, 마용성 등에는 영향이 크지 않지만 가격이 덜 오른 지역이나 빌라, 상가, 빌딩, 토지 등 비아파트 시장에는 활기를 줄 수도 있어서다.
박 위원은 "서울 핵심지역 아파트 시장에선 기준금리 인하보다 대출규제 영향이 커 거래량, 가격 상승세가 주춤할 수 있다"면서 "무리하게 껑충 뛴 호가를 쫓기보다 관망세로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으며, 지방이나 비아파트 등 금리 인하 영향이 미칠 수 있는 시장에서는 기회를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③전·월세: 가격 상승과 불안 지속
매매시장이 소폭 안정화할 것이란 기대와 달리 전·월세 시장 불안은 더 커질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세사기 여파로 비아파트 시장 불신에 따라 아파트로 수요가 몰린 데다, 매물 부족에 전·월세 가격이 계속해서 뛸 것이란 전망에서다.
윤수민 위원은 "매매 쪽 규제가 시행된 것과 달리 전·월세 시장은 아무런 방법이 없다"면서 "전세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 월세로 넘어가는 형국이어서 아파트 전·월세 가격은 계속해서 상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함영진 랩장은 "2025년까지 전셋값 상승이 이어질 전망"이라며 "대출규제로 인한 입주량 감소와 매물 부족 현상 등을 고려할 때 수도권 전셋값 상승과 월세화는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인만 소장 역시 "전셋값이 내려가려면 신규입주 물량이 늘어야 하는데 전셋값이 내려갈 이유가 없다"면서 "계약갱신청구 등으로 전세 회전이 2년이 아닌 4년 주기로 움직이면서 매물 회전이 과거 대비 줄었고, 비아파트를 꺼리는 분위기로 아파트 수요가 물리면서 전·월세 모두 강세여서 서민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