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회'
주택 청약 제도의 근간이 되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지금껏 개정된 횟수다. 최근 입법예고된 '전용면적 85㎡이하 공시가격 5억원(비수도권 3억원)이하 비아파트 무주택 간주'가 시행되면 170번째다. 청약 제도가 도입된 지 46년이 지난 만큼 때와 상황에 맞춘 개정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잦은 손질은 더 큰 부작용을 낳고 있다.
최근에는 수도권 주택 공급 부족, 분양가 상승 등의 시장 상황이 맞물리면서 청약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소수에게만 혜택이 쏠리고 혼란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큰 틀의 개편을 추진할 때라고 말한다.
'불임청약'·'0순위 공급'도 있었다고?
주택 청약은 '투기'를 막기 위해 태어난 제도다. 1977년 3월 여의도 목화아파트 공개 추첨 현장에서 한 투기꾼이 2억원을 동원해 100개를 신청하며 투기 문제가 불거진 게 배경이었다. 당시 근로자 평균 월급이 5만원 정도였다니 엄청난 규모의 투기였다.
이에 정부는 1977년 8월18일 '국민주택 우선공급에 관한 규칙'을 신설해 청약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부터는 인구 변화, 투기 등 시장 상황에 따라 크고 작은 개정이 이어졌다.
제도 도입 초기엔 인구 증가율이 높아 불임자에게 공공주택 공급 우선권을 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첫 적용 아파트가 반포주공3단지(현 반포자이)다. 1978년엔 5월에는 민영주택에도 청약 제도를 도입하며 건설부령 202호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을 신설했다. 지금까지 46년째 청약 제도의 근간이 되는 규칙이다.
청약 제도는 30여 년을 '추첨제' 기반으로 운영됐다. 다만 계속해서 청약 당첨에 실패하는 이들을 위해 '0순위 제도'도 활용됐다. 민영아파트 청약예금 불입자 중 6회 이상 떨어진 사람을 1순위 위에 두고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통장 불법 거래가 성행하면서 1983년 제도가 폐지됐다.
이후 인구 변화에 따라서도 바뀌었다. 1997년 영구불임시술자 우대 조치가 삭제됐다. 저출산 문제가 대두되면서 2006년엔 다자녀 가구 특별공급, 2008년엔 신혼부부 특별공급 등이 생겼다. 특공은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계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 따로 배정한 물량이다.
이후 무주택자의 청약 당첨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2007년 가점제 중심으로 청약제도가 큰 폭 개편됐다. 서울 첫 뉴타운인 은평뉴타운 분양 때다. 오랜 기간 무주택자이면서 부양 가족이 많을수록 점수(84점 만점)를 많이 받는 게 이때부터다. 부양가족 수, 무주택 기간, 청약통장 가입 기간 등을 합산해 점수를 내는 방식도 이미 17년째다.
청약 제도는 정권에 따라 핵심 주거 정책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곤 했다. 문재인 정권에선 실수요 무주택자 위주의 주택 공급을 위해 가점제를 강화했다. 2017년엔 규제 지역의 가점 비율을 확대했고 2018년엔 추첨을 통해 당첨자를 선정할 때 무주택자를 먼저 선정했다.
윤석열 정부는 저출생 해소 대책의 일환으로 청년·신혼부부·출산 가구 등 2030 세대에 당첨 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고 있다. 2022년엔 공공분양 청년 특별공급, 2023년 신생아 특별(우선) 공급을 도입하고 올해 들어서는 신생아 우선 공급 비중을 늘렸다.
부작용 속출에…"근본 개편해야"
이처럼 주택 청약 제도는 시대에 맞춰 변화했다. 그러나 너무 개정이 잦고 시장 상황 등에 따라 인위적으로 손질하다 보니 현재는 '누더기' 상태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실제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1978년 도입 이후 46년간 총 169번 개정됐다. 단순 계산하면 1년에 3~4번꼴로 손질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2017년 5월~2022년 5월) 때는 26번, 윤석열 정부(2022년 5월~) 들어서는 2년 6개월 만에 14번 손질한 상태다.
이처럼 지나치게 제도를 자주 바꾸다 보니 오히려 청약 당첨자 및 대기자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재도입됐다 다시 사라진 사전청약 제도다.
사전청약은 아파트 청약 접수를 1~2년 앞당겨 실시하는 제도로, 사전청약 당첨 후 무주택 등 자격 요건을 유지하면 본청약 때 우선권이 부여된다. 주택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활용되는 제도다.
공공 사전청약은 이명박 정권 당시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위해 2009년 도입됐는데 본청약 및 입주 지연 등에 따라 2011년 폐지됐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에서 3기 신도시를 준비하며 2021년 제도를 부활했는데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면서 2024년 7월 다시 폐지했다.
이에 공공분양 사전청약 피해자 모임과 민간분양 사전청약 피해자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정부에 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당첨자 입장에선 본청약만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가 돌연 제도가 폐지되면서 다른 청약 기회를 잃거나 입주 일정 등에 차질을 빚게 돼서다.
'로또 청약' 문제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국내서 2002년 12월2일 로또 복권 추첨이 시작된 뒤 2003년부터는 인기 청약 단지에 '로또 청약'이라는 별칭이 붙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분양가가 낮아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단지를 칭한다. 당첨 확률은 복권처럼 희박하다.
최근엔 주택공급 위축 우려, 분양가 상승 등이 맞물리면서 분양가상한제 적용 단지를 중심으로 로또 청약 열기가 과열되고 있다. 자격 요건이 지나치게 낮은 무순위청약 제도 역시 '전국민 로또 청약'으로 부상하며 눈총을 받고 있다.
이에 정부가 최근 무순위청약 제도 개편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오히려 '그 전에 청약 하자'며 무순위청약을 노리는 이들이 많아지는 분위기다. 금수저 특공, 4050 소외 등이 논란이 되며 청약 제도의 취지를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약 제도의 잦은 변화에 따라 청약자가 알아야 할 내용은 산더미가 됐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5월 발간한 '주택청약 FAQ(질의회신집)'를 보면 총 241페이지에 거쳐 480개의 방대한 양의 질의응답이 정리돼 있다.
시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선 일부 개정이 아닌 '전면 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걸레짝이 됐다"며 "전면 개편을 할 시점을 한참 넘겼다"고 지적했다.
이어 "요즘은 안 쓰는 옛날 용어도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래된 규칙"이라며 "인구 감소, 지역 소멸, 양극화 등이 두드러지기 전의 상황에서 만들어진 규칙인 만큼 장기적 시장 안정을 위해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