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에게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게 하는 법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고질적인 세수 부족 문제를 해결할 묘안이지만, 막상 무거운 세부담을 지게 될 고소득자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파장은 만만치 않다. 과세표준이 10억원인 근로자의 경우 연간 1억원에 가까운 소득세가 늘어난다. 우리나라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하위권에서 최상위권으로 올라서게 된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 소득의 절반은 세금 '내놔'
최근 야당의원들이 나란히 강도 높은 소득세 증세 법안을 내놨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언주 의원과 유승희 의원은 지난 12일 소득세 최고세율을 50%로 올리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했다.
법안의 강도는 이언주 의원의 증세 방식이 더 강력하다. 현재 소득세 과세표준이 1억5000만원을 넘으면 38%의 세율을 적용하는데, 과세표준 3억원 초과시 50% 구간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유승희 의원은 과세표준 6억원을 넘으면 세율 50%, 과세표준 3억원~6억원 사이는 45%, 1억5000만원~3억원 구간은 40%로 정했다. 같은 당 최재성 의원은 지난해 8월 과세표준 3억원이 넘을 경우 42%의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는 법안을 냈다.
그렇다면 고소득자의 실제 세부담은 얼마나 늘어날까. 현행 세법에서 소득세 과세표준 10억원이면 세액은 3억6060만원으로 지방소득세(소득세의 10%)를 포함하면 4억원에 육박한다.
이언주 의원안이 시행되면 소득세는 4억4460만원(지방세 포함 4억8906만원), 유승희 의원안은 4억3260만원(지방세 포함 4억7586만원), 최재성 의원안은 3억8860만원(4억2746만원)으로 증가한다.
◇ 소득세율 OECD 23위→4위
우리나라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지방세 포함 41.8%로 OECD 34개 회원국 중 23위(2013년 기준)를 기록했다. 만약 최고세율을 50%로 인상하면 지방세 포함 55%로 OECD 4위까지 올라간다(1위 스웨덴 56.7%, 2위 포르투갈 56.5%, 3위 덴마크 56.2%).
국제적으로도 소득세율 인상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OECD 평균 소득세 최고세율은 2013년 43.3%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보다 1.9%포인트 올랐다. 이 기간 동안 소득세율이 오른 국가는 20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 달했지만, 세율이 내려간 국가는 3개국(뉴질랜드, 아이슬란드, 에스토니아)에 불과했다.
우리나라가 경제규모에 비해 소득세 비중이 낮다는 지표도 있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 비중은 3.7%(2013년 기준)로 OECD 평균 8.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소득세를 좀 더 걷을만한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 "올릴 만 하다" vs "실효성 없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리자는 의견에는 찬반이 엇갈린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 재원 135조원을 마련하려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데, 지하경제 양성화나 비과세·감면 정비 같은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고소득자를 중심으로 세율을 올리면 '저비용 고효율'의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50%로 인상하면 상위 1% 이내의 인원으로부터 연간 수조원의 세수가 확보되기 때문에 빠듯한 국가 재정에도 숨통이 트인다. 게다가 소득의 재분배 기능까지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
반면 무턱대고 세율만 올리면 고소득자의 역외탈세를 유발하고, 탈세 조사를 위한 국세청의 징세비용이 늘어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상위 5% 소득자의 과세소득 탄력성은 0.99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즉 세율 인상으로 소득이 1% 하락하면 장기적으로 과세소득이 0.99% 줄기 때문에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소득 재분배 기능에도 의문 부호가 붙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극소수의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한다고 해서 조세의 소득 재분배 기능이 개선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모든 소득계층에 대한 전반적 세부담 조정이 선행돼야만 소득이 재분배된다는 반론도 있다"고 설명했다.
부자를 향한 소득세 증세 법안의 성패는 결국 '설득력'에 달려 있다. 기재위 소속 나성린 의원(새누리당)은 지난 4월 조세소위원회에서 "소득세는 상위 1%가 거의 다 내고 있는데, 무슨 도둑놈처럼 몰아붙이니까 안 되는 것"이라며 "국가를 위해서 좀 더 내 달라고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 의원들이 낸 법안에 대해 여당에서 어떤 자세로 응할지도 관건이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당은 '증세 잠그기'에 돌입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당장 세수 확보가 급하지만, 기득권의 반대 논리도 무시할 순 없다. 지난해 말 종교인 과세도 같은 이유로 무산된 바 있다. 한꺼번에 병합 심사될 증세 법안들에 대해 여당이 미지근한 반응을 보일 경우, 국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