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만 되면 전국민을 숨막히게 만드는 이슈가 있습니다. 바로 기획재정부가 발표하는 세법개정안인데요. 세금이란 단어만 들어도 어려운데, 한꺼번에 수백개의 제도를 고친다고 하니 더욱 골치가 아픕니다.
그렇다고 마냥 모른 척할 수도 없습니다. 당장 내 세금이 늘거나 줄어드는지 정도는 확인해봐야겠죠. 올해는 연말정산 대란까지 발생하면서 세법개정안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거운데요. 벌써부터 윤곽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내용이 담길까요.
#1. 1000건의 옥석 고르기
기획재정부 세제실이 준비하는 세법개정안은 지난해보다 열흘 가량 앞당겨 발표할 예정입니다. 지난해 법정 처리시한을 지키느라 애를 먹었던 국회에 시간 여유를 더 주기 위함인데요. 아마 발표 시기는 7월27일 전후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경제단체나 학회, 이익단체가 내놓은 의견을 선별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는 단계인데요. 그동안 세제실에 건의된 요구사항만 1000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대부분 특정 분야의 세금을 깎아달라는 내용이라서 일일이 수용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죠.
아예 깎아주는 세금을 없애잔 얘기도 있습니다.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은 "조세정의를 해치고 경제활동을 왜곡시키는 비과세·감면 규정을 없애면 박근혜 정부의 공약 재원인 135조원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획기적인 세수 확보 방안이지만, 여론의 반대 때문에 실현되긴 어려울 겁니다.
#2. 면세자 비율을 낮춰라
요즘 국회의 고민은 면세자 비율이 너무 높다는 점인데요. 이번에 연말정산 보완책을 마련하면서 각종 공제 규정을 고쳤는데, 전체 근로자의 절반이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자로 둔갑했기 때문입니다. 2년 전 31% 수준이었던 면세자 비율은 48%까지 치솟게 됩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정부가 과도한 면세자 비율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만들어 6월 임시국회에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면세자 비율을 낮추려면 저소득 근로자에게 1000원이라도 소득세를 내게 만들면 됩니다. 당장 근로소득 공제와 근로소득 세액공제, 각종 인적공제를 조정하면 가능합니다.
다만 고소득자에게도 세금 부담을 늘려야 형평성 문제를 막을 수 있는데요. 결국 정부는 '증세'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고, 여론은 또 악화됩니다. 내년 제20대 총선거를 앞두고 국회가 증세 법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은 희박하겠죠. 괜히 면세자 비율 낮추려다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테니까요.
#3. 법인세율 다시 올려라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3년째 최악의 세수 가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데, 찔러보는 곳마다 난리가 납니다. 이미 직장인들의 소득세를 건드렸다가 혼쭐이 났고, 종교인 과세는 격한 반발로 인해 무산됐습니다. 가장 확실한 세수 확보 방안인 부가가치세 인상은 민란이 일어날까봐 얘기도 못 꺼냅니다.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그 중 하나가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입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직장인들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세금을 부담하라는 얘깁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 법인세율을 25%에서 22%로 내린 이후, 기업들이 투자는커녕 유보금만 쌓아놨으니 다시 그때로 돌아가자는 거죠.
야당을 중심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기업 투자와 경쟁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법인세율 인상을 포함한 세수확보 방안은 6월 임시국회에서 다뤄질 예정인데, 아직 여야의 온도차가 커서 결과물이 나오긴 어려울 전망입니다.
#4. 부자들 세금 더 걷자
부자들이 내는 세금을 더 걷어보자는 의견도 나옵니다. 대표적인 것이 금융소득과 상속증여에 대한 세금인데요. 박원석 의원(정의당)은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을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내리고, 주식양도소득에도 6~38%의 소득세를 물리자고 제안했습니다. 상속증여세를 피하지 못하도록 공제 규정을 대폭 축소하고, 최저한세를 도입하는 아이디어도 냈습니다.
참여연대는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전면 과세하고, 대기업 최고세율은 27%까지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가업상속에 대한 공제 대상을 축소하고, 사후관리 규정도 더욱 강화하자는 주장입니다. 종교단체에 대해서도 과세를 추진하는 등 세원을 최대한 넓혀보자고 합니다. 취지는 분명하지만 정부와 여당의 시각과는 정반대라서 세법개정안에 담기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5. 타이어에 개별소비세
세법개정안은 정부와 여당의 협의를 거쳐서 발표되는 만큼, 새누리당의 입장이 매우 중요한데요. 기재위 소속 이만우 의원이 적극적으로 세법 개정을 건의하고 있습니다.
이미 경제단체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28개의 세법개정안을 세제실에 제안했다고 합니다. 개별소비세 과세 대상에 타이어와 브레이크 패드를 추가하고, 모피와 보석·귀금속은 제외하는 방안이 눈에 띕니다.
연간 1조3000억원이 지원되는 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 제도를 매출 증가율에 연동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사실상 법인세 인상과 같은 굵직한 카드는 어렵다고 보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방안을 중심으로 제안한 것입니다.
#6. 청년 일자리에 인센티브
무엇보다도 정부가 올해 세법개정의 포인트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가 중요하겠죠. 정부 세법개정안의 핵심 관계자인 박금철 기재부 조세정책과장은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세법개정 세미나에서 힌트를 하나 공개했습니다.
우선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제 차원의 지원방안을 고민중이라고 합니다. 중소기업 취업자에 대한 소득세 감면 기한이 올해 말로 종료되기 때문에 이를 연장하는 방안이 유력합니다. 기존 세제혜택(취업 후 3년간 근로소득세 50% 감면)을 늘릴 수도 있겠죠.
기재부는 기업의 핵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인수합병(M&A)을 지원하는 세금 지원도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이미 지난해 기업간 주식 교환 과세특례를 신설했는데, 적용 요건이나 과세 범위를 더 넓힐 수도 있습니다.
#7. 알맹이를 찾아라
현재까지 나온 정부와 여당의 입장을 보면 올해 세법개정안에는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할 방안이 나오지 않을텐데요. 이만우 의원은 "정부가 증세를 추진하기엔 한계가 있고, 세수 측면에서도 소규모로 부분적 제도 개선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 해에 발표한 '연말정산 세액공제 전환'은 수 차례의 리콜 끝에 누더기로 변질됐고, 지난해 내놓은 '가계소득 증대세제' 역시 임팩트는 미미했습니다. 참여정부나 이명박정부 시절보다도 세법개정의 강도는 훨씬 약했지만, 여론은 극도로 차가웠습니다.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 탓이죠.
그런 의미에서 올해 세법개정안은 더욱 중요합니다. 그동안 세금을 향해 누적된 국민들의 불신을 잠재우고, 조세 정의를 바로 세울 기회입니다. 정부가 원칙을 지키면 설득력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국민이 수긍하는 올해 세법개정안의 알맹이가 무엇인지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