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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 2014.09.19(금) 08:31

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33)
설득의 기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회장이 묻는다. 나의 대답은 ‘글쓰기’였다.

 

회장의 답은 뻔하다. 남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호주머니로 옮겨놓는 것이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남의 머릿속으로 옮겨 놓는 글쓰기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설득력이 필요하다.

회장의 말과 글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면 다음 다섯 가지 중의 하나가 그 이유다.

당신이 완벽한 사람이거나, 그런 체를 해서 그렇다. 완전무결함은 본능적으로 도전의 대상이다. 어떻게든 이겨보고 싶다. 결코 설득당하기 싫다. 약점이 보여야 설득당해주고 싶다. 사람들은 허점과 실수에 호감이 간다. 잘못을 털어놓으면 호감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힘 있는 사람이 힘을 쓰지 않고, 잘 알지만 아는 척하지 않는 게 보일 때, 직원들은 이미 설득당할 모든 준비를 마친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다. 투명해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의심한다.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지는 않은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다. 그러므로 의도적으로 솔직할 필요가 있다. 자기 이익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는 것도 방법이다. 설득은 그 다음 일이다.

당신이 주인공 행세를 해서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주인공이다. 설득당할 때 당하더라도 자기가 결정해야 한다. 윽박지른다고 읍소한다고 설득당하지 않는다. 최종 선택권은 내가 갖고 있고, 내가 판단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스스로 설득당하는 명분이 선다. 조정당한다고 생각하면 방어 자세부터 취한다. 설득당해야 할 사람을 갑이 아닌 을로 만들 때 설득은 이미 물 건너간 것이다.

자기 신념이 분명해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 따를 만한 사람이라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안서서 그런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부귀영화만이 아니라 직원과 회사의 장래에도 관심이 많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믿음이 생겨야 설득당할 수 있다. 그랬을 때 회장의 권력은 선한 영향력으로 발전한다. 설득하는 힘이 생긴다.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그렇다. 사실 이것만 있으면 다른 건 모두 눈 감아 줄 수 있다. 그만큼 중요하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여선 곤란하다. 내 편으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잘 들어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비밀을 공유하고, 칭찬하고, 공감하고, 믿고 위임해주면 된다. 이렇게 일관되게 해나가면 인간적인 유대감이 확고해지고, 굳이 설득이 필요 없는 이심전심의 경지에 이른다. 다섯 가지를 장황하게 얘기했다.

직원을 설득하는 일은 작은 데서부터 시작한다.

회장이 사장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했다. 사장이 회사로 돌아와 부서장들을 모아놓고 회의 결과를 얘기한다. 부서장들 역시 사장에게 들은 얘기를 부서원들과 공유한다. 그런데 여기서 전달되는 얘기를 들여다보면 설명과 설득으로 나뉜다. 회장의 말에는 의도 같은 ‘배경’이 있고 ‘결론’이 있다. 어떤 사장은 결론을 9분 얘기하고, 배경을 1분만 얘기한다. 다른 사장은 배경에 9분을 할애하고 결론은 1분간 말한다. 전자는 설득이 아니라 설명이다. 아니 지시에 가깝다. 후자가 설득이다. 

아폴론 신이 카산드라를 사모했다. 그러자 카산드라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예언 능력을 달라고 한다. 아폴론은 예언 능력을 선물했다. 그러나 그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아폴론은 앙심을 품고 그녀의 말에서 설득력을 빼앗아 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후 사람들은 남의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오늘도 회장들은 아폴론 신이 카산드라에게 내린 저주로 힘이 든다. 직원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렵다. 

설득은 화술의 문제가 아니다. 논리 싸움도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경영 활동 그 자체다. 직원들의 이해와 양보와 희생이 필요한가? 위 다섯 가지에 대해 먼저 자문해볼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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