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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김상현 홈플러스 대표의 호된 집들이

  • 2016.04.26(화) 17:53

본사 이전 기념자리가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과로 변해

▲ 김상현(오른쪽) 홈플러스 대표가 26일 서울 강서구 본사에서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과하며 보상방안 등을 설명하고 있다.

 

"어제 오후까지 고심했습니다. 예정대로 행사를 진행해야할지…."

26일 오전 서울 강서구 등촌동 홈플러스 신사옥 8층 대회의실. 김상현 홈플러스 대표가 90도로 머리를 숙인 뒤 말문을 열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연일 언론에 거론되고 있는 요즘, 기자들 앞에 서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모양이다. 홈플러스는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를 2004년부터 2011년까지 PB제품으로 만들어 팔았다.

김 대표는 "피해자 및 가족들의 아픔과 고통에 진심어린 유감과 안타까움을 전한다"며 "검찰조사에 최대한 협조하고 최선을 다해 피해자들과 보상협의를 진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원래 이날 간담회는 홈플러스가 강남에 있던 본사를 강서로 옮긴 것을 기념해 기자들을 부른 일종의 '집들이' 성격이 짙었다. 올해 1월 취임한 김 대표와 기자들의 상견례 자리이자 사모펀드로 주인이 바뀐 홈플러스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첫 공식행사라 기자들 100여명이 모였다.

김 대표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은 상품을 선보이고 ▲조직을 성과 중심으로 바꾸며 ▲끊임없이 고객을 탐구하고 배우며 약속을 지키는 기업문화를 정착시킨다는 내용의 청사진을 준비했다. 홈플러스가 미리 준비한 보도자료에는 "근본적인 체질강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김 대표의 발언도 담겨있다. 그는 최근 2~3년간 홈플러스의 시장점유율이 내리막길을 걸은 것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체질개선 전략은 가습기 살균제에 묻혔다. 집들이 행사도 자연스럽게 사과의 장으로 바뀌었다. 김 대표는 이날 4차례 이상 '사과'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30년동안 외국계 기업 P&G에 몸담으며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가 한자리에서 4번 넘게 사과한 일이 몇번이나 될까.

김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의 파장이 이렇게 커질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취임 후 4개월 동안 매주 전국의 점포를 돌아다니며 현장을 파악하느라 바빴다고 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대표이사로서 자신의 본분만은 잊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사과가 너무 늦었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이렇게 답했다. "늦었다면 제 책임입니다. 검찰 조사에 협조하는데 초점을 두다보니 미숙한 점이 있었습니다.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만큼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는 것은 없다. 비록 몰랐더라도 그 책임은 온전히 조직의 수장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최고경영자에게는 '물 새는 배를 타고, 불타는 지붕 밑에서 잠자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게 아닐까. 호된 집들이였지만 어쩌면 오늘이 홈플러스 대표로서 그의 입지를 한번 더 다진 날일 수 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할 때 '내 탓이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제대로 된 경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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