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터브먼을 가다]④"모든 문턱을 없애라"

  • 2016.07.05(화) 15:29

창업자 경영철학 곳곳에 스며있어
"바닥재질부터 햇빛까지 모두 고려"

[미국 사라소타 = 이학선] "문턱에 대한 저항감(threshold resistance)을 없애고 고객을 매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야말로 좋은 쇼핑몰 디자인이다"

미국의 쇼핑몰 개발·운영회사인 터브먼은 2015년도 연차보고서 첫 페이지를 이 같은 말로 시작했다. 지난해 4월 아흔한살의 나이로 숨진 설립자 아돌프 알프레드 터브먼이 쇼핑몰 사업을 하면서 남긴 어록 중 한 구절이다.

 

◇美 400대 부자로 

아홉살 때부터 돈벌이에 나서야할 만큼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자란 알프레드 터브먼은 1950년 터브먼을 설립해 쇼핑몰 개발과 부동산 투자 등으로 수조원의 부(富)를 일궜다. 미국에선 1980년대 초 미술품 경매회사인 소더비(Sotheby's)를 인수했던 인물로도 잘 알려져있다.

그는 미국 포춘지가 선정하는 미국내 400대 부자 반열에 20년 이상 이름을 올렸으면서도 바닥재질을 뭘로 하면 좋은지 등 쇼핑몰의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챙겼다고 한다. 쇼핑몰 안에 푸드코트와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들여놓고, 미로같은 복잡한 동선 대신 한바퀴만 돌면 몰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순환형 동선을 처음 채택한 인물도 알프레드 터브먼이다.

 

▲ 알프레드 터브먼은 1950년 쇼핑몰 개발운영회사인 터브먼을 설립했다. 미시간주에 위치한 터브먼의 쇼핑몰인 '12 오크스'에서 찍은 사진. (출처:www.thresholdresistance.com)


<비즈니스워치>는 생전에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쇼핑몰인 유니버시티 타운센터(The Mall at University Town Center·이하 UTC)를 방문했다. 2014년 10월 개장한 이 몰에 대한 안내는 그의 아들인 로버트 S. 터브먼 회장이 직접 맡았다. 그는 "터브먼의 철학이 담긴 몰이자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몰"이라고 소개했다.

설립자인 알프레드 터브먼은 고객이 쇼핑을 할 때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상품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한다고 일부러 유리창의 크기를 작게 한다거나 출입문 양편의 디스플레이 공간을 부각하려고 문을 매장 안쪽으로 들여서 내는 방식은 상품을 살까말까 고민하는 고객들에게 도움되지 않는다고 했다. 장사의 시작은 고객들을 매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옷을 골라 몸에 대보고, 부드러운 촉감을 느껴야 구매가 이뤄진다. 그러려면 고객과 진열된 상품의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카펫을 꺼린 이유


그는 고객의 쇼핑욕구를 저해하는 모든 요소를 '문턱(threshold)'이라고 표현했다. 쓸데없이 규모만 큰 쇼핑몰이나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동선, 직원들의 무표정 등이 이러한 문턱에 해당한다.

 

알프레드 터브먼이 바닥재질까지 꼼꼼히 따진 것도 쇼핑을 방해하는 문턱을 없애거나 낮춰야 한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고객과 쇼핑몰이 만나는 유일한 지점이 바닥인데 이를 가볍게 여겨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특히 우아한 분위기를 내겠다며 바닥에 카펫을 까는 것을 해선 안될 최악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카펫을 깔면 신발바닥과 마찰열 때문에 쇼핑센터를 돌아다니는 고객들이  쉽게 피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객들이 가급적 오래 쇼핑몰에 머물기를 희망했던 그는 고객과 상품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이 들면 설령 그게 카펫이라도 허용하지 않았다.

 

▲ 유니버시티 타운센터 내부전경. 자연채광으로 실내를 밝게 보이게 했다.


창업자의 이런 고집은 UTC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입점매장들은 통유리를 사용해 매장 안을 시원시원하게 노출했고, 건물 좌우 300m를 관통하는 'ㅡ'자형 복도에는 길을 가로막는 기둥하나 서있지 않았다. 로버트 터브먼 회장은 "반대편 매장이 기둥에 가려 보이지 않는 일이 없도록 시야에 신경을 썼다"며 "특히 앉거나 섰을 때도 적어도 6개의 브랜드들이 눈에 들어오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건물천장을 유리로 만들어 매장안에 햇빛이 들어오게 한 것도 밝은 공간에서는 사람이 느끼는 거리감이 줄어들고, 어둑어둑한 곳을 걸을 때에 비해 피로감이 덜하다는 것에 착안한 매장설계다.

 

◇기둥 없애고 햇빛 유도

터브먼은 또 고객 대부분이 오른손잡이라는 점을 감안해 UTC의 에스컬레이터를 복도 우측에 설치했다. 바닥재는 밟았을 때 딱딱한 느낌이 덜하도록 화산재를 이용한 라임스톤으로 깔았다. 로버트 터브먼 회장은 "손잡이 하나까지 철저한 계획 아래 세운 몰"이라고 말했다.

탁 트인 시야와 자연채광은 스타필드 하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부사장은 "몰 동선에는 기둥을 없애 개방감을 확보했고, UTC의 유리천장에는 중간중간 보가 있지만 스타필드는 보를 없애 채광효과를 더 높였다"고 설명했다.

 

▲ 스타필드 하남 내부전경 조감도. 천장을 유리로 했고, 중앙에 기둥도 보이지 않는다.


다른 쇼핑몰과 구별되는 독특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UTC가 풀어야할 숙제도 남아있다.

UTC가 위치한 미국 사라소타 지역 현지언론에 따르면 UTC 입점업체 가운데 6개 업체가 매출부진 등의 이유로 계약기간 중에 문을 닫았다. 비록 다른 업체가 빈 자리를 채웠지만 문을 연지 2년도 안된 몰에서 폐점업체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터브먼 명성에 흠으로 남을 전망이다. 몰을 설계하는 것과 실제 운영하는 것에는 이상과 현실만큼 차이가 있다는 얘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달라선 안된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더 나아지게 하라"

 

터브먼은 2015년 연차보고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알프레드 터브먼의 이 같은 말을 인용해 끝맺었다. 새로운 몰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새겨둬야할 구절 아닐까. [시리즈 끝]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