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뭘 싸왔어?". 점심시간이면 친구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 자리로 모여들었다. 매일 다른 반찬을 맛깔나게 싸주셨던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참 좋았다. 점심시간마다 가져간 반찬을 모두 빼앗기고 오는 아들이 안쓰러우셨는지 어머니는 늘 반찬통을 두 개씩 싸주셨다. 하나는 내 것, 다른 하나는 친구들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훨씬 지났지만 아직도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그때 너희 어머니 반찬은 정말 최고였다"는 말을 듣는다. 손맛 좋은 어머니 덕분에 나는 점심시간만큼은 스타였다. 늘 궁금했다. 어머니의 손맛은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싶었다. 여쭤볼 때마다 어머니는 "그게 다 엄마의 정성 덕분"이라고 하셨다. 이해할 수 없었다. '정성'만으로는 그 맛있는 반찬들이 설명되지 않았다.
어머니 손맛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결혼한 후였다. 하루는 본가를 방문하고 오는 길에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어머님이 당신한테 말씀하지 않으신 비밀을 하나 알았지요". 무슨 소리인가 해서 아내를 쳐다봤다. 아내는 계속 빙글빙글 웃으며 "어머님이 당신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속이 탔다. 분명히 웃는 것으로 봐서는 심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궁금했다. "아, 뭔데".
아내가 알려준 어머니의 비밀은 충격적이었다. 어머니의 그 맛깔난 반찬의 이면에는 조력자가 하나 있었다. 바로 '미원'이었다. 어머니는 아내에게 수십 년간 감춰오셨던 비밀을 누설했고 아내는 내게 그 사실을 알려줬다. '어머니 손맛의 비밀에 미원이 있었다니' 묘한 배신감이 느껴졌다. 오로지 어머니의 손맛으로만 알았던, 친구들이 엄지척을 해줬던 그 반찬들에 미원이 들어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원은 소위 말하는 MSG(monosodium glutamate·글루탐산 일나트륨)다. 소비자들의 머릿속에는 '미원=MSG'가 각인돼있다. 그만큼 미원은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공 조미료다. 문제는 인공 조미료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MSG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연구결과가 정설이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어머니께서 미원을 쓰셨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꼈던 것도 이 때문이다.
▲ 이건철 대상 식품BU 마케팅본부 대리. (사진=이명근 기자/qwe123@) |
막연히 나쁘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MSG의 실체가 궁금했다. 정말 MSG가 그렇게 안 좋은 것인지, 그렇다면 대상은 왜 지금껏 수십 년간 이토록 건강에 해롭다는 미원을 만들어 왔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22일 신설동 대상 본사에서 이건철 대상 식품BU 마케팅본부 대리를 만났다. 대상 내부에서도 조미료 전문가로 알려진 그다. 그라면 이 질문에 대해 속 시원히 대답을 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조금 일찍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다. 노트북을 세팅하고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인터뷰만큼은 제대로, 확실히 따져 묻겠다고 다짐했다. 고백하자면 개인적인 감정도 있었다. 어머니의 손맛에 당한 배신이 실은 배신이 아니었길, 어머니께서 자식들의 건강을 포기하고 오로지 맛을 내기 위해 미원에만 의지하신 것이 아니라는 근거를 확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단정한 차림의 이 대리가 도착했다. 생각보다 선한 인상이어서 내심 당황했다. 무섭게 몰아치기에는 인터뷰이의 인상이 너무 좋았다. 사실 상대방의 인상이 좋으면 코너로 몰아넣기가 부담스럽다. 하지만 최대한 독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적어도 재미있는 인터뷰가 아니라 매우 까다로운 인터뷰로 몰아가리라 마음먹었다.
일단 예열 차원에서 미원의 제조 원리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살짝 당황한 듯 했다. 일단 성공이다. 하지만 이 대리는 차분히 미원의 생산 과정을 간단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했다. 그는 "미원의 원료는 사탕수수다. 사탕수수에 미생물을 넣으면 이 미생물들이 사탕수수를 먹고 부산물을 내놓는다. 이 부산물이 바로 글루탐산이다. 다만 이 글루탐산을 결정체로 만들기 위해 나트륨을 첨가한다. 이것이 미원이다"라고 소개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예상했던 화학제품 첨가 과정이 없었다. 나트륨이라면 소금 아닌가. 소금을 화학제품이나 약품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무언가 살짝 꼬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 대리는 "글루탐산은 우리 몸에서도 나올 정도로 자연상태의 모든 재료에 포함돼있는 감칠맛"이라며 "미원은 이것을 고도로 농축한, 한마디로 순수한 감칠맛"이라고 강조했다.
전제가 무너졌다. MSG 즉 글루탐산은 화학반응에 의해 만들어진, 몸에 좋지 않은 감칠맛으로 생각했던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순간 깨달았다. 전제가 틀어지면 다음 질문을 이어가기가 어려워진다. 무작정 공격하려다 되레 내가 허우적거리는 모양새가 됐다. 이 대리는 승기를 잡은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MSG에 대한 소비자들의 편견은 당연하다"면서 "다만 소비자들이 그렇게 인식하는 과정에서 억울한 측면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경쟁사가 과거에 광고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화학조미료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 때문에 MSG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나빠졌다"며 "그 광고대로라면 자신들의 제품을 제외한 나머지 조미료들은 모두 화학조미료라는 이야기인데 그것은 결국 조미료 1위인 대상의 미원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후 과장 광고로 시정조치를 받았지만 그때 찍힌 '미원=화학조미료'라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후 대상은 미원이 화학조미료가 아닌 자연상태의 글루탐산을 농축한 고순도의 안전한 감칠맛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의 생각은 잘 바뀌지 않고 있다. 그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느끼실 수 있다"며 "하지만 긍정적인 것은 최근 들어 조금씩 그런 인식들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체적인 조사 결과를 보면 인식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각종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재미를 더하는 행위에 'MSG를 친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과거 MSG는 매우 나쁘다는 인식이 강했던 시기와 비교하면 인식 개선이 상당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그렇다면 정말로 글루탐산은 안전한 것일까? 그는 단호하게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어 "엄마의 모유를 구성하는 아미노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글루탐산"이라며 "우리가 흔히 먹는 피자에 토마토를 많이 쓰는 것도 토마토에 글루탐산이 많이 들어있어서다. 국물을 낼 때 다시마와 멸치, 양파, 무, 버섯 등을 사용하는 것도 그 재료들 안에 다량의 글루탐산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원은 그 어떤 조미료보다도 가성비가 좋고 특히 소금을 평소보다 적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최근 미원 TV 광고를 진행하면서 '한 꼬집'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꼬집'만 사용해도 순수하고 안전한 감칠맛을 극대화할 수 있고, 소금 사용량을 30%가량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파마산 치즈, 소고기에도 글루탐산이 들어있다. 글루탐산은 결코 인체에 해를 끼치는 성분이 아님을 소비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강조한 '미원 한 꼬집'에는 이유가 있었다. 대상에 따르면 미원 1g의 감칠맛을 내기 위해서는 소고기 2.6㎏, 토마토 600g, 다시마 50g이 각각 필요하다. 소량의 미원만으로 풍부한 감칠맛을 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 대리는 "미원의 발효 과정은 장(醬)류나 김치의 발효 과정과 똑같다"면서 "따라서 몸에 해롭다거나 화학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은 무척 억울하다"고 강조했다.
미원은 국내 첫 인공 조미료다. 대상 창업주인 고(故) 임대홍 명예회장이 1956년 일본의 아지노모토에 가서 각고의 노력 끝에 기술을 배워와 자체적인 방법을 접목해 만들었다. 미원은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이기지 못한 3가지 중 하나로 꼽을 만큼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다. 현재도 미원은 B2B 채널을 바탕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연간 생산량은 2만5000톤, 매출은 약 1000억원에 달한다.
이 대리는 "남은 과제는 미원은 물론 MSG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정확히 제대로 알리고 소비자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하는 것"이라며 "국내 조미료 시장이 정체기라고 하지만 1등 업체로서 MSG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쉽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천천히 바꿔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를 마친 후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인터뷰를 통해 누군가를 만나고 그와 나눈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 것은 늘 부담스럽다. 그래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숙제를 잘 마쳤다는 느낌과 유사하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는 지금껏 느꼈던 그런 편안함과는 달랐다. 복귀하는 길 버스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러다 문득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랬다. 어머니 손맛의 조력자였던 미원에 대한 오해가 풀린 것이 색다른 편안함의 이유였다.
"엄마, 내 도시락 반찬에 미원 쓰셨다면서요?". 흠칫 놀라시는 어머니와 그것을 왜 이야기하냐는 아내의 얼굴에서 동시에 당황스러움이 스쳤다. 나는 웃으며 이 대리와 만났던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어머니는 "그래도 정성이 대부분이었다"고 강조하셨다. 미원에 대한 오해가 풀린 마당에 어머니의 변명(?)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럼요. 어머니의 정성 99%에 미원 1% 덕이었다고 믿습니다"라고 했다. 문득 어머니가 싸주셨던, 나를 스타로 만들어줬던 그 도시락 반찬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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