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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CJ대한통운의 '안일한' 위기 대처법

  • 2018.11.26(월) 11:33

3개월간 3명 사망…공식 사과문 없이 가리기 급급


'택배 물량 증가로 개인택배 예약서비스를 일시 중단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리게 된 점 사과드리며,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CJ대한통운 홈페이지엔 얼마 전부터 이 문구가 포함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30일까지 일부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택배회사에서 택배 물량이 증가했다고 하니, 언뜻 보면 '장사'가 잘되고 있어 서비스를 부득이하게 일시 중단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근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 벌어진 잇따른 사망 사고와 이에 따른 고용노동부의 작업 중지 명령, 일부 지역 택배 지연 등의 기사를 접한 이라면 이 안내문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서비스 중단이 택배 물량 증가가 아닌 작업 중지 명령에 따른 것이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어서다.

이 안내문은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응하는 CJ대한통운의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안타까운 사망 사고가 연이어 벌어졌는데도 전면에 나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단 가리기에 급급한 모습이 역력했다는 얘기다.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 처음 사망 사고가 난 건 지난 8월이다. 한 20대 청년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감전사고로 숨졌다. 컨베이어벨트 아래에서 청소하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CJ대한통운은 물류시스템의 안전관리 문제가 아닌 일부 작업대에서 벌어진 예기치 못한 사고 정도로 여기는 듯한 분위기였다.

두 번째 사고도 같은 달 벌어졌다. 한 50대 노동자가 상하차 작업 중 과로사했다. CJ대한통운은 이때도 이 노동자가 평소 지병이 있었다며 전반적인 안전관리 시스템과는 무관하다는 식이었다.

CJ대한통운은 지난달 세 번째 사망 사고가 벌어진 뒤에서야 '부랴부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 해당 물류센터에 전면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자 그제서야 재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이 와중에 파업에 돌입했다. 택배노조는 노조의 지위를 인정하라며 계속 교섭을 제안했지만 CJ대한통운 측은 이를 거부해왔다고 지적했다. 양측의 갈등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폭발한 셈이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작업 중지 명령과 파업 탓에 택배를 제때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려야 했고, 택배 기사들도 수입이 줄며 피해를 봤다.

다행히 대전지방노동청이 지난 23일 작업중지 명령을 해제했고, 25일부터 터미널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CJ대한통운은 작업 현장에 조명등을 추가로 설치하고, 차량 유도 인력을 추가 배치하는 등의 안전관리 개선 계획을 내놨다. 전국에 있는 다른 터미널의 작업환경 개선도 병행하기로 했다.


CJ대한통운은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발생한 안전사고와 관련해 책임을 통감하며 유가족과 관계된 모든 분에게 거듭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고를 계기로 안전을 제1 경영 원칙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CJ대한통운 구로 서브터미널. (사진=CJ대한통운 제공)


이로써 CJ대한통운 사태는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의 해결 방식을 보면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지는 동안 CJ대한통운이 먼저 전면에 나서서 대책을 마련하거나 공식적인 사과문을 낸 적이 없다. 언론을 통해 '유가족에게 사과한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전달하긴 했지만 공식 사과문을 내놓지는 않았다. 홈페이지에선 '물류 증가로 인한 서비스 일시 중단'만 알렸을 뿐이다.

 

'획기적인' 개선책을 내놓은 이유도 사실 고용노동부의 작업중지 명령 해제를 위한 대응책 성격이 짙다. 처음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발 빠르게 현장 안전관리 실태를 다시 살펴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CJ대한통운은 국내 택배시장을 50% 가까이 점유하고 있다. 최근 물류센터에 자동분류기를 도입하는 등 선진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공격적인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무대를 넓히고 있다. 국내 1위 기업이자 세계적인 물류회사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CJ대한통운의 안일하고 소극적인 모습은 이 '위상'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몸집이 커지고 세계적인 기업에 가까워질수록 '위기 대응 능력'도 중요해지는 법인데,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듯하다.

CJ대한통운은 앞으로 300억원 이상 투입해 전국 허브터미널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등 택배기사들이 좀 더 편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가 CJ대한통운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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