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갑자기 감수성이 풍부해진 건 아니고, 멀리 보이는 건물 윤곽이 뚜렷하게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만약 풍경이 희미하게 보인다면 인터넷으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고 마스크부터 챙긴다. 우울하게도 미세먼지는 이미 우리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건 뿌연 하늘만이 아니다. 분명 하늘은 뿌연데, 정부가 발표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해보면 우리 동네는 '맑음'으로 뜬다. 정부 발표가 못 미더워 정확한 미세먼지 농도를 알려준다는 애플리케이션을 여러 개 설치해봐도 수치가 제각각이다.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모르겠다.
미세먼지 농도를 직접 측정하면 믿을 수 있을까. 이미 시중에는 다양한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가 출시돼 있다. 문제는 측정방식의 신뢰도다.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는 대부분 '광산란 방식' 센서로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한다. LED나 레이저로 빛을 비춰, 미세먼지에서 산란되는 빛의 크기와 수를 헤아리는 방식이다.
광산란 방식은 온도나 습도, 바람 등 외부 요인에 민감하다. 미세먼지 입자 개수를 세서 평균 밀도를 추정하고, 무게를 기준으로 삼는 현행기준(㎍/m³)으로 단위를 변환하는 과정에서 오차도 발생한다. 실내측정이라면 모를까, 외부에서 측정한 미세먼지 농도를 신뢰하기는 어렵다.
이때 휴대용 측정기의 한계를 집단지성으로 극복해보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제품이 있다. 미세먼지 통합 브랜드 '먼지몬지'가 내놓은 '몬에어'다. 기획부터 제품 출시까지 몬에어 프로젝트를 총괄한 김주환 먼지몬지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우리 손으로 '미세먼지 지도'를 만들자
김 COO는 "지난 2014년부터 미세먼지 마스크를 판매하고 있지만, 마스크만 팔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아니겠느냐. 미세먼지도 방어만 할게 아니라, 미세먼지 움직임을 먼저 파악하고 기민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몬에어 프로젝트 기획 의도를 밝혔다.
김 COO의 말처럼 몬에어는 전국의 미세먼지 움직임을 한눈에 파악하는 데 특화돼 있다. 단순히 미세먼지 농도를 보여주는 데 그치는 기존 측정기들과 달리, 몬에어는 전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탑재된 지도에 측정값을 자동으로 업데이트한다. 몬에어 사용자들은 이 지도를 통해 다른 사용자들이 측정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정부가 발표하는 미세먼지 농도가 정확하다면 휴대용 측정기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김 COO는 정부 발표가 부정확한 이유에 대해 "정부 예산이 한정돼있다 보니 예상 밖의 사각지대들이 있다. 수도권에도 정부 측정소가 없는 곳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환경공단의 전국 실시간 대기오염도 공개 홈페이지 '에어코리아'에 따르면 21일 15시 기준 수도권에서 ▲동두천시 ▲안성시 ▲양주시 ▲양평군 ▲여주시 ▲연천군 ▲하남시는 행정구역 안에 측정소가 단 1개소씩 작동 중이다. ▲가평군 ▲오산시는 작동 중인 측정소가 한 곳도 없다. 정부 측정소가 없거나 장비 점검 등의 이유로 작동을 멈춘 지역의 주민들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의 측정값을 봐야 한다. 정부 발표와 국민들이 체감하는 미세먼지 농도 사이에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확한 미세먼지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고객이 몬에어를 이용해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고, 그 측정값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할 터. 김 COO는 이에 대해 "몬에어 보급이 최우선 과제다. 이를 위해 측정값을 표시하는 디스플레이를 없애는 등 원가절감을 통해 최대한 기기 가격을 낮췄다"고 설명했다.
김 COO는 이어 "사용자들이 미세먼지 농도를 최대한 자주 측정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당근'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몬에어를 이용해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할 때마다 먼지몬지 쇼핑몰 적립금이 1백원 주어진다. 이를 모아 마스크, 손소독제 등 미세먼지 관련 상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동시에 회원등급 포인트도 쌓이는데, 높은 회원등급에 도달하면 참여할 수 있는 미세먼지 세미나 등 다양한 활동들이 기획 단계에 있다.
◇ '만화처럼' 기획한 몬에어가 '현실'에 나오기까지
김 COO는 "측정기 단자를 스마트폰에 '딱' 꽂으면 눈앞에 있는 먼지들의 동향이 화면에 실시간으로 '짠'하고 표시된다는 만화 같은 상상"에서 몬에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다만 상상이 너무 과했다. 하드웨어 개발이 처음이다 보니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몰랐다"고 털어놨다.
몬에어는 2018년 4월 구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마이크로 5핀 단자로 기기를 직접 연결하는 '버전 1.0' 모델을 처음 고객들에게 선보였다. 고객 반응은 뜨거웠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와디즈'에 등록하자 204명의 고객이 모였다. 당초 200만원이었던 목표액의 411%에 달하는 펀딩(약 823만원)에 성공했다.
문제는 호환성이었다. 애플사의 아이폰 제품군에는 단자를 연결할 수 없었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제조사들 역시 USB C타입 단자를 채택한 신제품들을 내놨다. 소프트웨어 문제도 있었다. 김 COO는 "최근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보안 문제 때문에 인증되지 않은 기기와의 유선 연결을 굉장히 꺼린다. 이 때문에 소프트웨어 호환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고 그간 고충을 토로했다.
현재 시판 중인 몬에어는 앞서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한 '버전 2.0' 모델이다. 유선 연결방식 대신 블루투스를 이용해 스마트폰과 연결하는 무선 연결방식으로 바뀌었고, 애플리케이션을 꾸준히 업데이트하며 소프트웨어 호환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했던 고객들에게는 새 몬에어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몬에어를 향한 고객들의 신뢰와 지지에 보답하고, 충성도 높은 고객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다.
새 몬에어 보급은 순조롭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자 대량구매 및 B2B 구매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미세먼지가 심한 일부 해외 국가에서도 몬에어를 찾는다. 김 COO는 "최근 태국 방콕에서 몬에어를 판매하고 싶다는 문의가 왔다. 방콕도 미세먼지가 심하다고 하더라. 동남아 시장은 상상도 못했는데 먼저 연락이 왔다"고 전했다.
◇ 미세먼지 지도, 어떻게 활용할까
몬에어가 충분히 보급되면 어떤 일들이 가능할까. 김 COO는 민간기구의 미세먼지 예보 활동을 첫손에 꼽았다. 오랜 기간 축적된 미세먼지 데이터베이스에서 일종의 패턴을 발견하고 분석한다면, 정부 기관이 아니어도 미세먼지 흐름을 미리 예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 COO는 미세먼지 안전지대를 실시간으로 제안하는 서비스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미세먼지 경보 발생 시 평소 공기를 청정하게 관리하던 식당을 추천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소상공인이나 프랜차이즈 업계와 협업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김 COO는 몬에어의 역할이 필요 이상으로 확대되는 것은 경계했다. 그는 "최대한 정확한 센서를 채택했지만, 몬에어 역시 광산란 방식의 간이측정기다. 한 대 가격이 2억~3억원에 달하는 정부 소유 측정기와 측정값이 동일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이어 "수많은 측정 결과의 평균값을 구해 오차를 메우자는 게 몬에어의 접근방식이다. 그래서 집단지성을 이용하자는 것"이라며 "정부에서 운영하는 측정기가 중심을 세워주고, 민간기구들이 이에 잘 협력해서 최대한 정확한 미세먼지 데이터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미세먼지에 지친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김 COO는 이렇게 말했다.
"미세먼지 근원지가 중국이냐, 한국이냐 하는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힘을 합쳐 대응해야 하죠. 미세먼지는 임진왜란과 같은 일종의 국가재난입니다. 온 국민이 하나로 뭉쳐 극복해야지, 누구 탓을 할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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