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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와인, 까만색 줄까 하얀색 줄까"

  • 2020.07.22(수) 09:28

명용진 이마트 와인 바이어 인터뷰
이마트 도스코파스 기획 주도…초저가 와인 선보여 
"물량으로 가격 낮춰…세계 와이너리서 먼저 연락와"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나는 까만색!" "나는 하얀색이 맛있던데? 오늘은 하얀색으로 하자"

요즘 이마트에 가면 종종 들을 수 있는 대화다. 주로 와인 코너 앞에서 이뤄지곤 한다. 보통 와인을 고를 때면 적어도 레드 와인인지 화이트 와인인지, 바디감은 어느 정도가 좋은지, 달콤한 게 좋은지 아니면 드라이한 게 좋은지 정도는 밝혀(?)야 점원에게 추천이라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와인이 낯선 이들은 와인 매장 앞에 서는 것조차 꺼리는 게 사실이다.

최근 이마트에서는 색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마치 국산 맥주나 소주를 골라가듯 가볍게 와인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세 가지 중에 하나만 고르면 된다. 까만색이냐 하얀색이냐, 아니면 화이트 와인이냐. 가격은 똑같다. 4900원. 이마트가 지난해 8월부터 시리즈로 출시하고 있는 '도스코파스' 이야기다.

물론 그전에도 시중에 1만원 이하의 와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9년부터 이마트에서 판매해오고 있는 G7 와인도 '가성비' 제품으로 꾸준히 인기를 끌어왔다. G7의 가격은 6900~7900원 정도로 연간 100만 병 이상 팔리면서 '밀리언셀러'로 등극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스코파스는 이미 G7을 앞질렀다. G7은 출시 5년 만에 연간 판매량 100만 병을 돌파했다. 도스코파스는 출시 1년도 되지 않아 판매량이 200만 병을 넘어섰다. 무엇보다 도스코파스가 인기를 끌자 다른 대형마트는 물론 편의점 업체들도 5000원 안팎의 '초저가 와인'을 선보었다. 그 덕분이 국내 와인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도스코파스가 촉매제 역할을 한 셈이다. 

도스코파스의 인기 비결은 여러 가지다. 일단 4900원이라는 가격 자체가 소비자들의 마음의 벽을 무너뜨렸다. 4900원이면 500㎖ 맥주 두 캔 정도 가격이다. 도스코파스 한 병이 750㎖ 라는 점을 고려하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기에 '초저가'이면서 맛도 괜찮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출시 초반부터 그아말로 불티나게 팔렸다. 

궁금했다. 과연 4900원이라는 가격에 와인을 내놓은 계기는 무엇일까. 또 이런 가격에 맛도 괜찮은 와인을 들여온 비결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17일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에서 명용진 이마트 와인 바이어를 만났다.

◇ "매일 와인 한 병…소비자 입맛 알아야"

명용진 바이어를 만나기 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매일 와인 한 병씩을 꾸준히 마시고 있다는 얘기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를 만나면 가장 먼저 '팩트 체크'를 하고 싶었다.

명 바이어는 아직도 와인을 매일 마시냐고 묻자 본인의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 한 애플리케이션을 작동했다. 비비노라는 와인 관련 앱이다. 그는 지난 2년간 마신 와인의 사진을 찍어 대부분 이 앱에 저장해놨다며 목록을 보여줬다. 저장해 놓은 와인 사진은 696개에 달한다. 모두 기록해 놓은 것은 아니라고 하니 매일 한 병 마신다는 소문은 '팩트'였다.

그는 종종 저녁 시간 짬을 내 한강에 운동하러 갈 때도 가방에 와인을 한 병 들고 간다고 한다. 운동이 끝나면 돗자리를 펴고 와인을 한 잔 마신다. 한강 둔치 인근 쓰레기통 주변을 유심히 살피는 것도 그의 일과 중 하나다. 과연 오늘은 한강에 놀러 온 사람들이 와인을 얼마나 마셨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쓰레기통에 빈 와인병이 쌓여 있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진짜 '와인 덕후'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명 바이어가 와인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부터다. 이마트 인사 부서에 있던 그는 갑작스럽게 와인 어시스턴트 바이어로 발령이 났다. 신근중 당시 이마트 와인 바이어(현 이마트 주류팀장)를 돕는 역할이었다. 명 바이어는 "처음 발령을 받고 나서는 신 팀장님이 추천해주는 와인들을 주로 마셨다"며 "와인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지 않았던 탓에 배우기 위해 마셨던 것"이라고 말했다.

명 바이어는 '기사(騎士)'다. 지난 2018년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생테밀리옹 기사 작위인 '쥐라드'를 받았다. 물론 영화에서 보던 그런 기사 작위는 아니다. 상징적이다. 와인 산업에 기여한 바가 큰 사람에게 주는 일종의 명예다. 와인 작위 쥐라드는 프랑스 메독 지역의 '코망드리', 부르고뉴의 '슈발리에'와 함께 프랑스 3대 와인 기사 작위로 꼽힌다. 기사 작위까지 받은 전문가가 매일 한 병씩 와인을 '탐(耽)'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지금은 와인 상품 기획을 위한 '시음'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명 바이어는 "와인 바이어는 프리미엄 와인을 마실 기회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입맛이 그쪽으로 맞춰지게 된다"면서 "일반 소비자들의 입맛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일단 무조건 어떤 와인이든 마시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와인을 알기 위한 왕도는 없다"며 "마셔보는 게 최고"라고 강조했다. 

◇ 100만 병 선주문…물량 공세로 가격 낮춰

명 바이어는 이마트 와인 판매 역사의 새 장을 쓴 도스코파스를 직접 기획한 인물이다. 평소 워낙 와인을 즐겨 마신다고 하니, 그가 직접 가성비 좋은 와인을 골랐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명 바이어는 "가격도 좋고 맛도 좋은 와인을 내놓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전문가들의 '블라인드 테스트'"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초 '위'에서 미션이 떨어졌다"면서 "5000원 짜리 와인을 만들어보라는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명 바이어에 따르면 5000원 미만의 저렴한 와인은 이미 시중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퀄리티'였다. 물론 회사에서 원한 것은 단순히 가격만 싼 와인이 아니었다. 가격은 기본, 퀄리티까지 갖춘 이른바 가성비가 좋은 와인을 '초저가'로 내놔야 했다.

명 바이어는 국내 와인 수입자 관계자들을 초청했다. 해외에서 10달러, 우리나라 돈으로는 1만원 안팎에 팔리는 상품을 모아보자는 미션을 전달했다. 그렇게 모은 15개가량의 제품들을 블라인드 테스트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바로 도스코파스 레드 블렌드(스페인)와 카베르네 소비뇽(칠레)이다. 각각 칠레와 스페인에서 유통되고 있는 제품에 이마트가 '도스코파스'라는 라벨을 붙이는 식으로 만들었다. 레드 블렌드의 라벨이 '까만색'이고, 카베르네 소비뇽이 '하얀색'이다.

그렇다면 현지에서 1만원 안팎에 팔리는 제품을 이마트에서는 어떻게 4900원에 판매할 수 있었을까. 명 바이어는 "할 수 있는 건 물량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마트의 이전 히트 상품인 G7 3종의 경우 연간 100만병 가량 팔린다고 한다. 그는 이 점에 착안해 도스코파스는 G7보다 가격이 저렴하니 1년이면 각 100만병씩은 팔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처음부터 100만병을 불렀고, 이를 통해 와인 양조장(와이너리)도 비용을 줄여 생산 단가를 낮췄다.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도스코파스는 출시 1년이 되기도 전에 200만병이 넘게 판매됐다. 명 바이어는 "사실 저도 놀랐다"면서 "우리는 국내 와인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도스코파스를 내놓은 이후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제는 다른 대형마트뿐만 아니라 편의점까지 나서서 초저가 와인을 줄줄이 출시하고 있는데, 이런 경쟁을 통해 전체 파이가 커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다음 단계는 신개념 '초저가 와인'

이마트는 도스코파스를 출시하기 전부터 G7을 비롯해 다양한 와인 제품들을 '국민 와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판매해왔다. 국내 와인 소믈리에들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바탕으로 특정 와인을 선정하고, 대량 구매를 통해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 와인 시장을 키워 왔다. 

올해로 12년째를 맞은 '이마트 와인장터' 행사도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나름의 '와인 축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와인장터는 창고에 쌓여 있는 와인을 시중가 대비 20~70% 할인 판매하는 행사다. 이마트는 지난 2008년부터 매년 5, 10월에 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이마트의 와인 매출은 10여 년 전 10억 원 미만에서 지난해 연간 880억 원가량으로 커졌다. 국내 와인 시장 전체 규모는 6000억~7000억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이마트는 이 중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명 바이어는 "국내 와인 시장에서 이마트는 리딩 컴퍼니라고 할 수 있다"며 "한 채널에서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이 워낙 많다 보니 해외 와이너리들도 대사관을 통해서 접촉을 시도하는 등 과거와는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그는 도스코파스를 통해 국내에 와인 '입문자'들이 크게 늘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맞춰 앞으로는 이 소비자들이 조금 더 고급 와인을 맛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명 바이어는 "요즘 이마트에서 와인을 살 때면 까만색이냐 하얀색이냐만 고르면 된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런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향후 시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또 "이제는 소비자들이 더욱 만족할 만한 다음 단계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명 바이어가 구상하는 다음 단계는 '초저가 와인'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샤넬 백이 1000만 원인데, 이 가격을 500만 원으로 낮추면 그거야말로 초저가가 아니겠느냐는 구상"이라면서 "다음 단계는 고객들이 프리미엄 와인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 선보인 도스코파스 제품보다 높은 등급의 제품을 내놓겠다는 의미다. 

그의 최종 목표는 국내 와인 시장이 완전히 성숙해지는 것이다. 그는 3년 전쯤 파리의 세느강변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와인을 들고 파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 부러웠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명 바이어는 "지금부터는 소비자들이 와인 생산 국가를 구별하고, 품종을 구별하는 등 입맛이 점점 정교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게 과제"라면서 "비 올 때 막걸리에 파전이 떠오르듯이 와인도 완벽하게 대중화되길 바란다"라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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