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스토리]는 평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다양한 음식들과 제품, 약(藥) 등의 뒷이야기들을 들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음식과 제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모르고 지나쳤던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읽다보면 어느 새 음식과 식품 스토리텔러가 돼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저는 동료·친구들과의 저녁 식사가 가끔 두렵습니다. 너무 많이 먹게 되거든요. 저는 평소에 많이 먹는 편은 아닙니다.(물론 제 생각입니다).하지만 회식 자리에서는 한계를 자주 넘어섭니다. 귀가 후 숨이 가쁠 정도로 빵빵해진 배를 어루만지며 깊은 후회를 할 때가 많습니다. 더 두려운 것은 다음 날까지 배가 고플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관리해도 다음 회식 한 번에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몸의 항상성이 '높은 체중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나 싶어 자괴감도 듭니다.
왜 회식 자리에서는 많이 먹게 될까요. 저만 그럴까요, 아니면 여러분들도 비슷하신가요? 회식과 과식 사이에는 과학적인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그래서 알아봤습니다. 업계와 의학계에 묻고, 논문을 뒤져봤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식과 과식은 분명히 관계가 있었습니다. 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다행입니다. 왠지 안도감이 몰려오는 건 저 뿐만이 아니죠?
회식 자리에서의 과식은 심리적 이유와 생리적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보통 회식 자리에서는 조금이나마 긴장하게 됩니다.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 행동에 집중하게 되죠. 회식 자리에서 이 '행동'은 보통 먹는 것입니다. 마땅히 할 수 있는 행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술이 들어가고 긴장이 풀리면 옆자리 동료를 따라 먹게 되는 '군중심리'도 작용한다고 합니다.
생리적 이유의 가장 큰 원인은 '술'입니다. 적당한 양의 알코올은 신체의 활동을 활발하게 합니다. 혈액 순환을 어느 정도 촉진시키고, 위장관의 운동을 빠르게 만들죠. 소화가 빨라지는 만큼 평소보다 조금 더 먹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술을 많이 마셨을 때부터입니다. 알코올은 사람의 의지를 무너뜨립니다. 자기 나름대로 먹는 양을 조절하는 사람도 식욕에 굴복하도록 만들죠. 나아가 과음을 하게 되면 간은 알코올 해독작용에 바빠집니다.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포도당을 제대로 만들지 못합니다. 혈당이 떨어지고 뇌는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내죠. 소화도 잘 되는데 의지마저 무너집니다. 과식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오한진 을지대학교 가정의학과 교수는 "회식 자리에서 술만 적당히 먹을 수 있다면 과식의 위험은 크지 않다. 혈당이 빠르게 뛰어오르거나 하는 문제도 없다"며 "하지만 보통 회식 자리에서는 음식을 함께 먹게 된다. 소화가 빠르게 되고, 이야기도 나누며 먹는 데 신경을 쓰지 못하다 보니 더 먹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알코올이 판단력을 저하시켜 제어하기도 어려워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럼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과식을 피할 수 있을까요. 유감스럽지만 이 또한 어려운 일입니다. 회식이 일상적인 상황은 아니죠. 혼자 편안히 있는 것에 비해 일정 수준의 스트레스를 가져오게 됩니다. 스트레스는 호르몬을 교란시킵니다. 식욕 억제 호르몬인 '렙틴'과 신경전달 물질 '세로토닌'을 부족하게 만드는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스트레스는 렙틴 분비를 줄이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을 과다 분비시킵니다. 실제 배고픔과 무관하게 뇌가 계속 배고프다고 느끼게 되죠. 세로토닌은 혈압과 호흡 횟수를 조절해 몸에 활기를 유지시킵니다. 세로토닌이 줄어들면 뇌가 신체 항상성 유지를 위해 분비를 촉진시킬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배고픔을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특히 단 음식을 찾게 만듭니다.
세로토닌은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을 통해 체내에서 생성됩니다. 트립토판이 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슐린'이 필요합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인슐린은 체내 혈당을 유지시키는 호르몬입니다. 혈당이 높지 않다면 적당한 양만 공급됩니다. 인위적으로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키려면 당분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세로토닌이 부족한 우리 몸은 트립토판 공급을 위해 단 음식을 찾게 됩니다. 우리가 가끔 "아! 당 떨어져"라며 초콜릿을 먹게 되는 이유죠.
문제는 단맛이 악순환을 불러온다는 점입니다. 단맛은 쾌락을 느끼게 합니다. 쾌락은 사람을 더 먹도록 만들고요. 심지어 회식 자리에서는 음료수 등에서 단맛을 접하기 쉽습니다. 특히 술을 드시지 않는 분들은 음료수로 술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료수 내 당분은 신체에 빠르게 흡수됩니다. 당분을 흡수한 몸은 '식사 모드'로 바뀝니다. 하지만 음료수는 포만감을 주지 못합니다. 때문에 지천에 널려 있는 음식을 더 먹게 됩니다.
회식은 때때로 다음날 과식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미국의 니틴 쿠마르 박사에 따르면 알코올은 체내 글리코겐과 탄수화물의 저장량을 감소시킵니다. 글리코겐은 우리 몸이 가장 먼저 활용하는 에너지원입니다. 글리코겐이 떨어지면 혈당이 낮아집니다. 몸은 혈당을 올리기 위해 음식을 찾습니다. 특히 혈당을 가장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는 탄수화물을 찾게 되죠. 술 마신 다음 날 라면이 땡기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회식 자리에서 과식을 피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있을까요. 아쉽지만 의학과 약물 등을 통해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지식과 의지만이 유일한 해결 방법이라는 설명입니다. 먼저 가짜와 진짜 배고픔 사이를 구분하는 방법을 익혀둘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진짜 배고픔은 특정 음식에 대한 욕구를 높이지 않습니다. 아무 음식이나 먹고 싶어지죠. 반면 가짜 배고픔은 단맛이나 매운맛 등 특정 맛에 강하게 끌립니다. 이를 완화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평소 단백질 등을 중심으로 식사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에 따르면 총 칼로리가 같더라도 단백질 비율을 높인 식사를 해 온 사람들이 더욱 쉽게 식욕을 억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델타 변이 확산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일상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회식 자리도 늘어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도 자주 볼 수 있게 될 거고요. 앞으로 축배를 들기 전에 한 번쯤 "정말 배고픈가?" 하고 몸에 물어보는 습관을 들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를 포함한 모든 독자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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