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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한끗]①컨디션, '주당'들을 구원하다

  • 2022.01.10(월) 10:25

1992년 국내 첫 숙취해소 음료로 출시
'기능성 음료' 확대…소비자 니즈 저격
출시와 동시에 큰 인기…30년째 1위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는 많은 제품들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한 끗 차이가 제품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에 숨겨져 있는 그 한 끗을 알아봤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함께 찾아보시죠. [편집자]

인류의 숙제 '해장'

내가 다시 술을 먹으면 개다

술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셨을 말입 겁니다. 마실 때는 모릅니다. 흥에 취해, 사람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분명 즐겁게 마셨는데 그 결과물은 처참합니다. 쓰린 속과 머리를 쪼개는 듯한 두통에 숨쉬기도 버겁습니다. 요즘처럼 마스크가 일상이 돼있는 경우는 더 합니다. 이른 아침 출근길, 숨을 쉴 때마다 마스크 안에 가득 차는 술 냄새에 또 한 번 정신이 몽롱해집니다.

소위 주당들은 각자 나름의 해장법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끓여주는 해장국이 최고겠죠. 하지만 그것도 부지런한 사람들이나 챙겨 먹을 수 있는 호사품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온음료를 자주 찾습니다. 어떻게든 전날의 숙취를 깨고 일상으로 복귀하려는 안간힘입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샐러리맨들이 비슷한 경험을 갖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인류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후 '해장'은 줄곧 온 인류의 숙제였습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해장의 정의는 '전날의 술기운을 풂. 또는 그렇게 하기 위하여 해장국 따위와 함께 술을 조금 마심'으로 돼있습니다. 한자로는 사실 '풀 해(解)'에 '숙취 정(酲)'을 씁니다. 원래는 '해정'입니다. 흔히 '장(腸)을 푼다'로 알고 계시지만 사실 '숙취를 푼다'가 맞습니다.

예부터 해장국으로는 콩나물국, 북엇국, 선지 해장국 등이 꼽힙니다. 신기하게도 이 음식들을 현대 과학으로 분석해 보면 다들 숙취를 해소하는 데에 탁월한 성분들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쁜 현대인들이 숙취해소를 위해 매번 해장국을 챙겨 먹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숙취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이젠 국민 숙취해소 음료가 된 '컨디션'입니다.

신박한 음료의 탄생

컨디션은 국내 최초 숙취해소 '음료'입니다. 약이 아닙니다. 1992년 당시 제일제당 제약사업부(현 HK이노엔)가 출시한 제품입니다. 워낙 첫 등장이 강렬했던 터라, '숙취해소 음료=컨디션'이라는 공식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물론 그동안 많은 경쟁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컨디션의 자리를 위협했지만 여전히 국내 숙취해소 음료 시장 1위는 컨디션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장 선점 효과가 그래서 무섭습니다.

사실 컨디션 성공의 이면에는 다른 제품의 성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기억하실 겁니다. 바로 1989년 현대약품이 내놓은 '미에로 화이바'입니다. 당시 식이섬유를 함유한 기능성 음료로 국내 음료 시장에 큰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컨디션과 미에로 화이바가 무슨 관계냐고 물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연관성이 있습니다. 컨디션은 미에로 화이바가 넓혀 놓은 시장에 안착한 제품이거든요.

1993년 1월 20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기능성 음료' 시장 확대 기사. 관련 기사에서도 '컨디션'이 소개되고 있다. / 사진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미에로 화이바는 국내 음료 시장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제품입니다. 바로 '기능성 음료' 시장을 연 제품이어서입니다. 미에로 화이바 출시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기능성 음료 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간편하게 한 병을 마시는 것만으로 몸에 좋은 식이섬유를 섭취할 수 있다는 마케팅이 통하면서 기능성 음료 시장이 활짝 열렸습니다.

제일제당도 이 시장에 주목합니다. 아이템을 찾던 제일제당의 레이다에 당시 크게 성장하고 있던 일본의 숙취해소 음료 시장이 들어옵니다. 제일제당은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리고는 제약사업부와 식품사업부가 TF를 꾸려 숙취해소 음료 개발에 나섭니다. 일본 사람들보다 술에 더욱 진심인 우리 소비자들의 특성을 감안하면 분명 성공할 것이라 생각한 겁니다. 그리고 이 예상은 적중합니다.

컨디션, '퍼스트 무버'가 되다

1992년 첫 출시 당시 컨디션의 주요 성분은 콩에서 추출한 성분과 쌀 배아를 함께 발효시켜 만든 ‘미배아발효추출물(글루메이트)’이었습니다. 글루메이트는 숙취를 일으키는 아세트알데히드를 쉽게 분해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성분입니다. 이후 여러 번의 리뉴얼을 거쳐 현재는 헛개 성분이 컨디션의 주요 성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컨디션의 등장은 주당들에게 희소식이었습니다. 굳이 해장국을 챙겨 먹지 않아도 됐으니까요. 술 마시기 전이나 술을 마신 후에 한 병만 마시면 숙취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제일제당의 마케팅 덕분에 컨디션은 불티나게 팔립니다. 당시 컨디션 한 병 가격은 2500원으로 매우 비쌌습니다. 국민 드링크제인 박카스가 한병에 300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약 8배가량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1992년 10월 31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컨디션' 출시 광고 / 사진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디션은 술자리가 많은 당시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마음을 파고들면서 출시와 동시에 공전의 히트를 칩니다. 실제로 출시 1년 만에 1000만병이 판매됩니다. 매출액도 100억원을 기록하죠.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컨디션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컨디션이 국내에 숙취해소 음료 시장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컨디션 출시 후 많은 소비자들은 술자리 전이나 이후 초록색 컨디션 병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겁니다. 컨디션은 이후에 출시된 여러 숙취해소 음료의 기준이 됐습니다. 또 출시 초기부터 워낙 독보적이었던 만큼 여러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음해도 많았고요. 그래서 다음 편에서는 컨디션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많은 제품들과 치열한 경쟁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볼까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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