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인사이드 스토리]하림은 '콜럼버스'가 될 수 있을까

  • 2022.04.20(수) 06:55

육계 사업 수익성 한계 명백…새 캐시카우 필요
보유 계열사 통한 미래 '확실한 신사업'에 무게
프리미엄 HMR도 같은 맥락…알짜 수익원 될까

/그래픽=비즈니스워치

하림이 가정간편식(HMR) 시장의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더 미식' 브랜드를 론칭하며 첫 제품으로 '장인라면'을 선보인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한 봉지에 2200원이나 하는 프리미엄 라면의 등장이었죠. 장인라면은 뜨거운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팔리며 시장에 안착했습니다. 이에 하림은 두 번째 제품 짜장면 출시를 예고했습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메뉴를 더 미식 브랜드로 선보일 계획이고요.

장인라면 출시는 의외의 선택이었습니다. 하림은 잘 알려져 있듯 육계(닭고기) 전문 기업입니다. 치킨 프랜차이즈 등 다양한 분야에 육계를 공급하고 있죠. 지난해 기준 31%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육계 시장의 큰 손이기도 합니다. 반면 HMR 시장에는 각 분야별로 강자가 많습니다. 라면은 농심·오뚜기·삼양·팔도가 있고, 즉석밥은 CJ제일제당과 오뚜기의 '양강 체제'입니다. HMR 초보인 하림에게는 다소 버거운 시장입니다.

하림은 왜 HMR에 꽂혔을까요. 먼저 본업인 육계 사업의 한계가 분명합니다. 하림 외에도 동우·체리부로 등 다양한 경쟁사가 입지를 굳힌 상태입니다. 양계농가의 생계 문제와 시장이 엮여 있어 정부가 어느정도 시장을 관리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육계기업의 가격 담합을 제재하기도 했었죠. 또 육계는 치킨 가격 등에도 영향을 끼치는 원재료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섣불리 가격을 올리기도 어렵죠. 가격 탄력성이 낮아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림은 매출에 비해 영업이익은 매우 적습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때문에 많은 육계기업이 적자 구조입니다. 하림의 흑자도 수직계열화의 성과에 가깝습니다. 하림은 해운사 팬오션, 사료제조사 팜스코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 생산·물류비를 관리할 수 있죠. 나아가 하림은 연구개발(R&D)을 통해 사료요구율(FCR·고기 1kg 생산에 투입되는 사료의 양)도 1.4까지 끌어올렸습니다. 비용 증가를 억제하고, 생산성을 높여 간신히 흑자를 만든 셈이죠. 이런 환경에서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림에게 신사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런 가운데 하림은 신사업 전략을 다소 보수적으로 짜고 있습니다. 물류 사업이 대표적인데요. 하림은 2016년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를 사들이고, 첨단물류단지 건설 계획을 밝혔습니다. 서울시·국토부의 입장 차이로 미뤄졌다가 이제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는 단계이지만요. 또 지난해에는 이스타항공 예비입찰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2015년 팬오션을 인수한 후 본격화된 움직임입니다. 확실히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계열사의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인 셈이죠. '완전한 신사업'을 외치는 것은 하림 스타일이 아닙니다.

HMR 사업의 맥락도 비슷합니다. 하림은 육계 사업을 통해 HMR사업의 노하우를 얻었습니다. '용가리치킨' 같은 스테디셀러 상품을 배출한 경험도 있고요. 양재 첨단물류센터, 익산공장 온라인 물류센터가 완공되면 물류 역량도 갖춰질 겁니다. 아울러 하림에게는 NS쇼핑이라는 독자적 유통망도 있습니다. 이들을 모두 활용하기 가장 좋은 사업 중 하나가 HMR입니다. 만일 성과가 좋지 않더라도, 이미 하던 일이니 리스크를 '헷징'할 수 있으니 더 좋고요.

하림의 모든 사업은 각 계열사가 연계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다만 하림에게 HMR은 물류보다 어려운 시장입니다. 팬오션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시장 내 강자도 많고요. 이런 시장의 후발 주자에게는 가성비·품질 등의 '차별화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가성비를 앞세운다면 시장에 빨리 자리잡을 수 있지만 장기 수익성은 낮습니다. 품질을 앞세운다면 성공 가능성은 낮아지겠지만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고요. 나아가 제품이 인정받는다면 이를 확장해 '브랜드'를 구축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하림이 더 미식을 고가 HMR 제품들로 구성하려는 이유입니다. 하림은 육계 사업에서 저수익성 시장의 한계를 체험한 바 있습니다. HMR 사업에서도 같은 입장이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하림은 이미 HMR 시장에서 주문자위탁생산(OEM) 등도 하고 있습니다. 굳이 자체 신사업에서도 이런 방식을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고급 브랜드를 구축해 소수의 '마니아'라도 만드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하림 익산공장 곳곳에는 HMR사업에 대한 '진심'이 묻어 있습니다. /사진=이현석 기자 tryon@

더 미식에는 하림의 '진심'이 어느 정도 담겨 있습니다. 지난주 직접 살펴본 익산공장에는 '고급 기술'이 곳곳에 적용돼 있었습니다. 육계는 도축 후 급속냉동을 통해 육질을 높였습니다. 즉석밥은 360도에서 물을 뿌려 뜸을 들이는 공정으로 밥의 꼬슬함을 살렸고요. 라면은 건면의 새로운 건조 공정을 도입해 유탕면급 식감을 만들었습니다. 다소 번거로워 보일 정도로 품질에 집착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비싼 가격의 '최소한의 근거'가 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이것이 시장과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HMR의 품질 차이는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기대치 역시 높지 않고요. 실제로 많은 식품 강자들이 HMR의 고급화에 도전해 왔지만 성공시킨 사례는 드뭅니다. 장인라면도 출시 초 광고로 '이슈몰이'에 성공했지만 매출이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비싼 가격을 문제 삼는 반응도 많았고요. 이를 넘어서려면 긴 시간의 인내와 과감한 투자가 이어져야 할 겁니다.

하림의 목표는 '종합식품기업'으로의 도약입니다. 이 비전에는 육계 사업에서 뼈저리게 느껴온 '풍요 속 배고픔'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하림은 더 미식을 어떻게든 고급·고수익 브랜드로 육성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새로운 '캐시카우'를 만들기 위해서요. 장인라면의 첫 모델은 배우 이정재 씨였습니다. 그는 영화 '신세계'와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최후의 승자를 연기했죠. 하림이 HMR시장에서의 오징어게임을 통해 신세계를 발견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

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댓글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