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업계의 숙원이었던 면세한도 상향이 드디어 이뤄졌다. 하지만 업계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달러/원 환율이 1400원 돌파를 코앞에 두면서다. 고환율은 면세점에 치명적이다. 면세점은 달러를 기준으로 거래한다. 환율이 오르면 제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면세점의 '핵심'인 가격 경쟁력이 상쇄된다는 이야기다. 업계는 환율 보상, 할인 등으로 내국인 수요 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600달러→800달러
9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지난 6일부터 해외여행자 휴대품에 적용하는 면세한도가 기존 600달러에서 800달러로 상향됐다. 8년 만의 면세한도 증액이다. 특히 주류의 면세 한도 역시 늘어나면서 업계가 반색하고 있다. 면세 금액 한도는 400달러 이하로 유지 되지만 기존 1병(1ℓ)에서 2병(2ℓ)으로 늘어났다. 주류는 고환율에도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상품이다. 면세점에서는 시중에서 붙는 주세, 교육세 등 세금이 붙지 않는다. 면세점 주류의 매력이 이전보다 더 커진 셈이다.
그동안 국내 면세한도는 주변국에 비해 너무 낮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간 일본, 중국, 홍콩 등 면세산업이 발달한 국가의 면세한도는 한국보다 높았다. 중국은 5000위안(776달러), 일본은 20만엔(1821달러) 홍콩은 아예 면세한도가 없다. 이 때문에 국내 면세산업의 경쟁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한도를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소비자 편의에 대한 목소리도 높았다.
특히 면세업계의 숨통을 틔워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자난 3여 년간 면세업계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난의 시기를 보내왔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해외여행객이 급감했다. 주요 면세점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고꾸라졌다. 중소 면세점의 타격은 더 컸다. 어렵게 획득한 면세 특허를 포기하는 사태도 이어졌다. 이 때문에 정부는 업계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정책이 필요했다. 때마침 엔데믹도 다가왔다. 이렇게 면세한도 상향이라는 업계의 숙원이 풀리게 됐다.
분주해진 업계
면세점들은 면세한도 상향에 맞춰 일제히 마케팅에 나섰다. 주류 할인, 환율 보상 이벤트 등이 주를 이룬다. 롯데면세점은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넡점에서 위스키를 3병 이상 구매하면 최대 30% 할인해 준다. 특히 환율 보상 규모를 키웠다. 롯데면세점 시내점은 매장 기준 환율이 1350원을 넘어서면 구매 금액에 따라 현금성 포인트를 지급한다. 최대 297만원 상당의 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신세계면세점은 800달러 이상 구매 고객에게 10만원의 현금성 포인트를 제공한다. 온라인몰에서는 시계·주얼리·갤럭시탭 등을 할인 판매하는 기획전을 연다. 인기 위스키 제품도 한정 수량으로 30% 싸게 판다. 신라면세점도 주류를 최대 55%, 시계·주얼리·화장품 등은 최대 70% 할인 판매한다. 1500달러 이상 구매하면 공항 라운지 이용권도 증정한다.
시기상으로도 업계의 대목이다. 명절 연휴 해외여행을 떠나려는 내국인이 많다. 특히 올해 추석은 평년보다 이르다. 여름휴가를 떠나려는 수요가 여전히 살아있다.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하면 면세 한도 상향 효과를 충분히 볼 수 있다. 고환율이지만 주류 등이 매출을 견인할 수 있다. 관건은 '재건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있다. 팬데믹으로 줄어든 면세점의 존재감을 다시 살려야 한다.
'미친 환율'이 문제
사실 업계가 대대적으로 행사를 벌이는 이유는 고환율 때문이다. 이날 기준, 달러/원 환율은 1380원을 돌파했다. 이는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 4월 1일 이후 13년 5개월 만의 일이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 '여행만' 하고 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면세점이 가격 경쟁력을 잃어서다. 실제로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국내 면세점 매출은 1조2474억원으로 나타났다. 전월 대비 14.6% 감소했다. 외국인 매출은 같은 기간 16.1% 감소했고, 내국인 매출도 0.61%로 증가세가 둔화됐다.
무엇보다 내국인 매출이 주춤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뼈아프다. 보통 전체 면세점 매출에서 내국인 비중은 10%로 큰 편이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외국인 관광객은 여전히 발이 묶인 상황이다. 여기에 업계의 경쟁으로 중국 보따리 상인인(따이공)에 쥐여주는 송객수수료가 크게 뛰었다. 이 때문에 수익성이 좋지 않다. 내국인 고객은 보릿고개를 넘길 유일한 '버팀목'인 셈이다.
업계가 '환율 보상'까지 꺼내들며 내국인 유치에 사활을 건 이유다. 다만 이 같은 현금성 이벤트, 할인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당분간은 '규모의 경제'로 버터 나갈 수 있다. 면세점은 상품을 직매입해 판매하는 구조다. 대량으로 싸게 매입해 낮은 가격에 팔 수 있다. 물론 재고를 할인 상품으로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끝내 팔지 못하고 '멸각'(滅却)하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이마저도 장기화한다면 결국엔 '제살 깎아 먹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고환율에 내국인 고객의 방문을 늘리기 위해 환율 보상 등 행사를 열게 됐다"며 "당장 손해를 보는 상황은 아니지만,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본적으로 객단가가 높은 중국 일본 등 해외 단체 관광객이 돌아와야 매출 회복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내국인 위주 마케팅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