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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L&B, 잘 하는 것에 집중…'제주소주' 다시 떼낸다

  • 2024.07.01(월) 07:00

와인 시장 위축되자 적자 전환
소주, 위스키 등 비효율 사업 정리

/그래픽=비즈워치

신세계엘앤비(L&B)가 흡수합병했던 제주소주를 다시 떼어낸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소주 사업을 철수하며 회사를 합병한지 3년 만이다. 최근 와인 시장이 위축되며 주력 사업이 흔들리자 비효율 사업을 덜어내고 체질 개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껍데기만 남은 소주 사업

신세계엘앤비는 제주도에 위치한 소주 등 주류 생산, 제조, 유통, 판매 생산시설과 관련한 모든 사업을 '제주소주'로 물적 분할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분할로 신세계엘앤비는 주류 수출입과 도소매업에 집중하고 제조업에서는 다시 손을 뗀다.

신세계그룹은 2016년 제주 지역 소주 회사였던 제주소주를 19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이마트는 2008년 설립한 자회사 신세계엘앤비를 통해 와인, 맥주, 보드카 등을 수입, 판매 중이었다. 여기에 제주소주를 인수하면서 소주사업에도 진출하게 됐다. 주류에 관심이 많은 정용진 회장이 이마트를 종합 주류 기업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제주소주 인수를 주도했다.

이마트는 2017년 제주소주를 '푸른밤'으로 리뉴얼해 선보이며 소주 사업을 본격화했다. 제품의 알코올 도수도 16.9도, 20.1도로 세분화 해 젊은 고객과 중장년층을 두루 공략했다. 신세계그룹의 유통채널인 이마트, 이마트24 등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영업망도 넓혔다. 사업 초기 푸른밤은 '정용진 소주'로 불리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푸른밤은 반짝 인기에 그쳤다. 식당, 주점 등 유흥 시장을 잡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유흥 시장 공략을 위해서는 도매상 영업이 필수다. 하지만 이마트는 기존 주류 전문업체와 비해 영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마트는 2016년 12월부터 6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총 570억원의 자금을 수혈했지만 제주소주를 살리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픽=비즈워치

제주소주의 매출액은 2017년 12억원에서 2020년 50억원으로 늘어나는데 그쳤고, 4년간 단 한 차례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4년간 누적된 영업손실만 434억원에 달한다. 결국 이마트는 2021년 3월 소주사업에서 철수하며 생산을 중단했다. 같은해 신세계엘앤비가 제주소주를 흡수합병했다. 당시 흡수합병 목적에 대해 신세계엘앤비는 "유사사업 부분을 통합해 효율적으로 사업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합병 3년 만에 신세계엘앤비는 제주소주를 다시 떼어내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분할 설립되는 제주소주는 소주 ODM(위탁생산) 사업을 맡게 된다. 신세계엘앤비는 2022년부터 제주소주의 생산시설을 재가동해 동남아, 미국, 베트남 수출용 과일소주를 생산, 납품하고 있다. 제주소주를 별도 법인으로 만들면 투자 유치 등에 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신세계엘앤비 관계자는 "제주소주 분할 후 외부 투자유치, 지분 매각, 전략적 사업 제휴, 기술 협력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와인에 집중

신세계그룹이 이번에 두 회사를 다시 분할하기로 한 것은 신세계엘앤비의 실적이 악화하면서 비효율 사업을 정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세계엘앤비의 지난해 매출액은 1806억원으로 전년 대비 12.5% 감소했다. 신세계엘앤비의 매출액이 역신장한 것은 감사보고서로 매출을 공개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93.7%나 쪼그라든 7억원에 그쳤다. 당기순손실도 53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이는 최근 와인 수요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관세청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와인 수입량은 2021년 7만6575톤으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2022년 7만1020톤, 지난해 5만6542톤으로 2년 연속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수입량은 전년보다 20.4%나 감소했다. 최근 고물가가 지속되고 있어 당분간 와인 시장이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신세계엘앤비가 수입하는 '로버트 몬다비 나파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 사진=신세계엘앤비

이 때문에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정기 임원인사에서 송현석 신세계푸드 대표에게 신세계엘앤비 대표까지 겸직시키고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송 대표 취임 후 신세계엘앤비는 2년간 준비해온 위스키 사업을 잠정 중단했다. 또 발포주 '레츠'도 출시 2년만에 단종하기로 결정했다. 비효율 사업을 정리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이번 제주소주 분할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신세계그룹이 별도 법인이 된 제주소주를 재매각하거나 청산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신세계엘앤비는 주력 사업인 '와인'에 보다 집중할 계획이다. 주력 와인 브랜드 마케팅을 확대하고 주류 전문 소매점 '와인앤모어'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육성하기 위해 점포 리뉴얼을 단행할 예정이다.

신세계엘앤비 관계자는 "그동안 역량을 구축한 와인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한편, 와인앤모어를 프리미엄 주류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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