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크고 작은 조직개편이야 늘상 있는 일이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계열사 재편은 차원을 달리한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삼성은 그동안 기존 계열사 체제를 크게 흔들지 않았다. 전자 부문에서 사업들을 분리해 수직계열화를 만든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시작된 사업조정은 숨이 찰 정도다. 삼성에버랜드와 제일모직, 석유화학 등이 대상이 됐다. 삼성의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전자와 금융, 건설 등 주요 사업군의 움직임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삼성그룹이 본격적으로 새판짜기에 나서고 있지만, 금융부문은 아직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하지만 변화의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삼성생명과 증권 등이 일제히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시동을 걸었다. 앞서 삼성생명이 삼성카드 지분을 대거 확보한 대목 역시 주목할만하다.
이를 두고 삼성그룹이 다양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몸만들기와 함께 지분 교통정리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 삼성생명 등 삼성 금융 계열 대규모 구조조정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들은 최근 잇달아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조직 슬림화에 나서고 있다. 삼성생명은 조직 통폐합과 임원 숫자를 20% 넘게 줄였다. 그러면서 70여 명에 달했던 임원은 55명 수준으로 줄었다.
직원 구조조정도 추진한다. 삼성생명은 전국에 있는 고객플라자센터를 자회사로 분사하는 방식으로 본사 인력의 25% 수준인 1500명을 자회사로 재배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 창업과 휴직 지원을 통해 250명의 인력을 줄였다.
삼성증권도 대규모 희망퇴직 방식으로 300명 이상 인력을 줄인다. 100개에 달하는 지점도 25% 정도 줄일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증권은 지난해도 계열사 전환 배치 방식으로 130여 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삼성화재와 삼성카드도 앞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삼성카드는 올 초 콜센터 분사와 함께 1300여 명의 직원을 줄이기도 했다.
◇ 수익성 만회에다 그룹 차원의 구조 개편 일환도
삼성 금융 계열사들이 줄줄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고 건 기본적으로 수익성 악화에 따른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저성장, 저금리 장기화에 대비해 미리 군살을 빼 비상경영에 나서고 있다는 관측이다.
반면 일부에선 삼성그룹 차원의 구조 개편과 무관치 않다고 해석한다. 우선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 효율화 자체가 미래 경쟁력 확보라는 그룹 차원의 큰 그림과 일맥상통한다. 미래 금융 계열사 간 합종연횡을 위한 몸집 줄이기 차원이란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삼성생명과 화재, 증권, 카드 등 삼성 금융 계열사들은 모두 업계에서 선두권을 유지하면서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우물 안 개구리’로서 한계가 뚜렷하다.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삼성그룹의 경영 목표엔 한참 못 미치는 성적표다.
그러다 보니 삼성그룹 안팎에선 삼성생명과 화재, 증권, 자산운용 등 여러 계열사로 나뉘어 있으면서도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금융부문 계열사에도 ‘메스’를 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 다양한 시나리오 염두에 두고 사전 정지작업
다만 당장 계열사간 단순 통폐합보단 삼성생명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면서 필요하면 사업군을 조정하는 방식에 더 힘이 실린다. 금융부문은 계열사 간 통합에 따른 시너지가 크지 않은 탓이다.
삼성생명은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고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삼성생명을 중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런 관점에서 지난해 삼성생명이 삼성카드 지분을 대거 사들여 지주회사법상 자회사 편입 요건을 맞춘 건 주목할만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삼성 금융부문의 구조 개편 방식이나 형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면서 “다만 다양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사전 정지작업에 나선 건 분명해 보인다”고 설명했다.